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표지 ⓒ메디치
임진왜란. 1592년(임진년)에 왜나라에서 난을 일으켜 조선을 쳐들어온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그마치 이후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명나라까지 출전한 국제적 전쟁인데, 왜 전쟁이 아니라 '난(란)' 이라 하는지? 일각에서는 7년 전쟁, 조일전쟁, 임진전쟁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임진왜란이라 한다. 이는 그 당시 조선의 왜에 대한 생각에 다름 아니다.
16세기 말 조선은 왜가 침략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성일이 어쩌고 황윤길이 어쩌고 해도, 국가적으로 왜 쪽의 해양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는 비단 당시의 상황 만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왜는 한반도 세력에게 한 단계 낮은 세력이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삼국 시대 때 백제에서 문화를 전파해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편 북 쪽의 대륙 세력은 언제나 한반도를 위협했다.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나라가 만주를 지배했지만 영원할 수는 없었고, 언제나 한반도의 나라는 북쪽을 최전방으로 생각하고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고려 때는 서희가 외교력으로 강동 6주를 차지하고, 조선 때는 세종 대왕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4군 6진을 설치했다. 그럼에도 원나라, 청나라 등에게 유린 당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의 침략은 조선에게 있어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덕분에(?) 한반도가 비로소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다고 한다면? 괜찮은 건가?
임진왜란으로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요충지가 되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메디치)의 저자 김시덕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해양의 일본이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를 정복하려 했으며, 대륙의 중국이 해양의 일본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완충 지대로 이용하려 했다고 말한다.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반도는 결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비로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양 세력이 득세하기 전까지 대륙 세력에게 한반도는 견제의 대상이었을 뿐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임진왜란의 의미는 달라진다. 일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이 엄청나게 피해를 보았다.' 정도 이상의 의미, 일본에게 2번이나 역사적인 침략을 당함으로써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준 고난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그 의미를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말에서 찾는다. 한반도 세력, 즉 조선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비로소 대륙 세력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간의 힘겨루기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이득을 얻어야 할 때다
현대에 들어서는 해양 세력에 일본과 미국이, 대륙 세력에 중국과 러시아가 포진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처럼 대륙 세력은 한반도를 해양 세력의 세력 팽창 저지를 위한 '완충 지대'로 생각해 보호하려 하고 해양 세력은 대륙으로 세력을 팽창하기 위한 '교두보'로 생각해 진출하려 한다. 이 힘겨루기는 몇 백 년 간이나 계속 되었고, 한반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그만 터지고, 황새와 조개 싸움에 어부가 이득을 얻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임진왜란 때부터 현재까지의 400년 역사를, 아니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도 알아야 하니 대략 500년의 동아시아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500년 동아시아 역사 일별은, 그것도 해양(일본, 미국)과 대륙(중국, 러시아)의 대결과 그 사이의 한반도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분석한 일은 진실로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저자의 역사 분석은 그야말로 재밌기까지 하다.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는 듯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 나열은 신빙성 있게 전개된다. 한 예로, 임진왜란 이후 연쇄적으로 일어난 200년의 동아시아 역사이다. 먼저 임진왜란인데, 임진왜란을 단순히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 사람에게 맞춰 생각하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그가 왜 조선을 침략했는지 신빙성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한 200년의 연쇄반응
대륙 세력이 되고자 한 일본의 대륙을 향한 세 번의 시도가 있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삼국시대 때 백제 부흥군을 지원해 수당 연합군과 한반도에서 싸웠다. 결과는 패배. 그리고 13~14세기에 왜구로써 한반도를 침략하기도 했다. 그리고 100년 간의 전국시대 분열을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그는 세계 정복을 꿈꾸며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서 조선을 침략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난 임진왜란. 이 임진왜란은 '누르하치'에게 기회를 주었고, 기어코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한 데 이어 그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명나라까지 멸망 시키기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와 조선이 관심을 한반도로 완전히 돌린 사이에, 그 틈을 타 누르하치가 힘을 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 나라, 세 나라의 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꾼 임진왜란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렇게 청나라에게 멸망 당한 명나라. 그 와중에 정성공이라는 사람이 장기전을 대비한 진지를 마련하기 위해 타이완으로 넘어갔는데, 명나라가 멸망당하자 정성공 일족은 타이완에서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네덜란드 세력을 쫓아낸다. 하지만 20년 만에 바다를 건너온 청나라군에 항복하고 멸망한다. 이때가 1683년이었다.
이렇게 1500년대 일본의 전국시대, 1592년의 임진왜란, 1616년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1636년 홍타이지의 청나라 건국,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 1683년의 타이완의 정성공 세력 멸망, 그리고 강희제의 중국 완전 통일까지. 200년 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연쇄반응이 끝난 것이다.
역사를 단면적으로 보지 말고 미래를 대비해야
저자의 역사 분석은 이 사례 하나라도 충분히 신빙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동북아시아의 위기 상황이 지구의 여타 위험 지역의 위기 상황보다 더 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동북아시아의 상황이 100여 년 전과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그런 해석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이다.
역사를 살펴 미래를 대비하되, 역사를 단면적으로 직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통사적으로 길게, 얽히고 설킨 여러 국가의 역사들을 자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통감할 수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의미를 알고,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까지 불리는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 개정'으로 한반도 주위 세력들 간의 알력이 심화되는 가운데, 언제까지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한 싸움만 계속할 것인가? 그 배후에 있는 국제적인 상황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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