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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에게 섹스는 돈이 안드는 최고의 놀이? <핸드 투 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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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핸드 투 마우스>


<핸드 투 마우스> 표지 ⓒ클



35여 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잘' 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잘'은 부유하다는 말이니, 정확하게는 부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겠다. 그 생각이 깊이 박히게 된 연유는 다름 아닌 'IMF', 당시 중학생이었기에 피부에 와닿진 않았지만 엄마가 사주는 신발 브랜드가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가난'했을까?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다만, 부모님 직업이 친구들 대다수의 부모님과는 달랐기에(동네 구멍가게), 거기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전혀 모자람 없이 컸다. '잘' 살진 못했지만 '가난'하진 않았던 거다. 뭐, 가난하면 어떠랴. 나중에 부자되면 되는 거지. 


가난이란 뭘까. 이제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수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세상, 하나의 계층이 된 것이리라.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수렁이 바로 가난이겠다. '내가 가난해도 내 자식은 부자가 될 거야.' '지금은 가난해도 나중엔 괜찮을 거야' 같은 생각은 현실화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을 모른다. 진짜 가난이 무엇인지. 옛날 옛적 말고 지금. 


당사자가 말하는 빈민층의 처절한 생존 일기


파트타임 일자리 두 개를 뛰며 풀타임으로 일하는 남편과 함게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백인 여성이 있다. 그녀는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빈민층'이다. 어느 날 자주 가던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어째서 나는 '끔찍한 결정'을 내리는가, 또는 '빈곤'에 관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답글을 썼다. 생각지 못한 폭발적 반응, 오래지 않아 책을 쓴다. 


<핸드 투 마우스>(클)는 그녀의 첫 번째 책,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베스트셀러 <노동의 배신>의 정식판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이 저자가 3년 동안 워킹 푸어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간 이야기로, 빈곤 문제를 조명하기 위해 체험한 것인 반면 <핸드 투 마우스>는 저자 본인의 삶 자체를 보여주며 빈곤 문제를 처절하게 드러낸다. 앞의 책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그렇지만 훨씬 더 처절하다. 


이 처절한 '생존 일기'는,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공감을 주진 못하는 것 같다. 그건 괴리감, 거리감 내지 구별 짓기 비슷한 느낌 때문일 거다. 그녀가 빈민층이고 내가 빈민층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녀의 투쟁적이고 때론 자아비판적 때론 자아옹호적인 글쓰기 때문이겠다. 


르포 형식으로 빈민층의 삶을 체험하는 건 그저 혀를 끌끌 차고 자유롭게 비판하며 볼 수 있지만, 당사자의 목소리에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빈민층의 처절한 삶을 굳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고 싶진 않은데... 그래도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충격적으로 본 터라 이 책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한 이에게 섹스는 돈이 안드는 최고의 놀이?


저자에 의하면 미국에서 최저임금이나 그 미만을 버는 25세 이상의 성인이 8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보다 조금 더 버는 수준. 그 어떤 계산식으로도 제대로 살 수는 없다. 살아남을 수는 있을 정도, 그게 다다. 그녀는 처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처절하다는 건 몹시 처참하다는 뜻인 바, 빈민층의 삶 자체를 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준 만큼 번다'라는 일념 하에 절대로 의무보다 더한 헌신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그녀의 말이 정녕 처절하게 다가온다. '회사를 내 집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라는 팁은 개나 줘버려야 할 것 같다. 그녀 앞에서 내 의식이 조금이 무너져 내린다. 


다른 의식이 눈을 뜬다. '진짜 가난'이라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좋은 건강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저자의 말을 본 순간, 그녀는 그 가격을 낼 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는 말을 본 순간,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비록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한국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뒷통수가 시끈거린다. 


담배와 섹스를 말할 땐 가난의 또 다른 면모가 보였다. 가난을 일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적어도 그녀는(그녀는 시종 일관 계속해서 강조한다. 자신이 모든 빈민층을 절대 대변하지 못한다고)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피고, 돈이 들어가지 않는 최고의 놀이이자 사치의 일환으로 섹스를 한다고 말이다. 특히 섹스에 대해서 저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진짜 가난한 이에겐 엥겔지수도 무의미하다


'엥겔지수'라는 게 있다. 총 가계지출액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저소득 가계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고소득 가계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식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떨까. 


저자는 일단 치아 상태가 완전 꽝이란다. 말그대로 돈이 없어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라고. 또 임신을 했을 때는 돈이 없어 보험도 들지 않아 '정신 나간 년' 소리를 들었다고. 제대로 꾸며본 적이 없어서 글이 뜨고 난 후 인터뷰를 하러 다닐 때 엄청 애를 먹었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한편 '굶주림'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펼치며 '어른들이 먹을 수 있는 보통 음식을 아이들도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 씁쓸함을 금하기 힘들다.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빈곤의 현실. 


사실 저자는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고 한다. 그녀가 올린 글이 좋은 반응을 받고 이 책을 내고는 지구의 절반을 다니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누렸단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 않은 지는 3년이 되었다고. 그녀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가난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을. '천절하고 상냥해지자. 베풀고 현명해지자.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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