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브루클린>
영화 <브루클린>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여성의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료한 일상을 뒤로 한 채 막연하게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났거니와 집과 가족과 일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겠지만, 거기에 인생을 건 절박함과 필사적인 모습이 비춰지지 않을 것이기에 쉽게 공감하기 힘들지 않을까.
영화 <브루클린>은 대략 그런 정도의 단펵적인 정보를 얻은 후에 본다면, 훨씬 큰 재미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을 짜내는 절박함 대신 공감 어린 성장 스토리가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놀음과 고민 대신 가족과 집 그리고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진정한 휴먼 스토리가 존재한다. 큰 갈등 없이 잔잔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우울하지 않은, 하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며 미소까지 짓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아일랜드 시골 소녀의 미국 상경 성공기
한 마디로 아일랜드 시골 소녀의 미국 상경 성공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요즘 영화 스타일에서는 좀처럼 나올 수 없는 비쥬얼과 스토리인 것 같다. 평범한 아일랜드 소녀 에일리스가 언니의 주선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도착도 하기 전에 엄청난 고생을 하는데, 그건 도착해서 생활하고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향수병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불치병과 같은 것이다.
10여 년 전, 나도 먼 타국 땅에서 1여 년간 살아본 적이 있다. 호주 브리즈번. 미국 브루클린과 이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도 에일리스처럼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고 향수병으로 극심한 우울을 겪었다. 아무리 그곳에 동향 사람들이 많아 '고향'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결코 '집'은 될 수 없었다. 참 많이 울었고 나를 달래기 위해 술도 참 많이 마셨다.
영화 <브루클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에일리스는 향수병을 사랑으로 치유해 나간다. 아일리쉬 파티에서 우연히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착하고 잘생기고 성실한 토니에게 에일리스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하지만 외로운 타국 땅에서는 사랑과 외로움을 착각하기 쉽다. 에릴리스는 고민 끝에 진심을 전한다. 사랑한다고.
사랑을 하면 그곳이 곧 '집'
사람은 어디서든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면 그곳이 '집'처럼 느껴진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집이 집 같지 느껴지지 않는다면, 가족들끼리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타국 땅에서는 또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불편한 감정보다 서로 의지하고 아끼는 감정을 주고받곤 한다. 나 또한 그러했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제2의 고향, 제2의 집을 만들어 간다.
에일리스 또한 점점 아일랜드를 잊고 브루클린을 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랑과 일과 인간관계에서 절정의 행복을 맛보게 되는 그 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는다.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에일리스는 고민에 휩싸인다. 이제는 집이 되어 버린 이곳을 두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비록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약속을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도리가 없다.
영화 <브루클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른 이유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갔다가 금방 다시 돌아온다는 건, 말은 쉽지만 실행은 일생을 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인생이란 정녕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심사숙고하는 것도 모자라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더구나 1950년대라면 무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갈 것이리라.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브루클린>은 이 봄날에 연인과 함께 보기 더할 나위 없는 영화다.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진부하지만 가슴치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여자주인공의 표정과 몸가짐의 변화에서 오는 확연한 성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뿌듯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 누구나의 한때를 보는 것 같다 가슴 먹먹하고 흐뭇해진다.
남자주인공이야말로 이 영화가 갖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처럼 순수하고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또한 한 여자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기다리는 남자는 참으로 멋있다. 그로 인해 에일리스는 힘을 내 웃음을 되찾고 비로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름 아닌 그곳에서. 그렇게 영화에 빛이 살아난다.
영화 <브루클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대부분의 삶이 단조롭고 소소하다. 바로 그 단조롭고 소소한 것에 진짜 삶이 있을지 모른다. <브루클린>은 심지어 사소하기까지 하다. 성장과 사랑과 죽음과 헤어짐과 만남, 그 얼마나 사소한 조각들인가. 삶에 있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겪어봤을 것들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영화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슴을 울리는 건, 우리가 여전히 그것들을 찾고 갈망하고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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