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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때문에> 고립무원이자 혼돈인 세상에서 진정한 친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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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말 한 마디 때문에>



<말 한 마디 때문에> 표지 ⓒ아시아



성경 야보고서 3장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의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말이란 게 필수적으로 대상이 필요하기에, 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동체에서'라는 뜻일 게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컫는 인간에게 공동체는 당연한 귀결인데, 말, 말, 말이야말로 당연한 요소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빛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말을 잘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반대로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말은 때로는 그 어떤 도구보다도 유용하게 쓰이고, 때로는 그 어떤 독보다도 무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칼이 있다고 하는데, 말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천태만상


중국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통하는 류전윈의 신작 <말 한 마디 때문에>(아시아)는 제목 그대로 중국의 한 농촌(옌진)에서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천태만상을 다룬다. 소설은 말 때문에 일어나는 인간계의 가지각색 기상천외한 일들 만큼이나 특이한데, 형식이 복잡하다고 해야 할지 불규칙적이라고 해야 할지 중구난방이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특이하다. 


예를 들어 한 장(약 30페이지)에서 몇 개에 달하는 에피소드들이 그것도 서로 상관없는 에피소드들이 연달아 나오는 건 물론이고, 붙어 있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에 번역이나 편집의 실수가 아니라, 어떤 의도 하에 그렇게 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의 집필 의도를 최대한 살려주려 했을 거다. 


그렇다면 저자의 집필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왜 저자는 이토록 정신 없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을 무질서하게 나열했을까? 단순히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사연들을 그에 맞게 무질서하게 풀어 놓았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려 했던 것일까. 


물론 그런 의도도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 만은 아닐 것이다. 류전윈 작가는 현대 중국의 신사실주의 소설을 대표한다. 그의 소설은 거의 이름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다룬다. 그는 일전에 한국에 와서 강연을 열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보다 내가 당장 오늘 먹을 두부 한 모를 살 수 있느냐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말에 관한 고독, 고독 속에서 진정한 친구 찾기


이 소설 <말 한 마디 때문에> 역시 다르지 않다. 두부 한 모가 중요하고,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에서 정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대략 20세기 초반의 중국 농촌이 배경이라고 했을 때, 주인공들인 이름 없는 하층민들의 상태는 어떠할까? 그들의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질 데로 피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더불어 말에 관한 고독, 고독 속에서 진정한 친구 찾기, 진정한 친구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숙고 등이 소설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런 사항들을 합해 추리면 한 마디가 나오는데, 바로 '혼돈'이다. 이 소설의 형식과 내용도 혼돈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과 말도 혼돈이다. 즉,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혼돈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고립무원이자 혼돈인 세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고립무원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혼돈의 가장자리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힘 없고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이 그 혼돈에서 탈출하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농촌 탈출 러쉬를 경제적 관점이 아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신뢰를 잃은 세상이 안타깝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한 마디와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넨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일생을 살면서 괜찮은 친구를 하나라도 얻었나?"

"가자, 내가 널 따스한 곳으로 데려다줄게."


진심어린 한 마디를 유일하게 나눌 수 있던 딸을 잃고 정든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 과연 누가 이토록 삭막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가? 인터넷을 통해 진심 어린 한 마디를 대신할 수 없는 의미 없는 만 마디를 매일 같이 해대며 혼돈의 가장자리 끝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가?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따스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진심 어린 따뜻한 한 마디조차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고 배웠기에.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이라 누군가 와도 함부로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세상이 그렇게 신뢰를 잃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침들이 있었을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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