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정은문고
참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항상 뛰어다닌다. 걸어다니는 건 열정이 없는 것이고 무능한 것이며 '반역'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시대에서 변화 그리고 빠름이란 진리이자 지상 최대 목표가 되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며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런 와중에 '느림'을 말하고 '옛 것'을 입에 올리면 지리멸렬한 보수주의자 딱지를 맞기 십상이다.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지사이다. 지식인이라면 응당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옛 것이나 전통을 말하고 있나니 한심해 보일 만하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정은문고)에서 보여지는 저자 나가이 가후의 모습이 딱 그렇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는 20세기 초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하는 도쿄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한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게다(나막신 같이 생겼다)를 신고, 지팡이 대용인지 모를 박쥐우산(우산을 펼치면 박쥐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을 든 채.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조우하다
나가이 가후는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더 유명한 건 화류계 여인을 사랑했다는 이력이다. 예술가의 기질이 다분해서 인지, 미를 탐하는 탐미주의자로서의 모습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단지 그런 모습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아쉬운 측면이 있다. 책 한 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책이 지어진 공간적 배경은 주지 했다시피 일본 도쿄이고, 시간적 배경은 1915년 전후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동아시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에서 온갖 치욕으로 깊이 아로새겨질 시기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다시피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역사상 유례 없는 번영과 평화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1915년을 전후한 도쿄는 철도가 개통되어 넓어졌고, 컬러 영화가 개봉하고 대형 백화점이 개장해 풍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기차역까지 들어섰다. 그야말로 추후 100년 동안 도쿄를 지탱할 것들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변혁의 시기 한복판에 탐미주의 문학가의 최고봉 나가이 가후가 살았다.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도쿄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변화하는 도쿄를 비판적으로, 그럼에도 소소한 것들에는 사랑을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100년 전의 위와 같은 변화가 지금의 변화보다 그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변화, 그 빠르기와 폭이 인류 역사 전체의 변화의 그것보다 더 하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그 변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상태이다. 반면 19~20세기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이 가후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저자는 변화하는 도쿄를 그리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아니, 비판적으로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장이니 다리니 건물이니 철도니 하는 현대적인 것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에서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며 현대적인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본문 속에서)
그러며 한편으로는 일상의 소소한 측면들을, '훅'하고 지나가 버릴 작고 볼 품 없는 것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당이니 나무니 절이니 골목이니 석양이니 하는 옛 것들. 불과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 유적 같이 되어 버렸다.
"순수하면서도 미천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습관은, 남사당패의 익살스런 탈춤이나 수수께끼 혹은 에마 속 서투른 그림처럼 한없이 내 마음을 위로한다." (본문 속에서)
부디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길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사는 데에 현대 문명은 거의 모든 면에서 기여했다. 그러하기에 현대 문명을 비난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내가 선 이곳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누워서 침 뱉기 격이 아닌가.
하지만 어릴 적 소중했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내 부모님 세대를 형성했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부정하고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려는 것 또한 나를 부정하는 처사가 아닌지? 그렇다면 어느 것 하나 홀대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게 아닌지?
다른 무엇보다 슬프고 공허할 것 같다. 새로움이 뿜어내는 활기와 열정, 그것에 대한 설렘도 크게 다가오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못 견딜 때가 있다. 너무 그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시선은 그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대변해준다. 부디 따뜻한 감성과 날카로운 이성이,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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