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 표지 ⓒ에쎄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시대를 이끄는 만큼 그에 반하는 '독재'는 설 자리를 잃었다. 물론 그럼에도 독재자는 존재하고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그 얼마나 매력적인가. '무소불위',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하지 못 할 일이 없는 사람 아닌가. 누가 독재자가 되는 방법이라도 알려준다면 열심히 경청할 자신이 있다.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에쎄)에서 독재자가 되어 빠르게 권력을 얻고 최대한 길게 머무르며 많이 챙기는 방법을 알려준댄다. 그에 앞서 독재자가 되었을 때 가지는 이점을 알려주는데 참으로 주옥같다. 거대한 부를 쌓고 신으로 군림하고 당신 자신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령을 반포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고 당신을 기념하는 비석과 궁전, 도시를 세울 수 있다. 또 누구와도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 있고 사치와 향락에 얼마든지 빠질 수 있다.
독재자라면 이정도쯤은 기본으로 해야 하는 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 참으로 정열적인 그들. 나는 바쁜 걸 싫어하는 타입이라 아쉽게도 독재자가 되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독재자들은 어떤 삶을 영위하는지. 이 책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데, 한번 들여다보자. 워너비 독재자가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독재자'가 되는 법과 그 자리를 유지하는 법
일단 '위대한 독재자'가 되기 전에 '독재자'가 되는 게 우선이다. 외국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적으로 선출된 경우도 있다. 부모를 잘 만나거나 우연히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있어 권력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걸맞는 야망을 지닌 채 나라가 처한 상황에 맞는 치밀한 계획 하에 한 나라의 통제권을 완전히 가져와야 한다.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이런 건 못하겠다.
책에서 그 확실한 방법으로 몇 개를 선정했다. 군부를 등에 업은 쿠데타, 국민이 기피하는 지배자를 향한 무장봉기, 외국의 지원, 애국과 민주주의에 호소, 도덕적인 우위의 게릴라전, 확실한 선거전 등. 이 중에 개인적으로, 아니 국가적으로 볼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쿠데타'인 것 같다. 내가 꼭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가장 많은 독재자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게 확실하다.
이런 정치적인 기습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단골로 등장했다고 하는데, 저자는 군사역사가 에드워드 루트와크의 말을 빌려 반란에 성공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을 들이댄다. '경제적인 저개발', '정치적인 독립', '분명한 권력관계'. 과거 우리나라에 최소한 2번의 (성공한) 쿠데타가 있었는데, 아마 이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춘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2번째 쿠데타일 때는 '경제적인 저개발'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을 때라서 요건이 완벽하지 못했던 바, 지금에 와서는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쿠데타를 더 악질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봐야 도긴개긴이지만.
독재자가 되는 것도 어렵고 중요하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꼼꼼한 저자가 그것도 준비했다. 상대적으로 간략한대, '반대파 실종', '선거 승리', '신과 함께 하는 독재자' 정도가 되겠다. 이 세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니 어느 것 하나를 내세울 수 없다. 짧고 굵은 독재자 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면 철저히 숙달하고 완벽하게 실전에 옮겨야 하겠다. '위대한 독재자' 시험 문제를 낸다면 단골 중 단골이다. 워너비 독재자들, 부디 필수 암기 하시길.
'이제 완벽한 내 세상', 파라다이스
이정도만 완수해도 '이제 완벽한 내 세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이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길 바란다. 신이 되어도 좋고, 부자가 되어도 좋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도 좋고, 스포츠 챔피언이 되어도 좋고, 패셔니스타가 되어도 좋고, 섹스 머신이 되어도 좋다. 누가 뭐라고 하면 그를 '실종시켜' 버리면 된다.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이 파라다이스엔 비단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함께 한다. 이 얼마나 가정적인 모습인지. 일가친척들을 극진히 챙기는 모습에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가거나 굶어 죽어도, 국토가 황폐해지거나 침공당해도 파라다이스는 영원할 것이다. 이 나라가 다름 아닌 나의 것인데, 얹혀 사는 국민이 뭐라 할 말이 있고 뭐라 할 게 있겠는가. 파라다이스는 파라다이스다.
그런데 영원한 것 없다고 성현께서 말씀하셨다. 성현께서는 모든 걸 대비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현명한 독재자라면 성현의 고매한 말씀을 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신과 동급이라고 해도 말이다. 안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언젠가 맞이할 종말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본다.
독재자를 마치는 법
유감스럽지만 많은 독재자들이 재임 중에 목숨을 잃는다. 아프리카 적도 기니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101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고, 아프리카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카다피는 반군으로부터 사살되었으며, 유럽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는 국민에게 사로잡혀 즉결재판으로 처형되었다. 이런 비참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조짐이 보이면 빨리 망명을 해야 한다. 아무 곳으로 할 수는 없으니, 미리 망명지를 물색해놓는 게 필수다. 오랫동안 프랑스가, 특히 식민 지배를 받은 경우,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에게 이상적인 도피처였다고 한다. 또는 친하게 지내는 다른 나라 독재자들에게 가는 것도 괜찮다. 잘 보살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절대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게 그것이다. 독재자가 행한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 국민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해도 되는데, 여기 기가 막힌 말이 있다. 이 역시 달달 외우고 실전에 써 먹어라. 폴란드의 마지막 국가평의회의장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과 에티오피아의 전 독재자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말이다.
"나보고 살인자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치가였다. 나에게는 나름대로 이상이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를 신봉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나와 같은 세대 모두에게 죄가 있다. 누가 내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나와 똑같이 했을 것이다."
"나는 군인이다. 나는 오로지 부족주의와 봉건주의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 뿐이다. 내가 실패한 것은 단지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민중 학살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혁명과 국민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한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위대한 독재자', 그리고 국민
'국민의 안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독재, 50여 년 전 우리나라에도 이와 일치하는 신념으로 독재의 전횡을 훌륭하게 휘둘렀던 사람이 있다. 18년 동안 권좌에 있었는데, 글쎄, 살아 있었다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을까? 카메룬의 폴 비야는 1975년부터 40년 넘게,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음바소고는 1979년부터 35년 넘게,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는 1980년부터 35년 넘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니 가능할 수 있겠구나 싶다. 독재자의 교본과도 같은 이들이다.
'위대한 독재자'란 뭘까. 쫓겨나거나 암살 당하거나 나라가 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독재자?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정한다. 그래도 진정으로 위대한 독재자라면 빨리 치고 오래 있다가 안전하게 빠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즉, 빠르게 권력을 얻고 최대한 길게 머무르며 많이 챙기고 안전하게 빠지는 것 말이다. 완벽한 것 같다.
세계 정세나 국내 정세가 어려울 때 독재자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요즘이 적기인 것 같다. 워너비 독재자들과 그 일가친척들, 그리고 그에 달라 붙어 기생하는 좀 같은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반드시 이 책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을 꼭 읽고 숙달한 뒤 실행에 옮기길.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와중에 잊지 말고 유념해야 할 게 있다면 하나 뿐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국민'이다. 이 책에선 벌레 발에 낀 때만도 못한 존재처럼 존재감도 힘도 없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국민은 힘이 엄청 세다. 신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려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신이 되고자 하는, 고로 아직 신이 되지 못한 워너비 독재자에겐 우선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요, 신이 되고 나서는 반드시 밟아 버려야 하는 대상이겠다. 노파심에 마지막 조언을 드리니, 꼭 잊지 말고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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