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쓰이 아스타카의 <모나드의 영역>
소설 <모나드의 영역> 표지 ⓒ은행나무
독자가 책을 접할 때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 전략 바깥에 있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상품이 그러지 않겠냐마는 책은 다르다. '책'이라는 단일 상품군 안에 샐 수 없이 많은 상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별한 상품이자 특별한 사업 생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거기엔 정녕 수많은 '최고'들이 존재한다.
'책', 그 중에서도 '소설'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읽을 거리와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보는 주지 못하고 읽는 데에 방점을 둔 '소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유럽 소설의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지만 한계가 분명한 반면, 일본 소설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은 그들의 거의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 소설만이 갖는 정서가 작금의 한국 독자에게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일본 SF 거장 '쓰쓰이 야스타카'의 소설도 그 성격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블랙유머와 넌센스는 얼핏 난해하지만, 인간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쓰쓰이 야스타카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유명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파프리카>의 원작자로 유명한데, 80세가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장편소설을 써냈다. 제목도 다분히 쓰쓰이스러운 <모나드의 영역>(은행나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쓰쓰이 야스타카의 50년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
개인적으로 쓰쓰이의 작품을 매우 오랜만에 접하는 바, 이번에도 그 특유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했을지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숙하게 발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와 SF의 결합, 그리고 인간 세계를 재조명하는 각종 지식들의 총집합이 자못 흥미롭게 진행된다.
어느 날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 수사를 맡은 꽃미남 형사 신이치는 '아주 커다란 어떤 사태의 시작처럼 느껴진다는' 상사의 말에 조심히 수사를 한다. 한편 역 앞 로터리 상가에 위치한 빵집 두 곳 중 하나 '아트베이커리', 미대생 알바를 둔 덕분에 평소 동물 모양의 빵을 팔고 있다. 갑자기 휴가를 신청하는 알바 둘, 자기들보다 실력이 더 좋은 친구를 알아봐뒀다고 호언장담한다.
실력이 더 좋다는 친구 구리모토,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과연 실력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여성의 한쪽 팔과 똑같은 모양의 빵을 만든 게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만들었다는 그, 그 와중에 단골 손님인 미대 유이노 교수가 그 빵을 본다. 그 정교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는 칼럼에 개재한다. 곧 팔 모양 빵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방송도 탄다.
구리모토 때문에 잘리게 된 알바 둘과 망하게 생긴 맞은 편 빵집 주인은 이 상황을 보고, 그 빵 모양이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과 완전히 똑같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신이치는 빵집으로 향하지만, 구리모토는 찾을 수 없고 어딘지 이상한 미대 유이노 교수를 만나게 된다. 곧 유이노 교수는 공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을 거듭하는데...
'신'의 말을 빌려 해명하는 쓰쓰이의 50년 기행적 소설 쓰기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시작된다. 여성의 한쪽 팔에 이어 한쪽 다리까지 발견된 상황, 그런데 그와 똑같이 생긴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다? 그 와중에 기이한 행동으로 의심을 받고 또 사람들의 이목도 끄는 미대 학생 구리모토와 미대 교수 유이노까지. 다 갖춰진 느낌이다. 그런데 사건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즉 일상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아니 일상생활은 그대로 둔 채 그를 둘러싸고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극히 마니아적이라고 하겠는데, 그만의 세계가 하나뿐이 아니고 참으로 다채로워 그 층위가 높고 넓다.
단도직입적으로 소설은 '신의 강림'이라는 소재를 주요 위치에 두었다. 신은 세상의 비밀을 무참히 폭로한다. 그 방법은 다분히 인간적인데, 마지막 장편 소설까지 참 쓰쓰이답다. 상해죄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끌려나온 'GOD', 신은 인간의 말을 빌려 신과 인간세계를 말하고, 그 말들은 조목조목 쓰쓰이가 지난 50년 동안 계속 해온 기행적인(?) 소설 쓰기의 변명 또는 해명처럼 들린다. 그 중심에는 '다중우주'가 있다.
말인즉슨,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수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하고, 그 각각이 각각의 세계로 존재하며, 신은 이 세계의 근본 원리인 '모나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모든 것들을 '사랑'함으로. 신은 쓰쓰이 야스타카의 현현이다. 쓰쓰이가 만든 확고한 세계, 참으로 다양한 그 확고한 세계. 그는 '다중우주' 또는 '다중세계'를 문학 세계 전체에 걸쳐 만들어냈지만, 작품마다 소재로 종종 써 왔다. 그는 '작품의 조물주가 신'이라는 명제를 가장 잘 구현해냈다.
소설의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
이 소설을 진정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점에 있다. 작가가 신이라는 개체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문학 세계를 돌아보고 또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리지 않고 훨씬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겠지만, 그가 굳이 소설을 이용한 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쓰쓰이 야스타카이기 때문이다.
초를 치는 것 같지만 말해두지 않을 수 있다. 흥미를 끄는 초반의 사건, 그러곤 갑자기 신이 강림하는 그 연계점이 상당히 부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후반부에서 이를 신다운 명철함으로 훌륭히 봉합하지만, 그때까지 꺼림칙함을 벗어버릴 수 없을 거다. 이 또한 그의 대단함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바, 이밖에도 여러 점들이 눈에 띄어 상당히 괴롭히지만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고 있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 알면서도 여유작작하게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작가다.
'이 소설을 보고 쓰쓰이의 전작들에 눈길이 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데, 그리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 소설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망으로 다가올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열광할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얇은 소설에서 천재적인 상상력이 선사하는 인류적 반전을 맛볼 수 있을 테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선사했던 따뜻함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받을 수 있을 테며, 일본 소설의 한 축을 단 번에 흡수하는 황홀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무너져 가는 '소설'의 자존심인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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