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돈나>
영화 <마돈나>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2002년 <해안선>으로 나의 독립 영화 사랑이 시작되었다. 2005년엔 <용서 받지 못한 자>이, 2008년엔 <똥파리>가, 2011년엔 <파수꾼>이, 2013년엔 <가시꽃> <명왕성>이, 2014년엔 <셔틀콕> <거인>이 즐거움을 주었다.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라는 채널을 이용함에도,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감독들이 있어 매년이 행복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돈나>라는 작품이다. 기존에 보았던 독립 영화들과 결을 같이 하는, 잘 된 작품들의 전철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작품이다. 단단한 내공이 엿보인다. 독립 영화를 거론할 때 빠짐 없이 리스트에 오를 영화이다.
위에서 거론한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좋은 독립 영화들만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통점들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다. 끝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견되어 있다. 먼저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 위의 모든 영화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 또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죽는다. 그러면 당연히 세드 엔딩이다. 해피 엔딩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독립 영화를 보며 알아낸 것인데,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우리 모두가 이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헤어 나오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아마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굴레는.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이 세 글자이다. 영화계의 징스크인지, 아니면 세 글자가 풍기는 서늘한 이미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명백한 공통점인 건 확실하다.
병원 VIP실에서 벌어지는 구역질나는 계략, 그러나...
이렇게 구구절절 독립 영화에 대해 말한 건 또 하나의 좋은 독립 영화 <마돈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다. 선배 독립 영화의 기를 받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 민주주의가 별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그렇다고 독립 영화가 진리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독립 영화'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병원 내 VIP실에 해림(서영희 분)이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곳엔 재벌 회장이 뇌사 상태로 10년 째 누워 있다. 그 옆에는 아들 상우가 10년 째 지키고 있다. 꼬락서니를 보면 효자 같지는 않은데,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돈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담당 간호사로부터 들려온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누워 있는 재벌 회장 앞으로 한 달에 10억이 들어온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모든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을 남겼기에 아들이 한사코 그의 죽음을 연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혹은 자연스럽게 해림은 이 치졸하고 구역질 나는 계략에 말려 들어간다.
어느 날,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 미나(권소현 분)가 실려온다. 상우는 그 환자를 이용해 아버지를 살리려 한다. 그는 해림에게 시켜 그 환자의 장기 기증 동의서를 받아오게 한다. 병원의 실소유자 상우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해림은 받아오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환자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영화는 해림이 환자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뒷이야기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요동친다. 그 전까지는 모든 등장 인물들이 일정 정도의 톤을 유지한다. 병원이라는, 그것도 VIP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유난히 조용하다. 다들 삶에 대한 특별한 목적이 없거나, 이미 충격적인 일을 겪어 미련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해림도 상우도 마찬가지이고, 병원의 간부도, 이제 막 레지던트를 끝낸 담당 의사도, 상우에게 잘 보여 한 몫 챙길 속셈밖에 없는 담당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재벌 회장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그의 죽음을 한사코 막으려는 그 알 수 없는 싸움이 내부에서만 요동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재벌 회장에게 또 한 차례 심장 정지가 찾아 오고 다시 한 번 장기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서 영화는 요동친다. 이어 정체 모를 뇌사 상태 환자가 들어오고 그 환자가 임신 상태에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점점 더 심해진다. 고요했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웃던 낯짝이 일그러지고, 항상 저음을 유지하던 톤은 한없이 높아 간다. 그래도 해림은 끄덕 없이 그 정체 모를 환자, '마돈나'라 불렸던 이의 뒤를 추적한다.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기필코 찾아야 했다. 그러면 상우의 계략을 어느 정도 무마 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이보다 불편한 영화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완벽하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충격에 충격을 더한다. 특히 마돈나의 뒷이야기는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과 공감이 이상하게 뒤틀린 카오스적 충격의 연속이다. 그녀가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는 누군가는 반드시 겪었을 것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면서도, 터무니 없는 분노와 슬픔이 있기 때문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곤 해림의 숨겨진 이야기가 정점을 찍는다. 기묘하게 카타르시스까지 일게 하는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다. 영화적으로만 말하자면, 완벽한 시나리오의 승리다.
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손이 떨려올 정도의 연속되는 충격은 급격히 끝을 맺는다. 슬픈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크레센도'만 계속된다. 아주 정교하게 설정되었기에 장면의 전환에 이질감이 없어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편안함은 시나리오의, 이야기의 흐름이고 내용으로는 이보다 불편한 영화를 찾기 힘들었다.
이 영화에도 어김 없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직 피해만 당했던 이도 결국에는 가해를 저지르고 만다. 정말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계속되는 충격 속에 숙연함과 함께 미안함이 들게 하는 인물이다. 이 국가는, 이 사회는 그들을 구제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왜 누구를 위해 누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한편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힘이 없어 피해를 보는 걸 구제할 수 없다면, 최소한 가해자가 되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가해자가 된다면 구제를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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