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서관 옆 철학카페>
<도서관 옆 철학카페> ⓒ어크로스
몇 년 전부터 '인문학'이 들어간 책이 쏟아져 나왔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경영 서적이 붐을 이루었고, 이후에 자기계발 시대가 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힐링이 찾아 왔다. 동시에 인문학도 붐을 이루었다.
처음의 인문학에는 힐링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른바 인문학을 통한 힐링. 그러다가 자기계발적 요소가 다분히 투여되기 시작했다. 인문학을 통한 자기계발. 그야말로 여기저기에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여기에 최대 수혜자들은 인문학자가 아니라 실용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을 쉽게 풀어 전달하다
철학도 인문학의 일종인지라 엄청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철학은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던 바, 학문 본연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런 가운데 '철학카페'라는 제목을 단 책이 대박을 쳤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라는 책이다. 문학과 철학의 콜라보를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획이었다. 이 책은 아직 인문학 열풍이 불기 훨씬 전에 나와 독보적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 와중에 안광복 교사는 철학을 쉽게 풀어 전달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철학을 통해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물이 <도서관 옆 철학카페>(어크로스)라는 야들한 제목의 책이다. 에세이 풍의 제목에 걸맞게 소소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문체를 선보인다. 하지만 소소한 현실 문제라는 것이 당면한 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아프고 괴로운 만큼, 뜯어보면 마냥 야들하지 만은 않다.
책은 총 35권의 책을 통해 35개의 현실 문제를 다룬다. 서평 모음집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고 정통 철학서라고 할 수는 없다. 교양 철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보기 좋고 읽기 좋게 포장된, 흔하디 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한 책이다. 부제에 '삶을 바꾸는 철학의 지혜'라는 문장이 있는 만큼 자기계발적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거북한 주장과 기억에 남는 부분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굉장히 빠르게 잘 읽히는데, 그건 아마도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리 만큼 쉽다. 그렇지만 가끔씩 묵직한 사회적 쟁점을 다루기도 해서 마냥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한편 전체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당수의 챕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거북한 주장이라고 느끼는 부분들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본다.
저자는 유난히 '고통'을 옹호하며 고통을 통해야만 성장할 수 있고 심지어는 고통이 빨리 끝나기 만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면한 현실 문제 앞에서 '위대한 문제의식'을 꺼내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러며 탄탄한 직장과 안정된 시스템이 되레 독이 되기도 하고, 비정규직인 걸 한탄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일이 '소명'인가 '생업'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소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생업'을 하고 있는 바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단언하는 건 문제가 있는 발언으로 보인다.
화를 내지 말고 한 발 물러서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라는 저자. 그러면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말한다. 이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용서를 할 때도 그 범위가 허용 하에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만약 세상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짓을 나에게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저자에게 묻고 싶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경험을 해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물론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몇 부분 만으로 이 책은 할 일을 다했다고 본다. 그 부분들은 이렇다.
저자는 자크 아탈리의 말을 빌려 '세상엔 잉여인간 이란 없다'라고 단언한다. 노동의 의미를 달리 봐서,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일자리를 잃고 재교육을 받는 것도 노동이다. 진료를 받았기에 의사는 일자리를 유지하게 되고, 교육을 받았기에 교사들은 수당을 받게 된다. 세상이 굴러가는 데 일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고, 이는 곧 '노동'이다.
'존중'과 '배려'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지극히 당연하게 필요한 것이어서 말하기가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이 승리를 거머쥐어야 마땅하지만 이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승리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꼼수와 편법에 능할지라도 능력이 월등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럴 때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평소에 충분히 존중해줘야 한다. 노력과 능력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해답은 없지만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저자는 '삶을 바꾸는 것은 감미로운 토닥임이 아니라 쓰디쓴 해답이다'라는 명제를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실 문제를 그리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위로가 아닌 해답을 같이 고민해보고자 했다. 물론 그 해답은 현실보다 더 암울하곤 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욱'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가 일부러 세게 지른 것 같다. 문제는 그게 너무 들쑥날쑥해서 전체적인 톤(제목과는 물론)과 맞지 않는 듯하다는 것과, 거기에 '경험'과 피부에 와 닿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를 늘어놓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저자가 꼭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건 챕터의 결말 부분의 미진함과 서로 이어진다. 쓰디쓴 해답을 원했지만, 몇몇 챕터를 통해서는 미지근한 고민조차 얻지 못했다. 기획 방향의 미진함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분명 섬세하면서도 따끔했던 것 같은데, 이 둘이 서로를 품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이처럼 쉽고 재미있게 철학을 풀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하나의 현실 문제를 두고 하나의 책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 이토록 짧고 굵게 풀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머리를 싸매지 않고 현실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기회를 얻었다. 철학이 고상한 책상머리 학문이 아닌 '현실의 문제와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통해 소통해주길 바란다.
도서관 옆 철학카페 - 안광복 지음/어크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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