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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화장> 명백한 의도,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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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화장>



영화 <화장>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임권택 감독에게는 언제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세계 영화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102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서편제>로 단성사 단관 서울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흥행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으며, <취화선>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예술적으로도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할까.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 주춤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흥행 면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데, 어떤 작품이 100번째 작품인지 알지도 못하는 정도이다. 그의 100번째 영화는 <천년학>이라고 하는데, 소리꾼 이야기로 13만 명의 흥행 성적을 남겼다. 거장의 작품을 단지 흥행 성적으로 재단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상업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임권택 감독이기에 충분히 재기해볼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임권택 감독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꽤 연출했는데, 이청준의 <서편제>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비롯해 선우휘의 <깃발 없는 기수>, 심훈의 <상록수>, 이문열의 <안개마을>,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등이 있다. 그리고 이번 102번째 작품도 그러한데, 김훈 작가의 대표 단편이자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화장'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화장>이다. 


영화 <화장>은 상당히 아쉬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화장>은 상당히 아쉬웠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잘 표현해내지 못한 것 같다.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부 상무로 재직 중인 오정석(안성기 분)은 뇌종양으로 투병하는 아내의 병수발로 몸이 남아 나지 않을 지경이다. 사장은 모든 마케팅 관련 진행을 그에게 맞겨 그를 신임하는 동시에 그를 귀찮게 한다. 그는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기도 하다. 


그런 중에 경력직으로 추은주 대리(김규리 분)가 새로 오는데, 오 상무는 그녀에게 반한 듯하다. 얼굴도 예쁘거니와 화장품 회사의 얼굴을 책임지다 보니 화장 솜씨도 예술적이다. 점점 야위어 볼 품 없어지는 아내를 대할 때마다, 더욱 추 대리가 생각나는 오 상무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점점 끌린다. 



영화 <화장>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결국 오 상무의 아내는 죽고 만다. 그는 아내를 화장 시킨다. 오 상무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가 남지 않는지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자식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추 대리가 생각날 뿐이고, 전립선 비대증으로 아프고 귀찮을 뿐이다.


영화의 의도는 명백하다. 원작의 의도와 동일한데, 삶과 죽음의 대비를 추은주의 화장과 아내의 화장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자세히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더더욱 생기 있는 삶의 광채를 발산하는 추 대리를 보고 고뇌 하는 중년 남성을 보여주려 했다.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데, 이 세 명의 캐릭터만 잘 표현해 냈다면 그 자체로 완벽했을 것이다. 


삶에 찌든 고뇌가 아닌,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고뇌를 보여줬으면


문제는 영화가 세 명의 캐릭터 중 한 캐릭터만 잘 살렸다는 것이다. 그 한 캐릭터는 오 상무의 아내인데, 해당 캐릭터를 연기한 김호정의 연기가 특출 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그녀가 점점 힘을 잃고 죽어 가면서 남편인 오 상무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는 것들까지 보여주고 자신의 한심함에 오열을 터뜨리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애초에 영화의 방향을 틀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차라리 아내의 병 투병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을 보여주려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영화 <화장>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려 한 건 아내의 병 투병, 그리고 아내의 죽음 만은 아니다. 중점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건 오 상무의 고뇌, 그리고 아내의 화장으로 대변되는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추 대리로 화장으로 대변되는 삶이었다. 그러나 추 대리의 화장에 대한 단면은 아주 짧게 지나갔을 뿐이다. 한편 추 대리를 연기한 김규리가 영화에 녹아들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삶의 광채로서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 상무의 고뇌가 남는다. 영화를 보면 그의 고뇌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보이는 고뇌라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찌든 중년 남성의 고뇌이다. 회사에서의 위치에서 오는 고뇌,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에서 오는 고뇌, 그리고 나서 임박한 아내의 죽음에 대한 고뇌가 위치한다. 오히려 아내의 죽음에 대해서 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그 덤덤함이 추 대리와 대비해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에 찌든 고뇌에 대비한 덤덤함으로 비춰진다. 추 대리와 대비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화장>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원작이 아무렴 어떠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 영화를 보니 꼭 원작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김훈 작가의 스타일 상 <화장> 또한 상당히 사색적이고 관념적이기까지 할 터인데 영화가 잘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삶에 찌든 중년의 고뇌보다, 죽음에 대한 고뇌보다, 여자에 대한 남자로서의 욕망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 하는 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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