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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다... 남는 게 뭐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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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다들 아는 사실일 테지만 새삼스럽게 언급하길, 우리나라 평균 노동 시간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현재의 선진국들이 50~70년대 그야말로 한창 경쟁적으로 발전할 시기에 일했던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90년대가 되면서 노동 시간을 크게 줄였는데 우리나라는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성실한 나라'가 아닌가. 


엄밀히 말해서 나라가 성실한 게 아니고 나라를 구성하는 이들이 성실하다. '성실'이라는 덕목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성실은 기본 덕목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에 해당한다. 여유 따위는 배제한 채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보다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이다. 여유를 버리고 열심히 일해서 여유롭고자 한다. 과연 뜻대로 될까? 


태반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본 사회에서의 여유는 돈일 텐데, 돈을 아무리 벌어도 한 걸음 또는 몇 걸음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집값, 물가, 세금 등에는 미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여유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도중에 무슨 큰일이라고 일어나면 말짱 도무룩인 건 당연하다. 


성실한 나라 한국의 소시민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성실한 우리나라의 한 기구한 운명의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여공이 아닌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엘리트'로서의 잘못된 길을 결정하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이 꼬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수남(이정현 분)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최연소 나이로 최고로 많은 자격증을 보유하며 잘 나갔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런 사실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강점을 살려 취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여자로서의 강점을 살려야만 취직을 할 수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수많은 자격증을 뒤로 한 채 수남은 공장으로 팔려가다시피 한다.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그곳에서 청각 장애인 남자를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을 한다. 문제는 수남과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그 남자의 귀가 완전히 먹어버렸다는 것. 수남은 2,000만 원을 쾌척해 인공 와우를 달아준다. 하지만 바로 그 인공 와우 때문에 수남의 남편 규정은 손을 잘리는 부상을 입는다. 더욱이 수남의 실수 때문에 잘린 손을 붙이지도 못했다.  규정은 그렇게 10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한다. 반면 수남은 규정의 꿈인 '집 장만'을 위해 10년 간 그야말로 미친듯이 일에 매달린다. 결국 집 장만에 성공하지만, 10년 동안 몇 발 빨리 오른 집값 때문에 억 단위의 대출을 해야 했다. 규정이 할 수 있는 건, 아내를 위한 진심 어린 눈물 뿐이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수남을 통해 포기를 점점 늘려가는 현재의 젊은 세대 모습을 반영한다. 특히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사회에 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이들의 절망적인 모습 말이다. 여공이 아닌 엘리트 코스로의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는 수남의 말은 기막힌 풍자에 해당된다. 그렇게 결국 아르바이트생으로의 길을 걷게 된 수남, 그리고 현재의 젊은 세대들. OECD 국가 최저 수준인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도대체 어떤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극 중에서 수남은 하루에만 4개의 아르바이트를 함에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어 보인다. 


열심히 일하고, 여전히 열심히 일한다


한편 규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자살을 결심한다. 너무 오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수남, 가까스로 규정을 살린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규정. 그 병원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만날 때마다 존엄사를 제안하는 담당 의사. 하지만 수남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할 뿐이다. 


집을 내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는 수남. 그런데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수남의 집이 재개발 대상 지역에 속해 있다는 것. 재개발 대상이 되면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러면 남편의 병원비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수남은 집을 팔지 않고 세를 줬고, 자신은 조그만 고시원에 가서 혼자 생활한다. 여전히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그런데 옆 동네에서 퇴역 원사, 구청 소속 심리상담사, 세탁소 주인 등을 주축으로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동네가 재개발 대상으로 되지 않아서 였다. 이에 수남은 구청 담당 계장을 찾아가 전말을 듣게 되고, 수남으로 하여금 재개발 동의 서명을 받아오게 한다. 필연적으로 수남은 그들과 한판 붙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실수로 그들 중 한 명을 죽인 수남은, 어쩌다 보니 다른 이들도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수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는 중반 이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제자가 아닐까 싶을 만큼 박찬욱 식의 분위기와 연출 방식을 선보인다. 지난 2월에 개봉한 <꿈보다 해몽>의 이광국 감독이 홍상수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조연출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감독은 박찬욱의 수제자라고 하진 않다고 한다. 다만,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정현의 캐스팅을 도왔다고 하는 후문이다. 박찬욱 식 영화를 좋아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영화 또한 좋아할 게 분명하다. 


소시민끼리 죽고 죽이다


그건 그렇고 수남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일까. 그 살인은 100% 그녀의 잘못일까? 물론 1%라도 살인에 관여가 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도 100% 잘못한 게 맞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질문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결국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끔 한 건 그녀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아니란 말인가. 일례로 구청 담당 계장은 그녀로 하여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해 놓고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아예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소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해 놓고는 말이다. 


옆 동네 사람들도 하나 같이 소시민이다. 선동하는 퇴역 원사나 구청 소속 심리상담사, 특히 세탁소 주인도 소시민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다. 그들도 수남처럼 돈이 필요한 것 뿐이다. 결코 나쁜 악당들이 아니다. 재개발이라는 게 갈 곳 없는 사람들한테는 생애를 걸고 막아야 하는 악마일 것이고, 돈을 챙기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든 추진해야 하는 축복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2015년의 걸출한 독립 영화,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


2015년의 걸출한 독립 영화 중 하나인 이 영화에도 아쉬움이 있다. 영화 설정 상 후반으로 갈수록 수남의 남편 규정의 존재가 조금 억지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 장면을 일품인데, 그 이면을 생각하면 반감되는 게 바로 규정의 존재이다. 수남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유가 사실은 규정 때문이다. 오로지 규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남이 규정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주어야만 하지 않을까. 애초에 수남과 규정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기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규정이 없었으면 수남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을 테니 이 영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감독이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하고, 모르긴 몰라도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함께 시종일관 얼굴을 펼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는 일품이다. 그만큼 오글 거리지도 시시하지도 않게 암울한 현실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 잔혹 코미디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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