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심야식당>
만화 <심야식당> 표지. ⓒ미우
오랫동안 미뤄왔던 만화가 있다. 꺼려해왔다는 게 맞을 거다. 너무 유명해서 일종의 반항심으로 보지 않았던가? 너무 소소한 이야기들이라 애써 무시해왔던가? 콘텐츠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만화를 보기 전에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몇 편 봤다. 그렇다면 왜?
스스로와의 오래된 약속에 기인한 것 같다. 여러 만화를 봐오면서 스스로와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비록 매번 그 약속은 깨졌지만. 어릴 때는 만화로 교훈을 얻고자 했다. <미스터 초밥왕> <더 파이팅> 따위의 만화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었다. 이후엔 재미, 그리고 재미와 감동을 추구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볼>류가 있을 테고, <슬램덩크>류가 있을 테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는 애들 같은 거 말고 조금은 어른스러운 걸 원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이 그랬다. 누가 봐도 단순 만화 보기의 변천사이지만, 그때그때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뜨리면서 전진한 거였다.
그런 내가 실로 오랫동안 전진하지 못한 콘텐츠가 있다. 거대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옴니버스, 특히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는 쥐약이다. 더구나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도 딱히 (내가 원하는) 스토리 라인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잔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심야식당>은 그런 나에게 매우 특별하다. 완고히 '싫어하는' 종류의 만화이면서, 강렬하고 진한 여운을 남겼으니 말이다.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3년 전에 도쿄를 갔었다.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등을 구경했더랬다.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심야식당>, 지금 그곳에 갔으면 신주쿠 하나조노 근처 골목길을 꼭 가봤을 거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곳에 말이다. 물론 밤 12시에 오픈해 아침 7시에 닫는 만큼 쉽지 않았을 테지만.
'심야식당'이 정식 명칭은 아니다. 원래 구냥 '밥집'. 손님들이 심야에만 여는 밥집이라는 의미에서 심야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다. 이 밥집은 심야에만 연다. 손님이 오긴 할까? 많진 않지만 왠만큼 오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밤 늦게까지 야근한 사람이 출출할 때, 밤 늦게까지 술 마신 사람이 해장하고 싶을 때, 2차 이상의 술자리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 집을 찾을 거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만화에선 심야에 어울리는(?) 부류가 자주 등장한다. 야쿠자, 술집 운영자나 종사자 또는 출입자, AV 배우, 트랜스젠더 등. 마스터는 이 모든 이들을 품는다. 아니, 이들을 위해 밥집을 차렸나 싶다. 이곳은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와 같다. 그들이 어디 가서도 내뱉을 수 없는 솔직한 이야기를 이곳에선 마음껏 할 수 있다.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는다.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누가 와도 차별 없는 마스터,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심야식당의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 일본주, 소주 뿐이다. 식당이라기 보다 밥집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마스터는 무엇을 주문하든지 모두 만들어준다. 오히려 원래 메뉴인 돼지고기 된장국이 가장 드물게 등장한다. 다만 손님이 뭘 시킬지 몰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돼지고기 된장국을 내놓곤 한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정식이 이 메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두며, 내가 꾸미고 싶은 공간도 이 심야식당과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쪽에는 책방이자 카페를 한 쪽에는 술집이자 밥집인 공간을 훗날 열고 싶다. 하루는 낮에만, 하루는 심야에만 연다. 심야식당과는 달리 손님의 상황을 보고 음료와 책을 권해준다. 역시, 손님의 상태에 따라 술과 안주를 내준다. 일종의 큐레이팅이라고 할까.
목적은 동일하다.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특히, 일상에 지칠대로 지친 이들, 열심히 살아가지만 갈 곳이 딱히 없는 이들. 알아서 잘 살아가는 이들은, 오면 흔쾌히 받아주겠지만 많은 관심을 두진 않겠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만화 캐릭터라 그런지 몰라도 포용력이 더 큰 것 같다. 난 현실 세계의 사람이니만큼 그렇게까지 할 순 없다.
얼굴에 깊은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주인장인 마스터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때 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은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비록 만화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포용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느 누가 와도 차별 없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똑같이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다 겪은 이의 깊은 삶의 내공이 묻어난다. 자연스레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한적한 시골길에 홀로 켜 있는 가로등 같은 식당
삶을 노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 만화는 '음식'을 택했다. 음식을 열렬히 사랑해 찾아다니면서 먹지도 않고, 집에서 먹을 때도 한 상 가득은커녕 김치찌개면 김치찌개만 김치볶음밥이면 김치볶음밥만 먹을 정도로 음식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심야식당>이 변화를 가져 왔을까? '수요미식회'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열풍이 시작된 지는 꽤 되었지만, 여전히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를 챙겨본다. 그중에 가장 재밌게 보는 건 '수요미식회'. 특히 맛집 3곳을 추천하는 부분을 즐긴다. 다분히 실용적인 접근인데, 개인적으론 음식에 대한 그 이상의 변화가 있진 않았다.
<심야식당>의 경우, 음식도 음식이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도 음식에 관한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변화가 있을 충분한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있느냐. 음식 하나하나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어떤 사연이 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조금 더 풍요롭진 않아도 조금 더 풍부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살기 위해선 먹지 않을 수 없는 음식.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격언이 여기에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즐겁게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한편 음식으로 여러 사람과 그들의 삶을 들여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심야식당>은 마치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 켜 있는 가로등 같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김형수 작가가 한 말을 요약하는 것으로 '심야식당'의 존재 가치를 설파하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작가는 중학생 딸에게 말한다. "저 불빛 아래는 하루에 한 사람도 안 지나갈 수 있다.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도 적겠지. 그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쪽으로 모여들면 어떻게 될까? 우주가 파괴 되겠지?" 하루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불을 밝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간다고 말한다. '심야식당'을 두고, 마스터를 두고, 그곳에 오가는 손님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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