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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려야 뗄 수 없는 삶과 죽음, 긍정적으로 접근해보기 <헤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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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해피엔딩>


<해피엔딩> 표지 ⓒ엔자임헬스



10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웰빙'이라는 거의 모든 곳에서 쓰였던 적이 있다. 단순히 먹고 사는 시대를 지나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혹은 오로지 물질적인 풍요와 성공만을 강요하는 시대를 지나 정신적인 풍요와 성공이 삶의 진정한 척도로 부상했다는 뜻이기도 했을 거다. 


웰빙의 뜻은 점차 확대 되었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만이 아닌 '잘 죽는 것'도 웰빙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은 줄 안다. 일명 '웰다잉'이다. 말이 쉬워 웰다잉이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웰다잉이 사회적으로 퍼진 건 '고 김수환 추기경' 연명 치료 중단 판결 덕분이다. 2009년 선종한 그는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2008년 말부터 기계적 치료에 의한 생명 연장을 거부해왔고, 법원은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웰다잉과 관련된 중요한 논쟁인, '존엄사' '안락사'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죽음에 조금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본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들려 온다. 시류에 은근히 민감한 출판도 예외는 아니어서, 죽음을 주제로 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제목에서 죽음이 물씬 풍기는 <해피엔딩>도 그중 하나다. 영화, 소설에서나 봤음직한 '해피엔딩' 즉, 행복한 죽음이 가능할까 싶다. 


죽음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라고 한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반드시 자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죽는다. 문제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싹해지며 한기가 흐르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막연한 두려움이랄까. 


책은 죽음에 조금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격언이 여기에 해당할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아름다운 죽음이 가능할까'까지 도출해보려 한다. 산증인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죽음을 실천한 이들이 있다면 가능하다 하겠다.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이다. 그는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책에는 그런 죽음들이 나온다. 죽음에 이르러서 화해하고 화합하는 현장.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죽음 앞에서 하는 것이다. 또한 죽음 앞에서 비로소 욕심 없이 모든 걸 비울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죽음이 축복이고, 행복한 죽음이 가능하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의 이야기


책을 보면서 내가 죽음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내 가족이나 지인이 죽음 앞에 서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내 가족이나 지인이 죽는 게 더 참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 반면 내가 죽는 건, 너무 두렵지만 심적으로 이전보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그렇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죽음과 삶을 따로 떼어낼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로 떼어낸 채 살고 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음 앞에 와서야 비로소 삶을 후회하고 삶을 축복하고 삶을 찬양한다.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죽음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그렇다고 괜찮지 않은 삶이 행복한 죽음을 막진 않는다. 누구나 행복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삶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정녕 후회 없이 살다가 마지막을 맞이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제대로 된 삶을 산다기 보다,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맞지 싶다. 


책에는 행복하지 못한 죽음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 억울하기 그지 없는 죽음, 쓸쓸히 혼자 맞이하는 죽음 등.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죽음을 생각하기가 불가능한 죽음이다. 가족을 비롯해 그 죽음을 그나마 챙겨주고 보살피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최후의 순간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존엄사


일명 '연명치료결정법'이 통과 되어 2018년부터 시행된다. 자세한 사항을 숙지할 필요가 있지만,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결정하게 된 첫 걸음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그것인데,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을 때 생명 연장 혹은 특정 치료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사전에 서류로 작성해 놓는 것이다.  그건 곧 내 죽음을, 내 삶을 내 손으로 맞이하겠다는 표시이다. 


물론 여전히 연명치료와 존엄사에 대한 논란은 거세다.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인식 자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그건 '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회생불능의 환자에게 고통만을 가해 살게 할 때 할 말은 아닌 것이다. 존엄사를 자살과 동일시 하는 건 '틀린' 생각이다. 존엄사는 최후의 순간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책은 소개한다. 무한긍정 에너지로 마지막을 살다가 간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녀는 살아생전 후회 없이 열심히 즐겁게 살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여전히 열심히 즐겁게 '살았다'. 정말 큰 축볼인진데, 그런 '죽음'이 부러운 게 아니라 그런 '삶'이 부럽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삶을 살았다.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이 있고 심오한 걸 원했다. 하지만 죽음 자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 훨씬 나아간 고찰이 있을 수 있겠나 싶다. 죽음을 '홍보'하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다 했다 하겠다. 죽음이 제대로 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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