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자기록> 조선 시대 여성이 칼 대신 붓을 든 이유는?

반응형




[서평] <자기록>


<자기록> ⓒ나의시간

주자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 그리하여 유교적 관습은 사회 곳곳에 침투해 모든 이들의 삶을 지배했다. 특히 여성에게는 유교적 부덕을 가르치고 이의 실천을 강요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게 했다. 그래서 여자는 오직 집안에서 가족을 위한 가사 활동에 힘쓰고, 부모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정절은 제도적으로 강요 되었다. 


이렇게 유교적 부덕을 내세워 여성의 삶을 옭매는 것 중 가장 잔인한 짓이 있었으니, 남편이 죽은 뒤에 여자가 따라 죽어야 한다는 규범이었다. 이들을 '열녀'라고 칭하는데, 열녀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는 국가 차원에서 표창이 내려질 뿐만 아니라 세금 감면, 부역 면제 등의 혜택까지 주어졌다고 한다. 제도적으로 강요 되지는 않았겠지만, '규범'으로 자리하였다니 강요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비인간적인 규범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존재하고 있었다. 


'칼' 대신 '붓'을 들어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다


<자기록>은 풍양 조씨라고 일컫는 조선 시대 후기의 젊은 여성이 '칼' 대신 '붓'을 들고 써 내려간 자신의 기록이다. 그녀는 죽은 남편을 따라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했다. 대신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절절한 글을 남긴다. 이 절절한 글은 한편 굉장히 객관적이어서 감탄을 자아낸다. 


그녀는 이 길지 않은 글을 통해 꽤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남편의 죽음을 말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출가해 시댁으로 가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까지가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풍양 조씨는 자신이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이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녀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용히 물러나 있는 가운데 옛날 일을 추모하니 세세하게 눈앞에 벌어져 하늘 끝에 닿을 듯 가없는 설움이 새로워 나의 어릴 적에 있었던 행적만 대강 기록한다. ··· 우리 어머니가 온갖 좋은 점을 갖추어 ··· 아버지의 남보다 인자하고 명철하신 두어 가지 일을 올린다. ···· 남편이 병을 앓기 시작한 처음부터 끝까지 대강을 기록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두고 보면서 눈앞의 일같이 잊지 말고 또 뒷사람들에게 옛 일을 알게 하고자 잠깐 기록하나, 정신이 황량하고 마음이 어지러워 그리 자세하지 못하다." (본문 중에서)


미래를 생각한다는 건 굉장히 현명한 일일 수 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다 보면 최대한으로 합리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가 너무 힘들다면? 과거로의 회귀가 한 방법일 수 있다. 물론 과거로의 회귀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 한없이 미래로만 향하는데 과거를 생각해보았자 이득이 될 게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감성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필수적으로 따라오지만 과거는 그렇지 않다. 


풍양 조씨는 과거를 생각하고 글로 옮겨 기록해서 현재를 추스렸다. 글로 남기는 건 자신을 알리려는 행동인데, 풍양 조씨는 조선 시대 여성이 쉽게 생각하지 못할 일을 한 것이다. 남편을 따라 죽지도 않았거니와 문학 활동까지 했으니 말이다. 잘은 몰라도 현재에서의 여성이 마땅히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마냥 열심히) 해야 할 가사 활동에 가야 할 손이 조금은 덜 가지 않았을까. 


사실적인 글쓰기 방법론의 정석


책은 절반 이후에 남편의 병상 기록으로 넘어간다. 시간 흐름의 순서에 따라 매우 세세하게 기록하였는데, 비통함과 절절함 그리고 냉정하기까지 보일 정도로 객관적인 시각도 보인다. 어떻게 그녀가 그런 사실적인 글쓰기 방법론의 정석을 깨우치고 있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초팔일까지는 남편의 병세가 한결같이 그만하여 팔미탕을 쓴 날이 꽤 되었지만 특별한 효험이 없고 해소로 인해 잠을 길게 자지 못했다. 의원에게 의논하여 맥문동이란 약재 하나를 팔미탕에 더 넣어 썼는데 해소는 낫지 않고 초팔일부터 설사 횟수가 한두 번 더 늘었다. 갑갑해하던 차에 신가 의원이 의술이 밝다는 말을 듣고 초열흘날 청하여 왔다. 이때 남편이 죽과 끓인 밥을 싫증내고 간간이 수수에 쌀을 조금 넣어 자셨으나 생각나 하는 것은 국수 개국이었다. 그러나 차마 증세가 심하여 무리였다." (본문 중에서)


풍양 조씨의 남편은 김기화이다. 그는 1788년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사람들이 몰려 밟혀 죽을 지경'인 시험장을 보고 놀란다. 게다가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찬 자리에 앉아 있다가 치질이 생긴다. 이 병이 점점 심해져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시댁에서는 별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다가 한 달이 지나 의원을 불러 종기를 터뜨린다. 그 사이 이미 김기화는 기력이 쇠했다. 풍양 조씨는 시댁이 김기화의 죽음에 일조를 했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김기화는 겨울 찬 방에서 추위에 떨며 책을 읽다가 시어머니가 끓여준 국수를 먹고 체한다. 이를 두고 풍양 조씨는 "아아, 하늘이여, 이 우연한 빌미로 차마 사람이 단명할 마디가 되게 할 수 있으리오."라고 말하며 남편의 죽음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녀는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한편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에는 감성적인 애도 문학, 객관적인 사실 기록 문학, 거기에 조선 시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는 정치 문학까지 담겨 있다. 


사실 이 기록에 담겨 있는 풍양 조씨의 삶은 전혀 특별할 게 없다. 비록 그녀가 조선 시대 여성이 흔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 한 여성의 삶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건, 그 자체로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삶은 기록으로 남겨지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 굉장히 특별했다면 그래서 특별히 기록으로 남겨졌다면 우린 거기에서 완전히 다른 층위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