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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다 <범인은 이 안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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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범인은 이 안에 없다>



<범인은 이 안에 없다> 표지 ⓒ생각비행


얼마 전에 인터뷰라는 걸 해봤다.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로서 말이다.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저자를 인터뷰했는데,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인터뷰이가 누군지 알아야 했다. 그의 경력과 이력을 섭렵하고, PD였던 만큼 그가 만들어 낸 프로그램을 섭렵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책도 잘 알아야 했다. 한 번 읽고 서평도 썼지만,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질문 거리를 찾아야 했다. 책과 관련된 것이지만,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말할 수 있게 유도하는 질문이어야 했다. 초보 인터뷰어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종종 인터뷰 모음집이 출간된다. 인터뷰를 해보니 인터뷰이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겠다. 대부분 인터뷰이는 유명할 것이다. 일단 유명해야 독자들을 혹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유명한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일반적인 인터뷰로는 독자들을 혹하게 할 수 있을지 언정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인터뷰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얘기다.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다


그런 면에서 <범인은 이 안에 없다>(생각비행)은 성공적이다. '딴지일보' 부편집장 김창규가 대한민국의 비범한 여섯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 걸 모은 이 책은,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 면면은 강준만, 유시민, 유홍준, 이외수, 이철희, 주진우. 모르긴 몰라도, 정치적 색깔은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 이외수, 주진우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름 자체가 워낙 유명하니까. 반면 강준만, 유홍준, 이철희는 그들의 콘텐츠를 통해 알고 있었다. 강준만, 유홍준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일가를 이룬 이들이고, 이철희는 <썰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이들을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이들 중 사람 자체를 제일 모르는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강준만이다. 콘텐츠로는 제일 방대할 것인데, 그래서 생각이나 사상을 제일 많이 노출한 사람일 텐데, 난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가 최고의 위치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명 '야권 집권 이데올로기'의 대가 강준만이, 감히 노무현 대통령이 미는 일에 반기를 들었고,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비난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면서 강준만을 응원하고 메시아처럼 받들던 사람들이 싹 돌아섰다. 


강준만은 거기에서 제대로 자신을 뜯어보고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강준만의 삶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그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꿈은 '지역언론'이라고 한다. 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늦게나마 그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의 저서들을 섭렵해보려 한다. 


생각 외의 유홍준, 조금은 실망인 이철희 등


유시민, 이외수, 주진우는 익히 알고 있던 그들과 크게 벗어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알고 있는 과정이나 결과에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큰 형상으로만 알고 있어, 그들을 생각할 때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나 밉고 성향이 다르고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떠나, 그들은 마치 방송인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을 잘 포장할 줄 아는, 혹은 자신도 모르게 포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물론 오해일 수 있다. 


유홍준은 겉으로도 꼬장꼬장함이 보인다. 유홍준이라는 사람 자체에서도, 유홍준이 만든 콘텐츠에서도. 그만큼 자부심도 엄청나고 자신에게 확고하고 콘텐츠는 완벽에 가까울 것 같다. 인터뷰를 봐도 그 느낌은 거의 똑같다. 그런데, 인터뷰어도 느낀 거지만 그의 인터뷰로도 그의 팬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가 믿는 건 한국 미술사밖에 없어'라고 단언하며, '책을 보면 될 것이지 인터뷰를 할 게 뭐 있냐'고 말하는 그다. 그만큼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 그가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책을 봤지만, 그정도의 노력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 내심, 그는 자료가 아닌 말로 책을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가 꼬장꼬장한 것도 사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저자라는 자부심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배움과 노력이 있었다. 그를 설명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배움과 노력인 것이다. 


5명을 언급했고, 나머지 한 명 이철희가 남았다. 그런데 이철희는 원래 잘 몰랐고, <썰전>을 통해서 겨우 조금 알게 되었으며, 이 책을 통해서도 아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철희라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할까. 인터뷰어는 이철희를 (자기 욕망에)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 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보고 이철희에 대해 더 모르게 되었다. 그는 전략가인가, 정치평론가인가, 정치인인가, 방송인인가? 더 지켜봐야겠다. 아직까지 그에게 호감은 있다. 


하나하나가 큰 산, 높은 봉우리다


이들을 굳이 표현하자면, 하나하나가 큰 '산'인 것 같다. 산이라기 보다 높은 '봉우리'라고 해야 할까. 우뚝 솟은 봉우리는 사방 팔방 어디서도, 멀리서도 보인다. 그런데 막상 다가가면 보이지 않고, 보고 싶어 얼굴을 들면 목이 아프다. 그래서 만나고자 산을 오르면 너무 힘들고, 눈으로 보고 만져 본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는 한편, 유명한 봉우리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자 하기 때문에 쉽게 알려진다.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정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정복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어찌 그 큰 산을 그 큰 봉우리를 정복했다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제목도 그 사실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범인(凡人)은 이 안에 없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은 이들 6명 중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남의 인생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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