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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문제적 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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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제적 과학책>


<문제적 과학책> 표지 ⓒ윌북



역사, 그중에서도 인물과 사건, 관계와 연도를 좋아하다 보니 어떤 것에 관심을 갖을 때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과학 등. 클래식은 잘 안 들어도 클래식의 역사는 좋아하고, 그림은 잘 못 그려도 미술의 역사는 어느 정도 알며, 운동은 잘 못해도 스포츠의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 과학? 과학은 정말 젬병이라, 한 줄 이해하기도 벅차지만 과학의 역사는 무진장 좋아라 한다. 


책도 좋아하는지라, 해당 분야의 고전들을 많이 알고 있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역시 알고 있을 뿐 정작 읽은 건 많지 않다. 위에 제시한 것 중에서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은 굳이 책까지 필요하진 않은 분야들이다. 반면 과학은 조금 다르다. 논문 형태로 이론을 주장하고 전달해야 한다. 논문이 곧 책이 되는지라, 과학사를 대표하는 몇몇 책들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소수의 책은 직접 읽기도 했고. 


생각나는 책들을 읊어보자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제임스 D. 왓슨의 <이중 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 은근히 많다. 이중에 읽은 건? 뒷 부분의 2~3권 정도.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과학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인간을 위한 맞춤 도서가 나왔다. <문제적 과학책>(윌북). 정말 짜맞춘 듯한 기획이다. 기원전 몇 백년에 나온 고전 중에 고전부터 불과 30여 년 전에 나온 신고전까지 36권 36인을 중심으로 다뤘다. 인류의 과학사가 그들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터, 그 전후로 그보다 많은 이들과 저서도 다룬다. 


이 책은 다분히 비과학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과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이들과 저서를 나열하며 그야말로 과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 이론을 주장, 설파하거나 중구난방 흩어진 과학 이론들을 집대성 하는 '과학적' 작업이 아니라, 지극히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 과학사. 


역사의 소중함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역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아무래도 지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과학의 경우, 지나간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틀리다'고 판명나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틀린 것이고, 뉴턴의 법칙조차 계속해서 도전을 받는다. 오랫동안 절대적 진리로 군림한 베이컨적 사고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깨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과학사를 아주 쉽게 빨리 훑을 수 있다. 특히 책을 완전히 다 읽지 않아도, 과학사의 중추에 해당하는 책들과 핵심적인 설명만 보아도 된다는 게 엄청나다. 물론 과학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기본 입문 이상이다. 


'종합' 이론의 전략, 그 앞엔 '기원'이 있었다


책을 보다 보면, '종합'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현대로 올수록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강렬해지는데, 경영 전략 용어로 '2등 전략'이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만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조차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견해를 내세운 첫 번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제대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주장과 이론들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집대성 혹은 종합은 뒤로 갈수록 많아 진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그렇다. 이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충분한 베스트셀러들이다. 20세기 과학사를 대표하는 이들과 저서들은 위대한 선배들의 이론들을 하나의 거대 설명으로 엮어, '말쑥한 제목'과 '유려한 문장'과 '생생한 비유'로 쓰여 대중들을 사로 잡았다. 


우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너무도 잘 알지만, 그가 있기까지 J. B. S 홀데인이나 윌리엄 D. 해밀턴, 조지 로버트 프라이스는 잘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빅뱅 이론뿐만 아니라 과학사, 나아가 책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책이지만, 스티븐 와인버그가 없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훌륭했다는 것이 있지만, '기원'은 아니었던 바 기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접하는 이들도 말이다. 


'앎'에서 오는 행복, 그럼에도 불편한 '과학' 책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비록 과학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과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고 그래서 관심도 거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거다. '앎'에서 오는 행복은 특별하고, 모르는 데에서 오는 앎은 더더욱 특별하다. 또한 앎이라는 게 과학과 형제가 아닌가. 


다만, 다분히 서양 중심적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다. 원제에서 알 수 있는데, 'The Story of Western Science'다. 개인적으로 동양에도 과학이라는 게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동양 과학에 문외한인데, 동양 과학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쩌면 함께 싣는 게 불가능했을 거다. 사고 체계가 달랐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원제는 제대로 된 것이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 좀 걸린다. 서양만이 과학을 했고, 세상을 바꿨다는 말인지...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전문가를 위한 과학사 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던 거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쉽게 풀고 추가적으로 설명했음에도 말이다. 과학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퍼지고 있는 요즘 딱 알맞은 책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책 또한 그 시류와 함께 한계를 빗겨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좋은 시도이고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시도이고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을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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