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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인간성,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너무 시끄러운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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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표지 ⓒ문학동네



삼십오 년째 폐지 속에서 살아가는 한탸. 폐지압축공인 그는 지하실에서 수많은 폐지에 둘러싸여 압축기 한 대와 씨름하며 고독하게 일한다. 엄청난 양의 교양을 뜻하지 않게 쌓아가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힘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신다. 덕분에 그는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고 그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구하고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건 곧 행복이다. 


그는 5년 후 압축기 한 대와 함께 은퇴해 집으로 가져와 하루에 한 꾸러미씩만 꾸릴 생각을 하고 있다. 그 한 꾸러미가 한 점의 예술작품이 되기를, 그 안에 그의 젊은 시절 품었던 모든 환상과 지식, 삼십오 년간 배운 것들을 모조리 담을 생각이다. 참으로 멋진 계획! 그 때문에 온갖 수모와 비정상적인 일의 연속을 버틸 수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고독 속에서 일하는 한 남자 한탸를 그린 짧은 소설이다. 그곳엔 오직 그와 압축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폐지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은 너무 시끄럽다. 폐지들, 그 중에 있는 '진정한 책'이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한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한탸는 매일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위대한 일'을 하는 '하찮아 보이는' 사람


한탸가 매일 같이 행하는 건 '파괴 행위',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숭배하기 마지않는 것들을 파괴하는 행위. 그는 그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 아름다움은 한탸의 앎이 전제되어 있다. 진정한 책들의 위대함을 알면서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처지. 한탸에겐 인생을 건 싸움이다. 


책의 위대함을 안 이상 파괴만 할 순 없다. 그는 2톤이나 되는 양의 책들을 집으로 가져 왔고, 매일 같이 몰래 책을 빼돌려 가치를 알아주는 이에게 팔아넘긴다. 그렇게 그는 책들을 최대한 구출하려 한다. 책으로 구현되어 있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려는 행위와 다름 없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한탸가 대변하는 이들은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꼭 책과 같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우리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꼭 필요한 일을 어딘가에서 하고 있는 분들. TV에서 꾸준히 알려지고 있지만, 그들을 '희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책이 떠나는 여정의 마지막은 독자의 손이어야 할 테지만, 사실 폐지가 되어 종이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설은 그와 같은 또 다른 책의 종착점을 보여주면서, 그곳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하찮아 보이는' 사람을 조명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뒤로 하는 아이러니


어느 날, 한탸는 부브니에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찾아가본다. 그는 일전에 느껴본 적 없는 충격을 받는다. 그에겐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을 발견하는 그 순간이 축제나 다름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매력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가다가 으스러진 후 커다란 용기 속으로 밀려들어가 파괴되었다. 


아무도 책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아무도 책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최후의 순간에 지킬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의미한다. 반면 전에 없이 월등한 능력의 압축기는 현대 사회가 갖는 더할 나위 없는 효율적 일처리를 의미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뒤로 하는 아이러니. 


더불어 한탸를 비롯해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그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사고 방식이 달라졌고, 일 방식이 달라졌다. 새 인간, 새 방식, 새 시대! 한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새 시대에 맞게 그도 오로지 일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책은 거들떠도 안 보고 파괴 행위에 몰입할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어 밀려나 '쓸모 없는' 인간이 될 것인가?


그가 하는 일은 생각에 따라 방식에 따라 인간에 따라 정녕 위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가 하는 일은 '파괴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탸와 같은 일종의 의무를 반드시 지녀야 하는가? 이다. 아무도 강요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위대한' 한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인간성,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도처에 '사라져가는 것' '사라진 것'들이 많다. 거기엔 어김 없이 우리를 우리이게 한 기억들이 있다. 골목길, 구멍가게, 동네서점, 손편지, LP와 CD 등. 그것들이 사라지고 난 후 대체한 것들은 하나 같이 비인간적인 것들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구시대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말이다. 


좋다, 한 발 양보해 적어도 한탸의 위대한 생각을 발현하는 폐지압축공이 사라지는 건 비인간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인간성 상실로의 길. 한탸가 아니고서 다른 누군가가 그와 같은 생각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한다는 걸 바랄 수는 없다. 그 지점이 한탸와 함께 사라질 인간성에 대한 안타까운 부분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건 '진보'를 의미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 이보다 더 좋은 말도 찾기 힘들다. 나 또한 일면 진보를 옹호하고 외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퇴보적 진보도 존재하지 않을까. 소설에서 한탸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인데, 일면을 위해 진보적 길을 택하지만 그 길이 일면 퇴보적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시대적 사명을 뒤로한 채 진보적 보수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한탸의 생각이 발현된 폐지압축공이 사라져선 안 된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인간성 상실로의 필연적 길을 목도함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직시하고서도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소설은 말한다. 한탸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끝까지 지니고 있던 인간성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우린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아니 발견해야 한다. 그가 지녔던 인간성을, 그 아름다움을, 그 강인한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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