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심야식당>
영화 <심야식당> 포스터 ⓒ영화사 진진
신주쿠 뒷골목, 남들은 퇴근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자리에 들 때쯤인 12시에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이름하야 '심야식당'.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은근히 사람이 많다.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는 뭐든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음식이 맛있기 때문일까? 이성이 잠들고 감성이 깨어나는 새벽녘 시간이기 때문일까? 안 가봐서 안 먹어봐서 알 순 없지만, 매력 하나는 철철 넘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식당이 있는 걸로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술장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술밖에 찾을 게 더 있겠나. 요즘엔 24시간 하는 가게들도 많던데, 그런 곳에는 어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겠다. 반면 '심야식당'은 정확히 12시부터 7시까지 '음식'을 만들어준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영화 <심야식당>은 '심야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엔 여러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아무래도 새벽이다보니 지극히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늙은 부자의 세컨드였던 여자,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차인 가난한 월급쟁이, 고향을 떠나 가난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젊은 처자,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내를 잃은 이, 그 사람을 동정했다가 그 사람의 갑작스런 사랑 고백을 받고 고민하는 젊은 처자 등. 각각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 세 가지 음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세 가지 음식,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이들과 같이 심야식당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이들이 있는데, 스트립댄서, 게이바 마담, 조폭, 요정 주인 처럼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그들이다. 또 평범한 중년 남자, 청년, 세 여인 등도 같이 한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과 평범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둘러 앉아 위화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심야식당 밖에 없을 거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마스터의 존재, 뒷골목에 자리잡은 위치, 새벽에만 문을 여는 시간, 서로 얼굴을 맞댈 정도로 상당히 좁은 크기 등이 작용한다.
이들의 겉모습은 참으로 평범하다. 그러나 그 안은 말 못할 사정과 함께 상당한 고난 그리고 잔인함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특징이기도 한대, <심야식당> 속 인물들도 그러하다.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 고난과 잔인함을 들어주고 음식으로 위로해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돈 많은 부자의 세컨드였던 타마코. 그녀는 유언도 없이 갑자기 죽어버린 부자의 장례식을 다녀온 뒤 어김없이 심야식당을 찾는다. 마스터는 그녀에게 일본식 파스타 '나폴리탄'을 선사한다. 그걸 먹고는 행복에 젖는 타마코. 그녀에게 젊은이가 다가온다. 그 둘은 생각지 않게 좋은 인연으로 발전한다. 과연 그들의 행복은 계속될까?
돈이 없어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미치루는 우연히 심야식당을 지나가다 들러 많은 음식을 시키곤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며칠 뒤 다시 찾아와선 백번 사과를 하고 돈이 없으니 대신 일을 시켜달라고 간청한다. 마침 손에 무리가 온 마스터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마밥을 선사한다. 너무 행복한 미치루. 그녀는 이후 뜻밖의 솜씨로 마스터와 손님들을 감동시킨다. 마스터의 손이 나아가는데, 미치루는 어찌 될까?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대지진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해 후쿠시마로 봉사를 떠나곤 하는 아케미. 그런데 요 몇 주 째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프러포즈까지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아내를 잃고 힘겨워 한 켄조가 그다. 급기야 켄조는 그녀를 보기 위해 도쿄까지 왔는데, 아케미는 그에게 사랑이 아닌 동정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마스터는 그에게 카레라이스를 선사한다. 그 카레라이스는 다름 아닌 아케미가 후쿠시마에 가서 켄조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선사한 음식이었다. 켄조는 깨달았을까?
죽음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일본 사회
그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듯보인다. 일견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이 있다.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소품이 있는데, 누군지 모를 이의 '납골함'이다.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납골함. 마스터는 이 납골함을 2층에 올려 놓고 매일 같이 모시며 기도를 드린다.
작금의 일본은 사회 자체가 죽음과 굉장히 맞닿아 있는 분위기다. 영화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런 사회 분위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 시작부터 돈 많은 부자의 죽음이 나온다. 그 죽음은 그렇다 치자.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치루는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다. 젊은이가 돈이 없다는 건 일자리가 없다는 뜻일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포세대'라고 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세'. 요즘엔 다시 인간 관계, 내집 마련 2개를 늘려 '오포세대', 거기에 다시 취업, 희망 2개를 늘려 '칠포세대'로까지 발전했다. 그야말로 달관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치루는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기 직전 마스터가 동아줄을 내려준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경우이고, 일본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다름 아닌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앗아간 미증류의 대재앙이 눈앞에서 벌어진 걸 본다는 건 상상을 초월한 경험일 것이다. 일본은 그런 자연 재해를 평생 안고 갈 운명이지만, 원자력 발전소까지 폭발해 끊임없이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경험을 해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안전하다고 믿었던 현대 사회에서 말이다. 죽음의 사회이다.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말로 위로해주는 대신 입을 감동시킨다
영화는 젊은 세대의 아픔과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넣어 뒤로 갈수록 죽음의 그림자를 더하는 수순을 밟고, 그동안 숨겨놓았던 납골함을 등장시켜 마무리를 시킨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죽음의 공포를, 일본에서의 죽음이 가지는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건 심야식당이 모토로 삼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물러서지 않고 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어루만져 주거나 다독여주지 않는다. 다만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대접할 뿐이다. 말[口]로 상대방을 위로해주는 대신, 상대방의 입[口]을 감동시키려는 생각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여러 가지로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이지만, 그 위로 받는 영혼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려니 마음이 따뜻해지기 전에 먼저 아픔을 각오해야 한다. 말로 위로하는 대신 입을 감동시키려는 생각, 따뜻해기지 전에 아픔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죽음으로 죽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이 사회의 한 모퉁이를 책임지고 있는 심야식당이 있어 언제나 가슴 한편이 따뜻하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보다 불편한 영화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완벽하다 <마돈나> (6) | 2015.08.03 |
---|---|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 눈앞의 두려움에 총력을 기울일 뿐 <진격의 거인: 홍련의 화살> (0) | 2015.07.06 |
<화장> 명백한 의도,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 (4) | 2015.05.12 |
<스틸 앨리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도 연기는 남을 것이다 (8) | 2015.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