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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인지...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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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표지 ⓒ한겨레출판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안경을 썼으니까 거의 20년 동안 안경을 써온 거다. 이제는 안경이 나의 신체 일부분인 듯 여겨진다. 그런 내게도 안경을 쓰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중학교 2학년 이전이다. 시력이 1.5, 2.0일 정도로 좋았었다. 왜 안경을 쓰게 되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하찮은 이유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자초한 거니까. 어린 마음에 안경 쓰는 게 멋있어 보였다. 시력을 나쁘게 하려고 일부러 TV도 많이 보고 컴퓨터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소원(?)을 성취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정반대의 소원이 생긴다. 눈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수술을 하면 가뿐하게 시력을 회복할 수 있겠지만, 나름의 이유로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안경이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져 없으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안경으로 얼굴이 변해서 안경이 없으면 얼굴이 부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안경이 눈을 보호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있다. 눈 앞에서 보호막처럼 가리고 있으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신체의 일부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 보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면? 손이나 발을 쓰지 못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섬뜩하고 슬픈 상상은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녕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절망에 빠질 것 같다. 너무 무섭다. 그런 눈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눈은 왜 두 개인지, TV나 컴퓨터를 많이 하면 왜 눈이 나빠지는지, 피곤하면 눈이 왜 충혈되는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나도 모르겠다. 


눈은 왜 두 개인가?


이중 제일 기본적인 질문 '눈은 왜 두 개인가'에 대한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한겨레출판)의 답은 대략 이렇다. 시야의 확장 측면에서건 입체시 획득의 측면에서건 눈이 하나일 때보다 두 개일 때 더 잘 볼 수 있다. 일단 하나보다 두 개가 더 좋은 것이다. 그러면 세 개, 네 개면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눈의 개수가 늘어나면 훨씬 더 많은 정보처리 능력이 뇌에 요구될 것이다. 체중의 2퍼센트에 불과한 뇌가 우리 몸 전체에서 사용되는 포도당의 1/4를 먹어 치우는데, 눈이 더 늘어나면 시야의 유리함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갈 거라는 거다. 저자의 생각에 눈이 두 개인 건 적정하게 타협했다는 것. 


완벽한 답이 될 순 없어도 일면 타당한 의견인 듯하다.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눈이, 시야의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한편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물체들이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곤충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형성하는 겹눈의 개수는 두 개라고 한다. 눈의 개수를 통해서도 자연의 섭리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그렇다면, 'TV나 컴퓨터를 많이 하면 왜 눈이 나빠지는지'에 대해 저자는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문 자체가 틀렸다. 이 질문은 TV나 컴퓨터를 하면 눈이 나빠진다는 가정 하에 있다. 하지만 TV나 컴퓨터를 하면 눈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히는 확실한 증거가 보고된 바 없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는 것 역시 시력과 관계가 작았다. 문제는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볼 때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다. 너무 가까이서 보는 건 시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눈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인지..


보이지 않는 상상을 제일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조차 눈에 대해선 까막눈이었다. 도무지 아는 게 없다. 아니, 조금은 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TV를 볼 때면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가끔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스르르 감기기도 한다. 그러곤 까무룩 의식을 잃은 듯 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똑같이 눈이 감겼고, 눈을 감았는데 왜 잠이 오고 왜 잠이 오지 않을까. 그건 아마 눈의 활동보다 뇌의 신호가 우선이 아닌가 싶다. 정확히는 뇌의 신호에 의해서 눈이 활동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건 눈에 변화가 있어야만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이다. 내 스스로 눈을 공부하고 눈에 대해 알아볼 수가 없고 알아보기는 힘들지 않은가. 눈을 이루는 것에는 각막, 홍채, 수정체, 유리체, 망막, 황반, 시신경, 시각피질 등이고 이중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각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부위가 바로 황반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런 황반은 지름 3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솔직히 각막, 홍채, 수정체, 유리체, 망막, 시신경 등은 들어봤어도, 가장 중요하다는 황반은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정녕 부끄럽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핏발이 선 채 일을 하고 있다. 눈에 핏발이 섰다는 건 정확히 말해 '어떠한 자극으로 인해 각막 혈관이 확장되었다'는 말이다. 흔한 원인으로 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데, 몸이 좋지 않으면 눈이 제일 먼저 반응한다는 걸 방증 한다. 눈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고마운 존재인지 새삼 느낀다. 


그러고 보니, 눈 뿐만 아니라 코, 입, 귀 등 다른 신체 기관들도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아는 게 없고, 알려고 하면 너무 어렵다. 기본적인 궁금증부터 풀면서 접근하면 그 소중함을 다시금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저자 '하리하라'의 차기작 '코 이야기' '입 이야기' '귀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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