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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할까?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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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베테랑>


영화 <베테랑>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찍고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류승완 감독. 이후 그가 들고 나온 영화들은 거의 여지없이 살아 있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동생 류승범과 함께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주먹이 운다>도 있지만,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한 <짝패>야말로 그의 액션 스타일의 전형이자 정점이었다. 


<짝패>가 나온 6년 후 그는 또 다른 액션을 선보인다. 다름 아닌 <베를린>인데,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액션 자체가 주는 쾌감에 집중하기보다 동작이 인물의 목표를 향해 전진해나가는 모양새가 되길" 바랐다고 한다. 앞엣것이 '동작'이나 '몸짓'이라면 뒤엣것은 '행위'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액션'이라는 이름 하에 취할 수 있는 큰 두 개의 모습을 다 보여주었다. 훌륭하게. 


한편 <부당거래>는 누구 뭐라 할 수 없는 월메이드 범죄 영화다. 범죄 오락 액션물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정점이었다. 감독 류승완, 주연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모두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이렇게 잘 요리해서 내놓은 적도 별로 없다. 이로써 류승완 감독은 또 하나의 기막힌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머와 액션,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카드 '현실'의 앙상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5년 빅3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한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카드를 아주 효과적으로 잘 버무려낸 영화이다. 그가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액션'과 정극이 아닐 때는 항상 보여줬던 '유머' 그리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잘 요리해서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몇 개의 아이템은 최대한 배제했다. 생각과 고뇌와 여백이 그것이다. 일단 주연들부터 그렇다.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 이들은 첫만남부터 끝까지 치고 박는다. 말 그대로 치고 박는 게, 한 번은 이쪽이 한 번은 저쪽이 치기를 계속하면서 일이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직접 한 판 붙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들을 제어해야 할 오 팀장(오달수 분)과 최 상무(유해진 분)조차도 이들의 불도저 같은 질주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부추기고 도와주고 함께 한다. 그들은 사실 막고 싶었지만 말이다. 만약 그들이 서도철과 조태오의 사이에서 훌륭하게 중재를 하며 훨씬 강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면 영화가 이렇게 '유쾌상쾌통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겉모습 또는 직위와는 다른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두 주인공을 띄어 주었기에 가능했다. 철저히 의도한 바인데, 완벽히 들어맞았다. 


영화는 서도철이 평소 경찰 관련 일을 종종 해주며 친분을 쌓았던 배 기사(정웅인 분)가 크게 다쳤고 급기야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배후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급변한다. 그 전 초중반까지 영화는 너무 재밌고 활달한 팝콘 무비로서의 모습만 보여준다. 타격감 있는 큰 액션과 함께 격렬한 와중에 정말 적절히 터지는 유머가 영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면서 액션과 유머가 줄고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카드인 현실이 보여진다. 그 현실은 일전의 <부당거래>와 궤를 같이 한다.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할까?


배 기사 자살 사건의 배후에 조태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도철은 가히 불도저 같이 밀고 나가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형사로서의 직감과 함께 철저한 자료 분석으로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가,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옥상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고 마는 것이다. 거기엔 <부당거래>의 형사와는 정반대의, 서민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서도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서민의 대표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반면에 조태오는 그런 서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재벌 3세의 대표다. 그는 둘째 마누라의 자식, 즉 사생사로서 재벌 집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러야 한다는 생존에의 촉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건 평생 굽신거리기만 하다가 세상을 뜬 아버지에 뒤를 이은 최 상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무엇을 남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그들이라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배 기사를 이해해줄 만도 한데, 오히려 무차별적인 폭력과 무책임한 처리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때조차도 고뇌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과 고뇌를 하지 않음으로서 '악'이 된다. 반면 서도철 형사도 생각과 고뇌를 하지 않는데,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하겠는가? 선과 악의 대립 구조에서는 여백 없이 전진만 필요할 뿐이다. 즉 서민과 재벌, 이 시대를 압축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조이다. 서민에게도 판타지, 재벌에게도 판타지이다. 그 궤가 천지 차이겠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건 대립 구조 스토리와 액션


영화는 서민과 재벌이라는 구조를 액션에 그대로 가져 간다. 형사들이 '싸움술'을 펼치고, 기업인들이 '기술'을 펼친다. 기술보다는 싸움술이 더 정감 있지 않은가? 그러며 형사들 모두에게 유머 감각을 첨가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 시켰다. 반면 조태오로 대변되는 재벌들은 그 노는 짓거리가 도무지 인간 같지 않다. 서도철의 "재벌들은 이렇게 노나?" 한 마디에 돌변해 역겨운 행동을 하는 조태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관통하는 건 서민과 재벌 간의 극명한 대립 구조 하에서의 스토리와 함께 단연 액션이다. 팝콘 무비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초중반의 차고지와 부산항 액션, 그리고 중후반의 옥상 추격 액션과 하이라이트 명동 8차선 카체이싱 액션까지. 대립이 커질수록 그에 맞게 액션도 커지는 구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완벽하다 못해 아름다운 진행이 아닌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 다 써버린 듯한 영화 <베테랑>. 패기를 넘어, 안정감을 넘어, 노련함까지 갖춘 듯한 베테랑 감독 류승완의 정점이다. 그가 가지고 나올 영화가 무엇이든지 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이제는 어떤 영화를 들고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올라가면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하는데, 그말인즉슨 그가 감독으로서 정점에 섰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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