[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미스 이탈리아는 죽지 않아>
소싯적에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는 국가적 행사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미스 코리아 출신이 연예계에 대거 진출했는데 진선미 입상자들 중 유명한 이들만 언급해도 고현정, 오현경, 염정아, 김성령, 이승연, 김사랑, 손태영, 서현진, 이하늬 등 셀 수 없이 많다. 오랫동안 연예계 등용문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1957년 시작해 1972년부터 지상파에서 방송되었고 2002년부턴 케이블로 옮겨졌으며 2019년부턴 TV 중계 없이 온라인에서만 방송되었다. 대회 안팎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 스캔들, 문제들이 소용돌이쳤고 '아이돌'이 가요계뿐만 아니라 연예계 등용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스 코리아 대회는 빠르게 쇠퇴했다. 이젠 대회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기류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듯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이탈리아는 죽지 않아>가 빠르고 가파르게 쇠퇴해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인 '미스 이탈리아'를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변하는 시류에 발맞추려면서도 보수적인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주최 측의 모습이 복잡 미묘하게 다가온다.
미스 이탈리아의 새로운 기준
미스 이탈리아 선발 대회는 1938년에 시작되어 2023년에 85주년을 맞이했다. 대회 초대 기획자이자 총책임자였던 엔초 미릴리아니가 오랫동안 전성기를 이끌며 한때 산레모 가요제(이탈리아 최고의 가요제)에 버금가는 관객 규모에 RAI(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이탈리아 공영 방송)의 간판이기도 했으니, 그의 딸 파트리치아가 이끌고 있는 21세기의 미스 이탈리아는 뭘 어떻게 하든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파트리치아는 2023년 미스 이탈리아 지역 에이전트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기준을 선언한다. 더 이상 전통적인 미인 기준만 따를 수 없다는 것. 똑똑하고 유능하고 재밌고 유행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다양성을 견지하겠다는 전언이었다. 베테랑 에이전트들이 반대하는 와중에 아우로아 같은 참가자가 미인 대회의 편견을 깨고자 도전하기도 한다.
짧은 머리에 중성적 이미지를 풍기고 포즈도 런웨이도 어딘가 어정쩡한 아우로아는 대회장에서 자신을 가면을 벗고 싶어 출전했다고 포부를 밝힌다. 하지만 집에서는 부모와 미인 대회의 기준과 미의 기준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그녀는 미인 대회의 기준, 미의 기준 따위 존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미스 이탈리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미스 이탈리아를 둘러싼 논란
미스 이탈리아는 500여 명의 참가자가 주와 지역 예선을 뚫고 올라와 40명이 결선을 치른다. 그리고 최종 3인의 후 보 중 한 명을 '미스 이탈리아'로 선정한다. 그녀에겐 영원한 영예가 함께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엄청난 비판, 비난, 조롱을 받고 있다. 바뀌는 시대의 조류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취지의 대회니까 말이다.
성적 대상화와 상품화 논란, 선사 시대 유물이라는 조롱, '늙고 더러운 돼지들이 반쯤 벗은 여자애들을 평가한다'는 비판 등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다. 하여 주최 측은 수영복 심사도 없애고 심사 기준도 완화하며 에이전트들도 젊은 여성의 수를 늘리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고수하는 것들이 또다시 논란을 일으킨다.
미스 네덜란드가 사상 최초로 트렌트젠더를 선정하며 많은 이의 갈채를 받았는데 파트리치아는 트랜스젠더의 참가 자체를 금지시킨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페미니스트를 '깨인 척하는 급진적인 소수의 그룹'이라며 '끔찍하다'는 수식어를 붙여 그들만이 미스 이탈리아를 원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축소시키기도 한다.
작품은 이 지점에서 중립 또는 오히려 파트리치아 쪽을 편드는 모양새다. 미스 이탈리아는 대중이 원하는 만큼 계속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잡음이 들려오기 마련인데, 누가 어떤 이유로 말하는가는 관심이 없고 나열된 말들을 취사 선택해 받아들이려 하니 말이다. 본질이 아닌 현상만 쫓고 있는 것이다.
미스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길
그런 한편 <미스 이탈리아는 죽지 않아>는 앞서 언급한 참가자 중 한 명인 아우로아의 여정을 파트리치아 다음 분량으로 비추며 '미스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나름 제시하려는 것 같다. 그녀는 가면을 벗으려 참가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최선을 다해 보지만 탈락한다.
주최 측은 그녀가 보여준 색다른 퍼포먼스에 감명을 받은 듯, 결선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에 특별 초대했고 자작시까지 읊게 하며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립해 보려는 그녀의 노력에 답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녀는 결선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가 길었다면? 얼굴이나 포즈나 분위기가 더 '여성스러웠다면'?
미인 대회의 기준과 미의 기준은 동일한 걸까, 동일해야 하는 걸까, 동일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대회니 만큼 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평가해야 한다. 당연히 대회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 기준이 미의 보편적 기준으로 나아갈 테다. 그렇다면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미의 기준은 소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파고들면 매우 복잡다단한 문제다. 개인적으로 미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라 무한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다른 나름의 미적 기준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작품에서 파트리치아와 에이전트들 그리고 아우로아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가운데 '미스 이탈리아'를 향한 마음은 같다. 시류에 맞게 변화하면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이들이 있으니 미스 이탈리아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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