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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5> 중국현대사를 다시 보며 중국의 미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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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근현대사 5>



<중국근현대사 5> 표지 ⓒ삼천리



2007년에 발발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심한 타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이에 중국식 자본주의가 급부상했다. '팍스 로마나'를 빗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시니카'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은 세계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자본주의라니.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게 바로 정치와 경제의 모순이다. 정치로는 과거 마오쩌둥 시대에 보여줬을 만한 강력한 통제 강화를, 경제로는 과거 어느 시대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던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보여주려는 새 시대를 이끌 중국식 자본주의, 즉 중국 모델이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의 완벽한 모순이다. 


이 모순이 커져 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에 상응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줄 지을 것도 자명하다. 한편으로 당분간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키를 주고 있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경제의 키를 주고 있다는 건 국력의 크기도 자연스레 상승한다는 얘기다. 즉, 중국은 초강대국의 위치에 다다랐고 앞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한편 과거 200여 년 동안 빼앗겼던 세계 초강대국로서의 위치에 대한 피해자 의식이 여전하다. 중국을 의식한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러시아와의 사이를 진전 시키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꿈'을 외친 시진핑의 취임연설은 특별했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이라고 했다. 일면 중국의 꿈이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중국의 현대사를 살피며 미래를 말하다


이처럼 중국은 그야말로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정치와 경제의 상반된 행보는 둘째 치고, 모든 국가적 행보에서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이다.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행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근현대사를 말이다. 1949년 중국의 건설 후 60년이 넘게 일관된 정치 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게 그 미래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현대사에서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에 '개혁개방'이 시작되었고 '개혁개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국 개발주의 시대의 최고 최강의 구호이다. 그런데 <중국근현대사 5>(삼천리)의 저자 다카하라 아키오와 마에다 히로코는 그때가 아닌 1972년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1972년이면 아직 마오쩌둥이 집권할 당시로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인데? 어찌 그때가 시대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개혁개방이라는 말 자체가 1980년대 후반에야 정착된 개념이라고 말하며,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는 건 정확한 역사 인식이 결여된 설법이라고 주장한다. 나중에 승리한 자들이 만들어 낸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1972년인가? 저자는 마오쩌둥도 경제를 중시했다고 말하며, 그의 지시로 1971년에 임금을 인상하고 1972년에는 대규모 플랜트 도입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플랜트는 생산 설비 혹은 제조 설비 일체를 말하는 것인데, 문화대혁명이 한창인 시절에 이미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외교정책에도 전환이 있었는데, 1971년에 키신저 미국 대통령 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고, 같은 해에 중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획득했다. 이어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중국은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야말로 경제와 외교에서 전에 없는 '전환'을 선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현대사


이후 저자들이 말하는 중국현대사는 일반적인 통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한 덩샤오핑을 부활시킨 마오쩌둥, 이어지는 4인방의 저우언라이에 대한 맹렬한 비판, 그리고 4인방에 의해 3번째 실각하는 덩샤오핑, 마오쩌둥의 죽음과 4인방 체포. 그리고 다시 부활한 덩샤오핑. 이렇게 중국현대사의 1세대가 마감한다. 


그리고 열린 덩샤오핑에 의한 중국현대사 2세대 시대. 덩샤오핑은 이후 3세대까지, 즉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덩샤오핑을 말하는 수식어는 상당히 많은 데, 정치적으로는 세 번 실각하고 세 번 부활했다고 하여 '오뚝이'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이다. 그야말로 중국현대사는 그가 열어 젖힌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덩샤오핑을 그렇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가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어떻게든 견지한 건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오쩌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그 유명한 '천안문 사건'이다. 


1989년 4월, 한때 덩샤오핑의 후계자였던 후야오방의 타계를 계기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도 활동을 했고 이 움직임이 점차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발전했다. 이에 당은 이 활동을 반당·반사회주의 폭동이라고 단정했고 학생들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당에서도 온화한 해결과 강경한 탄압의 의견으로 나뉘었는데, 결국 강경론자의 승리로 천안문 광장에 대한 계엄령이 발표된다. 계엄군과 시민·학생들이 충돌한 결과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이 사건으로 또 다른 덩샤오핑의 후계자인 자오쯔양이 실각한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정지된다. 


정치개혁이 정지한 상태에서 경제개혁에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 상황에서 덩샤오핑이 택한 수는 그 유명한 '남방담화'. 1992년 초 덩샤오핑은 상하이, 우한 등이 있는 광둥 성 경제특구를 시찰하며 지방 간부들에게 더욱 대담하게 개혁개방을 가속화할 것을 강력히 호소한다. 중앙에서 먹히지 않으니 지방에서 목소리를 키워 중앙으로 가려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선택된 장쩌민. 그는 큰 탈 없이 적절한 균형을 지키며 국정을 이끈다. 즉, 덩샤오핑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룽지 총리 역시 덩샤오핑의 말을 받들어 철저하게 경제개혁을 실시했다.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중국, 그리고 미래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위치에 다가가게 된 2002~2012년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 이 시대는 분명 후진타오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가 완전한 중앙은 아니었다. 장쩌민이 완전히 은퇴하지 않고 일부분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명 장쩌민계가 정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을 법 했지만 교묘히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 시대는 이른바 '조화로운 사회'를 천명하며 균형적인 발전에 유념했다. 그럼에도 가속화되는 성장에 따라 소득 불균형 또한 가속화되었다. 이 사회 모순은 중국이 짊어져야 할 숙명처럼 된 인상이다. 정치개혁 없이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모순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 시진핑 시대가 도래했다. 시진핑 정권은 가속화되는 사회 모순을 완전히 무시하기라도 한 듯, 전에 없는 정치 규제와 경제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세계 초강대국으로의 진입은 기정사실화되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기업 순위에서 1~4위를 중국의 4개 은행(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이 싹쓸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말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언젠가 반드시 내려올 터인데, 지금 상태로 중국이 경제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다면 이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인터넷 시대니 만큼, 과거 덩샤오핑처럼 혼자의 힘으로 정국의 방향을 꺾는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시진핑은 그런 그릇으로 보이진 않는다. 과도기의 인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이끌 인물이 필요한 법. 다음 시대에는 어떤 인물이 나올지 궁금하고 한편 걱정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정을 보니 이웃 나라일지라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혁명 원로의 자손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보수주의·국수주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진핑이라면, 자신의 후계자 역시 비슷한 삶과 생각을 가진 이로 들려고 할 텐데 말이다. 포스트 시진핑 시대에 중국현대사를 결정할 또 다른 큰 분기점이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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