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셜포비아>
영화 <소셜포비아>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무장으로 탈영한 후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이 사건이 보도되던 날 어김없이 인터넷은 들끓는다. 군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글과 댓글들, 그리고 그렇고 그런 악플들. 그 와중에 '레나'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폭언을 남긴다. 가차 없이 날아오는 폭언에 대한 폭언들. 사건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레나의 폭언. 군인을 욕하는 걸 참을 수 없는 몇몇 남자 네티즌들은 급기야 한 데로 똘똘 뭉친다.
레나의 신상을 털고,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한다.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레나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현피 과정을 인터넷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던 터라, 모든 게 인터넷으로 적나라하게 퍼지고 외려 이들이 엄청난 지탄을 받는다. 이들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레나의 타살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하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유도의 왕기춘 선수에게 폭언을 일삼은 일명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왕기춘 선수는 금메달이 유력했는데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치자 어떤 네티즌이 그의 홈페이지에 폭언을 남겼고, 이를 본 다른 네티즌이 발끈해 설전이 벌어졌다. 이에 회손녀는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라고 도발했고 결국 주민등록번호, 사진, 전화번호 등이 털려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회손녀는 이들을 '명예회손' 한다고 맞대응했다. 회손녀는 '명예회손'에서 나왔다.
7년 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시의성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당시보다 현재의 '신상 털이'와 '현피'가 훨씬 쉬워진 터라 오히려 시의성이 완벽하다 하겠다. 이 영화가 스릴러 드라마 장르이지만, 공포영화 못지 않은 공포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인터넷을 하고 SNS를 하는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와 닿는 무엇이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책 서평이나 영화 리뷰를 주로 하면서, 출판계나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이다. 그러다 보니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든 콘텐츠의 단점을 찾아내 들춰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럴 때마다 이런 비판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한데, 언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을 가차 없이 비판한 서평을 올린 후, 책의 저자가 직접 글을 남기고 자신의 블로그로 서평을 퍼갔다. 그러자 저자의 지인들이 그 서평과 필자에 대한 욕 비슷한 걸 남기는 게 아닌가. 결국 필자는 그들을 향해 해명 비슷한 걸 남겼고, 저자의 중재로 마무리 되었다. 다행인 건 저자 분이 쿨하게 모든 비판들을 받아들이시고 중재를 해주셨다는 것. 그렇지 않고 반대로 행동했다면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당할지 알 수 없었을 일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본다는 미명 하에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타진요' 사건이 생각나게 하는 '마녀사냥단'
영화로 돌아가서,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하러 갔다가 시신만 보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들에게 쏠린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레나의 타살을 확신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한다. 레나의 본명인 민하영의 이름을 빌려, 카페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여론도 조작하려 한다. 그리고 일전에 설전에서 레나에게 지고 인터넷 세상에서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범인일 거라 확신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기업체 CEO도 있었다.
레나 '마녀사냥단'은 이제 레나의 죽음을 밝히고자 다른 이를 심판하려 한다. 그들은 여전히 '마녀사냥단'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악랄해진다. 자신들의 앞날이 걸려 있는 만큼. 마지막에 그들의 의혹이 쏠리는 이는 다름 아닌 그들 내부의 어떤 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가 레나를 죽인 범인일까? 레나는 자살한 것일까, 타살된 것일까. 이 돌고 도는 마녀사냥의 끝은 언제 일까.
영화에 나오는 '민진사'를 보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 가수 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해 마녀사냥 그 이상 가는 집중포화를 날려 대며 타블로와 타블로 가족들을 나락을 떨어뜨린 희대의 사건이다. 당시에는 진짜라는 수많은 증거들과 재판에서의 승소도 소용이 없었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회손녀 사건과 함께 인터넷 그리고 SNS 시대가 줄 수 있는 최악의 기억들일 것이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무법천지 인터넷 세상
더 큰 문제는 이런 대형 사건들 보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일 것이다. 그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고 인생이 바뀌고 자살까지 생각했을 것이 아닌가. 인터넷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옹호만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인터넷 세상은 무법천지이다.
영화는 잘 나가는 청춘 배우들은 변요한과 이주승이 이끌어 가는데, 개인적으로 배우 이주승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곱상하고 아담한 체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서늘한 눈빛. 그는 껄렁하지만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양아치 아닌 건달 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 뒤가 없는 듯하다. 깊숙이 묻어 놓은, 절대 말할 수 없는 아픔 같은 것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그만큼 특징을 완벽히 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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