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기대를 많이 했다. '마블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수식어가 개봉 전부터 난무했다. 얼마전 개봉한 DC '배트맨과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저조한 평가와 흥행을 완벽히 대체해줄 초대형 블록버스터 오락물임이 분명했다. 또한 '어벤저스 팀'에서 토르와 헐크가 빠진 대신 스파이던맨과 앤트맨이 합류해 전혀 새로운 조합이 탄생할 것을 기대했다.
결정적으로 '내부 분열'이라는 소재도 흥미로웠다. 아이언맨으로 대표되는 '정부군'과 캡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반정부군'의 대립이 당연히 아이러니하게 다가와 전에 없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DC의 <다크나이트>나 마블의 <엑스맨>처럼 선악 구도를 탈피한 빅히어로들의 진지한 고민과 방향을 논할 거라 생각했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액션은 물론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는 그 의도는 좋았지만 마지막으로 치달수록 그 훌륭함이 사라졌고 반면 액션과 긴박함은 좋았다. 다만 보는 관점에 따라 '마블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 칭할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한층 더 깊이 들어가 감독의 의도를 봐야 한다.
슈퍼 히어로 어벤저스팀의 내부 분열
<시빌 워>는 어벤저스 팀을 대표하는 두 축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고뇌에서 시작한다. 먼저 캡틴 아메리카는 어김 없이 동료들과 함께 악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해 동네방네 휘저으며 상대하고 있었다. 그건 일상다반사라 그렇다 쳤지만, 우두머리 격을 처리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히게 된다. '뜻하지 않은 실수'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동료들은 이 문제로 괴로워한다.
한편 아이언맨은 사업 설명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누군가와 마주친다. 그녀는 아이언맨이 악을 처단하기 위한 성전에 참여했을 당시 그 여파로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한 아이의 엄아였다. 아이언맨은 전에 없는 고민에 휩싸인다.
그런 그들 앞에 국무장관이 찾아와 난데 없는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들이민다. 어벤저스의 악 처단 성전이 너무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들의 행동이 가져온 선의의 피해자들이 너무 많이 속출한다는 이유였다. 일면 합당한 이유가 있는 셈인데, 이로 인해 어벤저스는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팀과 찬성하는 아이언맨 팀으로 분열한다. 결국 법에 저촉되는 캡틴 아메리카 팀을 아이언맨 팀이 쫓는 모습이 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난데 없는 '슈퍼 히어로 등록제' 출현에 분열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시빌 워>는 어벤저스 팀이 반드시 부딪힐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를, 비록 힘들지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을 취한다. <엑스맨>이나 <다크나이트>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보다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모습 말이다. 문제는 그 모습이 분열 과정에서만 조금 격렬하게 보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복수와 개인적인 우정으로 치환된다. 분명 소중한 것이긴 하겠지만, 우주까지 뒤흔들 만한 어벤저스의 존재를 뒤흔들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 특유의 투박하고 박진감 넘치고 오밀조밀하기까지 한 면을 잘 살렸다. 거기에 '선의의 피해자들 속출'을 의식한 듯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초대형 전투가 없어 장점이 극대화 되었다. 토르와 헐크가 빠지고 스파이더맨과 앤트맨를 합류시킨 건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었지만 적절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시빌 워> 액션의 화룡정점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캐릭터 간의 갈등과 고뇌가 깊어야 했다. 캡틴 아메리카 팀이 도망을 다니면서까지 모두를 위한 일을 하려 하는데, 그게 어느 순간 친구 버키를 위한 것이 되면 안 되었다. 버키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확신하는 블랙 펜서의 순수한 개인적 복수심이 아이언맨 팀의 '슈퍼 히어로 등록제' 찬성의 논리와 함께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영화 중반에는 버키가 사건의 중심이 되버린 듯한 인상이었다. 영화의 논점을 흐리면서 산으로 가기 쉬운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캐릭터 간의 갈등과 고뇌가 더 깊어야 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진짜로 보여주려는 것은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
그런데 영화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영화가 조금은 달리 보인다. 어벤저스 팀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은 히어로 각각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팀을 논할 수 없지 않을까.
결국 그들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없을 출중한 능력을 지녔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의적으로 목숨 바쳐 세계를 구하지만, 그들도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둘러싼 팀의 분열과 대립이 아닌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이었다면, 영화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한 지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도 그 둘을 이어주는 끈이 빈약한 건 사실이다. 그 끈은 다름 아닌 버키인데, 쉴드의 숙적 히드라가 만든 비운의 존재이자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이다. 그가 누명을 쓴 가운데, 캡틴 아메리카 팀은 그의 뒤에 더 큰 무엇이 있다는 걸 알고 그와 함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아이언맨 팀이 쫓고. 그 와중에 버키를 둘러싼 개인적 원한과 우정이 대결한다.
이 영화에 용두사미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고, 앞과 뒤는 좋은데 가운데가 부실해 보인다. 그 때문에 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앞에 비해 가려진 것이리라. 그것이 앞에 비해 덜 철학적이고 덜 히어로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빌 워>는 조금 독특한 시선으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마블 사상 최고의 작품'이란 수식어가 완벽히 와 닿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벤저스 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즉 이 영화에서 진짜로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니었던 바로 그 문제는 다음 편에 나올 거라 예상해본다. 그런 면에서 <시빌 워>는 전초전이었다. 그때 비로소 어벤저스 팀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어벤저스 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다음 편에 나올 것 같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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