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차의 지구사>
<차의 지구사> 표지 ⓒ휴머니스트
'차 한 잔 드릴까요?'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의향을 여쭙는다. 주인은 차를 준비하며 아울러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손님은 주인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 분위기를 파악하고 역시 준비를 한다. 그러고는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대화를 시작한다. 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에 차는 자주 즐기느냐, 차의 풍미가 아주 좋다, 어디서 구입할 수 있겠느냐,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차를 추천해 달라, 등등.
우리나라가 차보다 커피를 즐기는 이유
이런 모습은 세계 어디서든 목격할 수 있다. 차는 그야말로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차보다는 커피이다. (물 대용으로 먹는 보리차나 결명자차는 제외하고.) 나도 그러한데, 차보다 커피가 덜 부담스럽다. <차의 지구사>(휴머니스트)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분 음식과 비전분 음식을 입 속에 한꺼번에 넣고 먹는 습관을 가진 한국인에게 식후 짠맛을 상쇄 시켜주는 음료는 숭늉이었다. 1970년대 말 이후 전기밥솥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 이상 가정에서 숭늉을 만들어 먹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자리를 커피, 그중에서도 믹스커피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숭늉에서는 단맛(포도당)과 동시에 탄 맛도 느낄 수 있는데, 믹스커피에서도 역시 단맛과 탄 맛이 난다. 한국인이 '밥 + 탕 + 반찬'이라는 식사 형태를 지속하는 한 단맛이 나지 않는 차는 식후 음료로 자리 잡기 어려울 듯하다."
한국인의 짠 맛 나는 식사에는 씁쓸한 맛의 차 대신 단맛의 믹스커피가 어울리나 보다. 그러는가 하면 한국인의 식사가 다양한 형태로 바뀐 지금,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면 차도 인기를 끌어야 하는데, 커피가 '건강에 좋은' 차라는 개념도 가져가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커피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연구가 많이 나오지 않는가? 만국 공통의 언어인 차가 한국에서는 비리비리 하다.
처음에 차는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귀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더불어 갈증을 풀어주고, 힘을 북돋워준다. 불교 신자들에게는 명상에 꼭 필요하고, 일본인들에게는 차가 고결한 대상이다. 전 세계인들의 차 마시는 방법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중국인은 자그마한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일본인은 차를 휘저어 거품을 만들며, 티베트인은 버터를 넣는다. 러시아인은 레몬을 곁들이고, 영국인은 밀크와 설탕을 넣으며, 인도인은 연유를 넣는다. 우리나라는? 딱히 특색이 없는 듯하다. 세계적인 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과 일본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이토록 차를 즐기지 않으니 미스터리 할 뿐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차, 그 종류는?
차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차의 고향은 중국이다. 그렇지만 차나무의 기원은 인도와 중국이다. 차나무는 재배 지역의 이름을 붙여 '중국' '아삼' '캄보디아'로 나뉘는데, 중국은 말 그대로 중국에서 났고 아삼은 인도에서 났으며 캄보디아는 캄보디아에서 났다. 다만 캄보디아는 중국과 아삼의 교배 품종이다.
책에 따르면, 차의 종류는 찻잎을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대개 백차, 황차,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가 있다. 이를 다시 비발효와 반발효, 발효로 나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네 가지 차와는 다르게 백차와 황차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백차'라는 이름은 찻잎을 감싸는 여린 은백색의 솜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중국 푸젠성의 특산물이다. 신선한 잎을 볕에 말리거나 약한 불로 건조 시키는 두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 '황차'는 오직 중국에서만 생산된다고 한다. 열처리와 열건조를 거친다.
'차' 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차를 마시는 것과 그 의식은 일본인의 생활 방식과 예술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도(茶道)'의 나라이다. 불교와 함께 전해졌고, 불교 의식과 함께 형태가 정립되었다. 반면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현재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차는 차나무에서 나온 진정한 차가 아니다. 거의 약효 성분이 다분한 차들인데, 주로 차가 가지는 '건강함'을 수용했나 보다.
차는 전 세계로 퍼졌다. 아시아 전역은 물론 서양으로 까지 퍼진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서양에서도 처음엔 차를 약용 음료로 썼다. 자연스럽게 상류층 음료가 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가격이 많이 내려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차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이 팔리면 좋지 않겠는가? 조금은 웃긴 일화가 하나 전해오는데, 이 새롭고 이국적인 재료를 갖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공작부인이 친척에게 사용법도 설명하지 않고 차를 보냈는데, 요리사는 찻잎을 끓여 물을 버리고 시금치 같은 채소처럼 찻잎을 요리해 내놓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훌륭한 요리법인 것 같다.
차의 다양하고 섬세하고 혁명적이며 짙은 역사
한편 '차'에 관련된 중요하고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다. 18세기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차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에 식민지 주민들은 차를 밀수했다. 동인도회사가 파산할 위험에 처하자 영국은 동인도회사가 정부에게 차에 대한 세금을 폐지한다. 결국 식민지 주민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식민지 주민들은 다시금 영국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차를 마시지 않는 쪽을 택했다. 급기야 선창에 차를 내리는 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인디언으로 위장해 배에 올라탔고 대량의 차 상자를 배 밖으로 던졌다. 당연히 영국은 이를 강력하게 탄압했고, 이후 영국과 미국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차는 그야말로 다양하고 섬세하고 혁명적이며 짙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뿌리내려 있으면서도 그 나라의 영향을 받아 문화를 흡수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렇지만 차를 즐긴다는 면에서는 모두 같다. 전 영국 수상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추울 때면 자기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것이고 당신이 더울 때면 시원하게 식혀줄 것이다. 당신이 우울할 때면 위로해줄 것이고 당신이 흥분해 있을 때면 진정시켜줄 것이다."
차가 가진 여러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차 처럼 자주 즐기면서도 긍정적인 게 없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즐기는 술, 담배, 커피 등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지 않은가? 오히려 부정적이면 부정적이었지. 개인적으로 물을 자주 안 마신다. 그런데 언젠가 중국 차를 마셨을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물을 섭취했다. 그 시간이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맛도 아주 좋았다. 그렇게 보면 차는 너무 매력적인 친구다. 맛과 건강과 행복을 완벽하게 챙겨줄 게 분명하다.
'신작 열전 > 신작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극과 고통에서 행복과 사랑을 끄집어내다 <젖은 모래 위의 두 발> (0) | 2016.01.04 |
---|---|
가족에서 공동체로, 혈연에서 관계로 <가족 쇼크> (0) | 2015.12.21 |
자기 과잉의 시대, 도덕적 실재론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인간의 품격> (4) | 2015.12.11 |
원숭이의 재치와 날렵함으로 침체의 수렁을 건너뛰다 <트렌드 코리아 2016> (4) | 201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