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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고도의 정치 공학이 아닌 고도의 수학이다? <박경미의 수학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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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경미의 수학N>



<박경미의 수학N> 표지 ⓒ동아시아


산수가 수학이 되고 난 후부터 수학을 멀리했다. 아니,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복잡하고 어렵고 이해할 수 없었고 자연스레 재미를 붙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와보니 수학은 쓸 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산수는 잘한다. 실생활에 빠질 수 없는 기본 연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살면서 수학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내가 수학을 하거나 누군가 수학을 하는 걸 보게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것이다. 이것들은 내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대할 때 보게 되는 수학 또한 정이 간다. 복잡하고 어려운 방정식은 눈을 어지럽히고 머리를 아프게 하지만, 무시하고 핵심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작년에 개봉해 많은 사랑은 받았던 영화 <마션>을 보면, 멧 데이먼이 분한 주인공 와트니가 1997년 화성에 버려진 우주선 패스파인더를 찾아 회전 거울과 아스키코드 표를 이용해 지구와 교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정보교환표준부호인 아스키코드는 128개의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터 127까지의 10진법 수 옆에 16진법 수가 병기되어 있고 각각에 대응되는 알파벳 52개, 숫자 10개, 특수문자 33개, 제어문자 33개가 적혀 있다. 와트니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바닥에 원을 그리고 16개의 영역으로 등분한 다음 회전 거울을 이용했다. 지극히 과학적인 영화인 <마션>에서 지극히 수학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이 <마션>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다양한 인문학적 수학 교양을 들려주다


<박경미의 수학N>은 이런 것들을 비롯해 다양한 인문학적 수학 교양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마션>에 수학적 이야기가 나오는지 더욱이 그게 정말 중요한 장면인지 몰랐을 것이다. 관심이 없고 멀리하니 보고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재미있다고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며 봤으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필즈상과 더불어 수학 분야의 또 하나의 영예로운 상이 가우스상이다. 2014년 가우스상의 수상자는 미국 UCLA대학의 스탠리 오셔 교수인데, 그는 1992년 LA 폭동 발생 당시 범죄자를 판별하는 데 기여하면서 유명해졌다. 다름 아닌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흐린 영상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한편 오셔 교수의 제자인 스탠퍼드대학의 로널드 페드큐 교수는 등위집합 방법으로 유체의 형태 변화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전문가이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포세이돈>,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특수효과가 이 방법을 이용했다. 2008년 페드큐 교수는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수학이 영상 관련해 혁명적인 일을 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둘 다 컴퓨터로만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학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데도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과학과는 달리 수학은 도대체 어디에 쓰일까, 써먹을 수 있을까 의문만 있었던 나는 이 사실 앞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실 단순히 의문이 드는 걸 넘어 무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수학을 하는 건 단순히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어김없이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 또한 고도의 수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난 몰랐다. 선거는 당연히 고도의 정치 공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떻게 수학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을까. 여하튼 우리는 현재 선거에서 최다득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법이다. 하지만 과반에 못 미치는 지지를 받고도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다수의 유권자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4 가지 선거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가 잘 아는 최다득표제, 유권자의 선호 순위에 따라 차등화된 점수를 부여한 후 합산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후보를 선출하는 보르다 점수법, 1위 표를 가장 적게 받은 후보를 탈락 시키는 방법을 계속 반복하는 최소득표자 탈락제, 두 후보씩 비교하여 우세한 후보에 점수를 준 후 이를 합산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후보를 선출하는 쌍대비교법. 


이것 중에 어느 게 가장 공정하냐고? 결론은 다 비슷비슷하다. 한편 케네스 애로는 세 명 이상의 후보자가 있는 선거에서 철저히 민주적이고 공정한 방법은 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어느 선거도 불완전하고 완벽히 공정하지 않다. 선거로 뽑힌 이들은 불완전하고 완벽히 공정할 수 없는 선거를 통해 뽑혔다는 걸 잘 인지하고 잠정적이고 한정적인 권력인 것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하겠다. 


수학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다


점점 느껴진다. 우리는 수학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수학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더 보태면 수학이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지금도 힘들 테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에 수학이 관련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다만 모르고 있을 뿐, 관심이 없을 뿐,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수학의 가장 기본은 '숫자'이다. 그것을 아는가? 본래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중국 등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숫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아라비아 숫자 외에 다른 숫자를 쓰는가? 그나마 로마 숫자를 간간히 볼 수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라비아 숫자가 유럽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말이라고 한다. 이후 아라비아 숫자와 로마 숫자의 대립은 상당 기간 계속 된다. 아라비아 숫자 등장 이전에 유럽은 로마 숫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라비아 숫자의 승리 이유를 명백히 밝히진 못한다. 다만 17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 숫자가 보편화되었음을 암시하는 그림이 있다는 걸 알릴 뿐이다. 그 그림은 <산술의 알레고리>라는 작품인데, 위치적 수체계를 적용한 아라비아 숫자와 그 계산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로마 숫자보다 아라비아 숫자가 비교우위를 지닌 건, 위치적 수체계였다는 것이다. 용두사미격 설명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대립을 역사상 많이 보이는 전통과 신흥의 대립이라고 본다면 얼추 답이 나온다. 전통은 신흥을 이기기 힘들다는 사실. 결국 신흥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여전히 수학은 어렵고 복잡하고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적어도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된 것 같다. 이 두껍지 않은 책 하나로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수학을 더 알고 싶다. 모르는 만큼 알고 난 후의 쾌감은 다른 무엇과 비교가 되지 않을 터였다. 다만, 앎의 형식은 수학자와는 다를 것이다. 수학에 의한, 수학을 위한 수학은 알고 싶지 않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처럼 인문 교양과 융합된 수학적 지식을 알고 싶다. 혹시 이건 나만의 편견이 아닐까? 수학자들도 수학에 의한, 수학을 위한 수학은 싫어하지 않을까. 그들도 실생활에 필요한, 인문 교양과 융합된, 재미있고 대중적인 수학을 추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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