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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외' 이야기를 다루다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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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표지 ⓒ천년의상상



'삼국지'는 나에게 특별하다. '책'이라는 존재를, 나아가 '이야기'라는 존재를 각인시켜 준 장본인이니까. 책이 나에게 특별해졌기에 삼국지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잊지 않고자 주기적으로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려 한다. 장편으로, 축약본으로, 게임으로, 만화로, 영화로, 드라마로, 그리고 고사로. 이는 실제로 내가 삼국지를 접한 순서다. 고사가 가장 마지막인 이유는 이런저런 고사들이 삼국지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을 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시작이었다. 1988년 출간되어 20여 년 간 2000여 만 권이 팔린 한국 출판 역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바로 그 책이다. 다름 아닌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나에게 책 읽는 재미와 함께 중국 역사의 재미를 선사했다. 중국의 역사가, 나아가 역사가 이리도 재미있는 것이구나. 이 책을 읽었던 당시 내 장래 희망이 '역사학자'였던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를 만들고 사로잡고 뒤흔든 책이 아닐까. 


문제는 한참 나중에 발생했다. 문제라기보단 실망이랄까, 불신이랄까.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실제 역사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수많은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며 달달 외우다시피 한 그 이야기들, 당연히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 속에서 중국의 다른 시대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데, 그게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란다. 그것도 '나본'을 한 차례 각색한 '모본'을 다시 평역했다고 하니,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헷갈리는데 당시에는 어땠을까. 


삼국지 '외' 이야기를 다루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역사적 사실과 상당히 다르고 오류도 많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이문열이 다시 쓴 소설이지, 삼국지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친 만큼 '삼국지'를 사랑하지만,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삼국지'하면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떠올릴 것 같기에. 그렇다고 굳이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읽고 싶진 않다. 너무 재미 없을 게 불보듯 뻔하다. 오래된 딜레마다. 


삼국지에 대해선 할 말이 참 많다. 은근 알고 있는 것도 많다. 다만, 그건 삼국지 '내'이고 삼국지 '외'는 전혀 모르다시피 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삼국지'라는 책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읽혀왔고 어떻게 변해왔냐는 모른다는 것이다. 솔직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오래된 딜레마는 절대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이상 '중국, 일본, 조선 책>은 삼국지 '외'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렇기에 '와~ 삼국지 책이네'하고 덤벼들었다가는 '삼국지 책인데, 뭐 이리 재미없냐'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삼국지를 사랑하는 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들이 꽉꽉 채워진 책이라는 것도 미리 말해둔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삼국지가 중국, 일본, 조선(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는지 알려준다. 공통적으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다. 거기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두 대립 요소가 있는데, 유비와 조조 즉, '촉한정통론'과 '조위정통론'이 그것이다. 전한 시대 경제의 후손 유비가 한나라의 정통이라는 이론과 시대가 낳은 간웅이자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능력자 조조야말로 중국의 새로운 중화 정통이라는 이론의 대립이다. 누가 맞을까. 


삼국지는 중국, 일본, 조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을까


'촉한정통론'과 '조위정통론'은 중국, 일본, 조선이 다 다르게 받아 들였다. 나라보다는 시대마다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당연히 중국에서 만들어진 '삼국지'는 오히려 중국을 만들었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부터 시작해 삼국지연의의 최종개정판인 '모종강평본삼국지연의'까지 계속해서 바뀐 삼국지다. 


진수는 위나라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진나라(서진) 사람이기에 위나라를 정통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북방 오랑캐에 쫓겨 내려간 진나라(동진)에 이르러 자신들이 유비의 촉나라와 같다고 생각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운다. 송나라 때 이르러 더욱 대조되었는데, 평화로운 송나라(북송) 시대 때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내세우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하지만 금나라에 의해 쫓겨 내려간 송나라(남송)에 이르러 다시금 자신들이 촉나라와 같다고 생각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운다. 


이번엔 '주희'라는 희대의 인물이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비판한 <통감강목>까지 지어 촉한 정통론을 확고히 정립시킨다. 다름 아닌 모종강이 바로 이 <통감강목>에 맞추어 기존의 삼국지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이때에 와서 '삼국지'는 더 이상 소설이 아니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중국인의 염원을 담은, 중국을 만든 영원한 텍스트가 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에도 시대 초기에 유입되어 '역사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연의'가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남북조 시대 흥망성쇠를 그린 군기 소설 <다이헤이키>의 유행과 맞물려 향락적 소설로 변해갔다. 거기에 지극히 일본풍의 삽화까지 더해 더 이상 삼국지라 부를 수 없는 새로운 소설로 되어 갔다.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로 공연되면서 일본풍이 한껏 고조된 것이 결정타였다. 일본에서 삼국지는 일본 것이나 다름 없었다. '기무치'가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일본판 삼국지는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일제 시대 삼국지는 전쟁을 독려하는 도구로 쓰였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드높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다. 그의 삼국지는 중일전쟁 당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들어가는데, 촉한 정통론보다 조조를 긍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조조가 혼란한 시대를 평정한 인물이라고 인식하게 하였고, 자신들의 침략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전 시대부터 이어진 무사적 충의를 전시에 맞게 고쳐 더욱 부각시키기도 했다. 무사적 충의가 애국이 되고 애국은 군국주의로 이어졌다. 


조선은 삼국지를 괴탄하고 잡스럽고 경박한 책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처럼 역사서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란을 거치면서 삼국지는 유행하기 시작한다. 관우를 군신으로 모시며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판본이 만들어졌고, 대청복수론이 대세를 이루며 극에 달했다. 조선 후기의 소설 유행에 '소설' 삼국지도 함께했다. 필사하고 낭독하고 빌려 읽었고, 내용을 바꾸거나 새롭게 창작하기도 했다. 일본과는 다른, 중국에 가까운 반응이다. 


일제 시대 일본이 전쟁을 독려하는 도구로 삼국지를 이용하려 했다면, 조선은 식민지 조선인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로 삼국지를 이용하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한용운의 삼국지다. 그는 '삼국지를 한 번씩 읽도록 한다는 것은 다만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한다는 좁은 범위가 아니라 실로 귀중한 한 개의 사업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사업'은 식민지 조선인의 염원과 민족주의를 결합해 조선인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었을 테다. 그래서 한용운은 <조선일보>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당했을 때 울본을 토한 한시를 쓰기도 했다. 


비로소 '삼국지'를 알게 되다


위에서 말한 걸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재미 없어서 중도에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말. 삼국지 내에 흐르는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과 나라들의 역사 못지 않게, 삼국지라는 텍스트의 삶과 역사도 흥미롭다. 재밌다고 할 순 없을지라도. 어찌 그리 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신기하고,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할진데 어찌 그리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지 정녕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나라마다 변용되어 읽힌 삼국지를 통해 한중일 문화사를 보여주고자 했다지만, 필자는 덕분에 비로소 삼국지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런 삼국지를 통해 무엇을 얻는 건 조금 더 훗날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지만 이제는 당당히 '삼국지가 나를 만들고 사로잡고 뒤흔든 최초이자 최고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줄 안다. 또한 삼국지뿐만 아니라 많은 텍스트가 그럴 줄 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진짜로 사랑하는 콘텐츠라면 그럴 때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삼국지가 그러하다. 내 인생에 이런 콘텐츠가 또 있을까, 한중일 역사상 이런 콘텐츠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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