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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뉴얼 중 하나만 정확히 따르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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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표지 ⓒ문학동네


혁명.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피 튀기는 투쟁 끝에 독재자를 끌어내린다. 자연스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독재 정권 아래서 힘들게 살아왔던 이들이 활짝 기지개를 편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꿈 같은 현재를 즐기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혁명, 이토록 좋은 세상을 주는데 누구든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가. 


먼저,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혁명에 동참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자신의 모든 걸 뒤로 한 채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세상을 바꾸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혁명에 동참할 사람이? 5,000만 명의 인구에서 5만 명이라도 있다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장렬히 산화한 이들이 많다. 


어떤 방법으로든 독재자를 끌어내렸다고 하자. 그런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지? 이 독재 정권을 파괴하는 데만 해도 벅찬대 어찌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게 다분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독재자를 끌어내려고 또 다른 독재자가 그 자리를 꽤 찰 것이다. 이 역시 역사를 들여다보면 무수히 발견할 수 있는 경우다. 


과연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훌륭한 민주주의 정권을 세웠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끝나는 걸까?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까? 저절로 행복한 미래가 만들어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놓아버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혁명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폭력 투쟁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가


'혁명'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는가. 체 게바라, 레닌, 마오쩌둥. 반면 간디, 넬슨 만델라, 마틴 루서 킹은? 이들은 모두 혁명의 세기인 20세기 인물들로 인류 역사를 대표할 만한 이들이다. 다만, 앞의 세 명은 유혈이 낭자한 폭력 투쟁을, 뒤의 세 명의 비폭력 투쟁을 하였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은 폭력 혁명가들이다. 그들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그들의 삶은 화려하다. 반면 비폭력 투쟁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진정한 투쟁인가? 이에 세르비아의 세계적인 비폭력 운동가 스르자 포포비치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문학동네)를 통해 비폭력 혁명을 설파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방법'을 설명하는데, 먼저 비폭력 투쟁의 모습과 특징을 보여주며 이어 비폭력 투쟁을 적용하는 실질적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먼저 저자에 대해 말하자면,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세르비아의 세계적 반독재 비폭력 운동 단체 오트포르!의 리더였으며, 비폭력 행동주의와 전략 응용 센터인 캔바스를 설립해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오트포르!'와 '캔바스'의 활동, 그리고 '직접적인 도움'과 함께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사례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역사상 수많은 비폭력주의 운동 사례가 함께 한다. 


저자의 '강의'를 요약해보자. 먼저 이길 수 있는 작은 전투가 무엇인지, 내 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세울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싸움의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새롭게 얻은 지지자들에게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비전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비전에 그들이 바라는 바를 포함 시켜야 한다.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로소 비폭력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제 권력을 지탱하는 기둥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비폭력 투쟁 이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국학자 진 샤프의 이론을 들어, 모든 정권은 몇 안 되는 기둥에 유지되며 기둥 한두 개에 압력을 가하면 체제 전체가 붕괴된다고 말한다. 모든 독재자는 경제적 기둥에 의지하며, 다름 아닌 평범한 국민들에 의해 유지된다. 즉, 평범한 국민들에 의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면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웃음과 유머 전략, 역풍 전략을 얹어라. 


당신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제일 먼저 이야기하기에 제일 중요한 건, 바로 '통합'이다. 운동을 하려면 언제나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1년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을 대표적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뽑았는데, 이 운동을 엄청난 유명인들이 지지했지만 미국 내에서 매우 구체적인 특정 계층에게만 큰 호소력을 지녔다고 일침 한다. 이는 제대로 된 통합을 하지 못한 채 선거를 치러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현재 대한민국 정치계의 야권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의 대신이다. 제발 좀 통합합시다. 더 광범위하게. 당신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싸움이기도 하니까. 


비폭력주의 운동의 역사적 인물인 넬슨 만델라는 본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섰다. 그러다가 몇 번이나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이후 극단적 폭력주의자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공격을 감행했고 정부의 가장 두려운 적이 되었다. 그는 다시금 체포되어 27년 간 투옥되었는데, 노선을 완화해 다시금 비폭력의 상징이 되었다. 폭력으로는 그와 국민이 누리고자 하는 미래를 성취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숫자 상으로도 비폭력 투쟁의 성공 확률이 폭력 투쟁의 성공 확률을 앞선다고 한다. 26%대 53%다. 저자는 통합, 계획, 그리고 비폭력이 성공적 투쟁의 삼위일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있다. 위에서 말했던 '혁명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라는 생각과 이어진다. 무슨 말인고 하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성과는 제대로 민주주의를 정착 시키는 과제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승리로 간주될 수 있다는 얘기다. 원하던 목적을 이룬 순간이 언제인지 파악하고 제때에 승리를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잊으면 안 된다. '독재자 퇴진'이 끝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의 매뉴얼 중 하나만 정확히 따르자


우리나라는 4.19 혁명, 부산마산 항쟁, 6.10 항쟁을 통해 우리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민주화를 달성한 역사가 있다. 그 정신은 1919년 3.1 혁명으로부터 이어진, 굉장히 유서 깊은 '전통'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혁명의 깃발을 내세우고 시위에 나선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부터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그들을 지지하지만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 상당수가 특정 정당을 응원하며 선거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낫다거나, '어쩔 수 없이' 찍고 있는 것 같다. 나부터 그러니까. 이 역시 '우리'와는 상관 없는 '그들' 만의 리그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뜻을 보태야 하겠다. 


이 책의 매뉴얼 중 하나 만이라도 정확히만 따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수단의 운동 단체 기리프나의 '우리는 이제 신물이 난다', 오트포르!의 2010년 메시지 '그는 끝났다' 같은 여러 이익 단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광범위한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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