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음식의 언어> 건강에 좋다는 포테이토칩을 찾는 당신, 속았다

반응형




[서평] <음식의 언어>



<음식의 언어> ⓒ어크로스



요즘 TV를 틀었다 하면 요리 프로그램이다. 오래 장수한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지나고, 영화배우 하정우로 대표 되는 먹방도 식상해질 타이밍인데 말이다. 외딴 시골에 가서 직접 삼시세끼를 해 먹고, 남의 집 냉장고를 통째로 들어와 유명 셰프들에게 즉석에서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빠와 함께 놀러 간 아이의 귀여운 먹방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유명 포털에 '먹방 여신'이라고 치면, 수식어가 붙은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너도 나도 먹방의 왕이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여기에는 사람들의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다. 대표적으로 '대리만족'을 들 수 있다. 여전히 한창인 육아 프로그램이 취업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 젊은이들의 욕구를 대신해서 채워준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면, 요리 프로그램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 시달리면서 먹을 것까지 위협 받게 된 사람들에게 대신에서 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같은 흐름에서 최소한 먹을 거리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여하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을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알고 싶어 진다.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인터넷에 물어보면 그 레시피가 상세히 나올 것이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될 테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왜 생겨난 것인지. 도대체 내가 이야기하고 먹고 만드는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지. 


케첩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의 저자 댄 주래프스키는 '케첩'에서 처음  의문이 들었다. 그는 언어학을 연구하며 홍콩에서 광둥어를 배웠는데, 그곳 사람들이 하나 같이 케첩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에서 왔다고 했다는 거였다. 광둥어로 케가 '토마토'를, 첩이 '소스'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는가. 얼핏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케첩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케첩은 원래 중국 푸젠성에서 쓰던 발효된 '생선 소스'였단다. 이 생선 소스를 중국 상인들이 퍼뜨렸고, 무역상들은 유럽에 갖고 돌아갔으며,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며 재료들이 바뀌어 갔고,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진출했는데, 토마토를 더한 것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설탕이 듬뿍 추가 되었고, 이는 미국의 국민 양념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야말로 케첩 따위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아닌가. 이 길고 튼튼한 줄기에서 뻗어 났을 수많은 잔가지들과 꽃, 열매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저자도 궁금했는지, 독자가 궁금해 할 걸 알고 있었는지, 아주 꼼꼼히 잔가지들과 꽃, 열매들까지 눈앞에 대령한다. 글로 진수성찬을 대령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름이 너무 생소하고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이라 큰 감흥은 없다. 


저자의 음식 사랑과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국민 양념 케첩을 시작으로, 영국의 국민 음식 '피시앤드칩스'를 비롯해, 칵테일, 토스트, 칠면조(터키), 마카롱 등을 파헤친다. 거기엔 음식의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 정치, 문화, 사회, 인문의 온갖 분야들이 같이 춤을 춘다. 이들은 막춤을 추는 법이 없다. 저자가 허락하지 않는다. 때로는 진득하게, 때로는 치고 빠지듯, 때로는 담백하게. 


건강에 좋은 포테이토칩을 찾는 당신, 속았다


책의 전반 주로 음식의 역사와 그에 관한 언어학적 고찰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은 음식과 음식의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여행한다. 심리학부터 시작해 사회학, 역사, 과학, 미학, 심지어 마케팅까지! 가히 음식만큼, 아니 그 이상 구미가 당기는 주제와 소재이다. 


주말이면 맥주와 함께 포테이토칩을 사 들고 집에 오는데, 맥주의 탄산과 포테이토칩의 짠맛이 아주 조화롭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맥주는 싼 걸로, 포테이토칩은 비싼 걸 고른다. 어차피 안주에 불과할 터인데 그냥 싼 거 사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지 모르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비싼 포테이토칩에는 콜레스테롤이 없고 트랜스지방도 없으며 인공적인 것이 첨가되어 있지 않단 말이다. 


저자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바로 이 모습이 비싼 포테이토칩의 마케팅 수법에 속아 넘어간 고객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비싼 칩은 포장지마다 '트랜스지방 무첨가' 같은 말로 건강을 역설하지만, 값싼 칩은 그런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 다 트랜스지방이 첨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비싼 칩은 건강을 더 많이 의식할 만한 고객들을 향해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왕 먹는 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건강'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웃긴 건, 그들도 우리들도 포테이토칩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주말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맥주의 단짝 포테이토칩을 찾을 거다. 


'음식의 맛' 못지 않게 '글의 맛'을 잘 아는 저자


이 밖에도 책의 후반부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터키(Turkey)와 칠면조(Turkey)는 어떻게 똑같은 음을 가지게 되었나? 밀가루(flour)와 꽃(flower) 역시 어떻게 똑같이 발음하게 되었나? 우리들의 친한 친구 마카롱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디저트, 그 시작은? 눈앞에 보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단지 발음으로만 '아이스크림'보다 '크래커'가 더 맛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음식의 맛'을 아는 것 못지 않게 '글의 맛'을 잘 아는 것 같다. 형형색색 음식 사진도 없는 책을 읽으며 군침이 도는 건 난생 처음 경험했는데, 이와 더불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음식을 통해 보는 세계가 바로 이런 세계구나, (다이어트니 건강이니 떠들어 대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세상인데 음식으로 이런 연구까지 할 수 있구나, 음식이 정말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구나. 오랜만에 책으로 황홀한 경험을 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