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4등>
영화 <4등>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4등은 참 애매하다. 특히 스포츠에선 애매하다못해 잔인하다. 1, 2, 3등만 시상식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는 4등이나 꼴등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4등이라서 다른 누구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4등이 참으로 잔인한 이유다. '희망고문'이라고 할까.
영화 <4등>은 자타공인 수영에 소질이 있지만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면치 못하는, 즉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는 소년 준호의 이야기다. 그에겐 누구보다도 그를 챙겨주고 걱정하고 괴롭히는 극성스러운 엄마가 있다. 그녀에겐 4등이 꼴등과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준호가 소질이 있다는 걸 알거니와 하필 4등이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는 어떻게든 메달을 따게 해준다는 코치를 찾아간다.
한편 준호는 왜 1등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굳이 1등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수영에 소질이 있는 건 알지만, 수영이 좋고 물이 좋은 것 뿐이다. 물에 있을 때 편안하고 좋은데, 자꾸만 1등을 하라고 하면 그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이왕이면 메달을 따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 엄마 따라 코치에게 배워보고자 한다. 신기하다. 성적이 올랐다. 그런데 이 코치가 사정없이 때리는 게 아닌가.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오로지 1등을 위해서
영화는 이처럼 세 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들 준호를 위해서' 오로지 1등을 외치는 엄마, 역시 '준호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코치 광수,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지만 수영이 하고 싶다는 것 하나는 잘 알고 있는 준호. 코치 광수는 때려야만 몸이 체득하고 말을 잘 듣고 악이 생겨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준호는 1등하는 건 싫진 않지만(1등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맞는 건 싫다고 말하며, 엄마는 아들이 맞는 건 싫지만 맞아서 1등을 하면 나쁠 것 없다고 말한다.
"형, 1등하면 기분 좋아요? 그런데 왜 1등을 하려는 거예요?"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걸까. 여기에 옳고 그름이 존재하는 걸까. 중요한 건 당사자인 준호의 마음일 텐데, 또 그렇지만도 못한 현실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이 커서 제 구실을 못할까봐 걱정이다. 경쟁의 정점인 스포츠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고 어떻게 제 구실을 할 거란 말인가. 극 중 엄마의 모습에 마냥 너무하다고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코치 광수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그는 가해자임에 분명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로 인해 가해를 했다. 또한 그도 피해자다. 그는 오래 전 아시아 신기록까지 이뤄낸 적이 있는 천재였다. 하지만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고,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체벌을 받아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대표팀을 뛰쳐 나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인데, 그에겐 굳이 스승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체벌(폭력)이 되물림 되었다.
<위플래쉬>와 <4등>
이쯤에서 1년 전 개봉해 많은 인기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위플래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악마와 같은 인신 공격과 한계를 뛰어 넘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천재성을 끄집어내는 플래처의 방식은 광수와 비슷하다. 그리고 그 방식을 뿌리치고 그만둬버리지만, 열정과 관심을 뒤로 돌리지 못하고 자신 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끄집어내는 앤드류는 준호를 연상시킨다.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개인적으로 <4등>이 훨씬 유려하게 풀어낸 것 같다. 앤드류는 플래처를 뛰어 넘는 엄청난 연습으로 플래처 앞에서 보란듯이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지만, 준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습을 한다. 그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거기에 엄마와 코치가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동안이나마 수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 않았다면, 그렇게 수영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대표팀 감독이 광수를 체벌하고 광수가 준호를 체벌하고 급기야 준호가 동생을 때리는(체벌하는 것처럼) 장면을 보고 있자니, 폭력의 되물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윤종빈 감독과 배우 하정우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 군대 내에서의 폭력의 되물림이 두 명을 죽음으로 몰고가는데, <4등>에서는 두 명의 수영 인생을 망치거나 망칠 뻔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폭력의 되물림, 정확히는 스포츠계에서의 체벌의 일상화와 되물림 또한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어려운 문제인 아이 교육, 답은 있을까?
영화는 참으로 중대하고 풀기 어렵고 심각한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다뤘다. 도무지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차라리 아이가 없었으면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다들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누구라도 준호의 엄마처럼 또는 그에 준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엄마, 내가 맞더라도 1등을 하는 게 좋아?
영화는 소년의 훌륭한 성장담을 유려하게 풀어내며 답을 제시한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에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의 앞날을 걱정해 1등을 외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모 자신들의 위신도 그 1등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부터 여유를 갖고 중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영화에서 준호가 지니고 있는 '천재성'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모든 걸 떠 맡기고, "너의 삶이니 너가 알아서 해라"하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이것도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여유를 갖고 "한 번 해봐"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칭찬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준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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