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족 쇼크>
<가족 쇼크> 표지 ⓒ월북
우리 가족은 일반적이지 않다. 아버지는 회사를 다니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일을 해오셨다. 일하는 날짜나 시간,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 반면 어머니는 큰 마트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주일 내내 일을 하신다. 동생은 외국에 나가 있고, 나는 평범하게 회사에 다닌다.
내가 퇴근하면 언제나 아버지는 주무시고 있고 내가 잠자리에 들 때 즈음 어머니가 퇴근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견디기 힘들다. 가장이라면 제일 힘들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왜 어머니가 제일 힘들 게 일을 하는 거지? 아이러니 한 건, 그럼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밤늦게 까지 일을 하다 보니 아버지가 집안일을 어느 정도 도와준다. 밥, 설거지, 빨래 등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체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지만, 이런저런 모습들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난 아버지 다운 아버지를 존경하고 싶고, 어머니 다운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 잘못된 생각인가?
가족, 혈연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로,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와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잘하면서 남편을 보필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님 말에 순종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모습을 당연한 듯이 봐왔다. 나도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에 대해, 즉 가족에 대해 <가족 쇼크>(윌북)는 혈연이라는 당위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할과 서열이 강조되는 혈연 관계 대신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솔직하고 다정하게 함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게 곧 가족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한 충격적인 선언이다.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던 '천륜'은 더 이상 가족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된 것인가. 가족 간에 천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인가.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게 무엇일까.
한국의 부모는 아이들을 주어진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래까지 통제할 수 있는 존재, 나아가 자신의 확장된 자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겨나 평생 계속된다.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이다. 그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권리도 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 부모에게 아이는 가르치고 이끌고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작고 어린 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이가 선택한 것에 응원을 보낼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인 개인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가족은 그런 개인들의 공동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 성립이 결코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그 나라에 맞는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족 쇼크>가 가족의 재정립을 말하고 있는 건,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에 따라 가족의 개념이나 형태도 변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변화는 변화고 가족의 본질과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본질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이 시대 최대 쟁점 중 하나, 1인 가구
1인 가구는 이 시대의 최대 쟁점 중에 하나이다. 당연히 <가족 쇼크>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가족의 해체와 탄생.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1인 가구가 많은데, 그런 경우 고독사 등 상당히 많은 문제가 노출된다. 그렇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만이 고독사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1인 가구와는 별개로, 유난히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점이 고독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가족 내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고 느낄 때 그 안에 머물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가장이 그렇다. 사회 내 모든 개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활 방식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혈연은커녕 일생 한 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실험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 8주 동안 매주 한 번씩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핵심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중요한 한 걸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가족이라 불릴 만한 관계가 되었다. 진짜 어려울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든든한 이웃이 생겼다.
가족에서 공동체로
기능적 역할이 축소된 가족은 이제 온전히 관계로 남게 된 것이다. 결혼이 사랑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듯이, 가족 역시 권위와 역할이 아니라 정서적 결속감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를 타자로 구분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가족 실험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일깨웠다. 혈연으로 연결된 구성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으며 가족이라는 명분을 지키면서 사는 건 더 이상 가족의 삶이 아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키리위나의 오카이보마 마을엔 약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핏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되, 소통을 통해 공존한다. <가족 쇼크>에서 말한, 가족이 지향해야 할 공동체로서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생산하고 자유롭게 사랑한다. 모든 일은 함께 의논하며 선함의 순환을 믿는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을 함께한다. 가족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기본 가치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 그들은 혈연을 중심으로 뭉친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돕는 가족이다.
'가족'은 자연스레 '공동체'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예전과 같은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관계'이다. 한 집에 사는 것 만으로 가족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가족은 이제 서로의 인생을 지지해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서로 의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개체성을 인정하며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머잖아 새로운 가족이 올 것이다. 나부터 새로운 가족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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