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아우름
2014년 9월,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빠뜨린 사고가 일어났다. 데뷔 2년 차로 인지도를 점점 올리고 있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동안 걸그룹, 보이그룹을 막론하고 자동차 사고가 참 많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얘기가 달랐다. 5명의 멤버 중에서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매니저의 과속으로 인한 바퀴 손실이었다. 전날 대구에서의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미 매니저에게 과실을 물어 선고가 된 상황에서 진짜 원인을 찾아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마는, 빡빡하다 못해 살인적인 스케줄이 소녀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걸그룹은 감당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 비록 그 자신들이 그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문학동네, 이하 '걸그룹'>은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을 다룬다. 신문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 이학준이 1년 동안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매니저로 자처하면서 그 속살을 적나라하게 들어내려 한다. 왜? 케이팝의 신화, 그 뒤에 감춰진 속살을 보기 위해서 란다. 그리고 십대에 불과한 아이들이 인생을 모두 이해한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그런 아이돌 스타들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 라고 한다. 그는 이것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요량이었다.
일단 물질적인 결과물은 훌륭하게 보여준 듯하다.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이라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책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과 텍스트, 감독이자 기자인 저자가 이루고자 했던 바를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그가 보고자 했던 '케이팝 신화의 감춰진 속살'을 봤을까? 단순히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힘들고 아프고 치열하고 처량하다 못해 지옥 같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동안 YG를 위시해 많은 아이돌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속살을 드러냈다. 물론 상당 부분 만들어진 모습일 테고 진짜 모습이 아닐 터다. 그래도 그들의 아픔과 힘듦은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보자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걸 재탕하는 느낌이랄까? 책을 보는 중간 중간 의식한 듯한 말을 많이 하는데, 아무리 진짜 속살을 보려고 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이상 완벽하게 진짜 민낯을 보긴 힘들 거라는 점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책은 이 다큐멘터리는 나올 이유가 없다. 애초에 기획부터 잘못 된 것이다. 뭔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관계에 주목해 민낯의 다른 면을 보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9명이나 되는 멤버들이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그룹이다 보니 그 안에서 치열한 경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인뮤지스'라는 그룹은 모델돌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반 수 이상이 모델 출신이어서, 모델파와 비모델파의 경쟁과 대립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졸업'이라는 시스템으로 기수를 나누어 경쟁을 부추겼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 아니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에 그 경쟁은 멤버들의 피를 말리게 했다.
나인뮤지스는 2010년에 데뷔해서 2015년으로 데뷔 6년 차를 맞이하는 중견 걸그룹이다. 미쓰에이, 시스타, 걸스데이 등과 같은 년에 데뷔했다. 이 중에 미쓰에이 같은 경우는 데뷔와 동시에 특급 속도로 최고의 반열에 올라갔지만 나인뮤지스는 상당 기간 동안 정상을 맛보지 못했다. 데뷔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명이 탈퇴했는데, 그녀는 교통 사고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였다. 또한 좋지 않은 계기로 리더가 바뀌는 사태도 있었다. 그녀는 잘 이겨냈지만 결국 탈퇴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관계는 멤버와 회사 간에도 존재한다. 더 들어가서는 매니저들이다. 안무, 음악, 스타일 등 수많은 매니저들이 존재하는데 그들과 멤버들 간의 관계란 참으로 묘하다. 매니저들도 피고용인의 입장이지만, 사실상 회사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멤버들에게 살갑게 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은 언제든 경쟁에서 도태되어 다시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확실한 차별 요소를 가지고 촬영에 임했고, 그걸 영상과 책으로 옮겼다.
책을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걸그룹의 뒷모습,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진짜 모습을 왜 봐야 하는지? 치열하거나 힘듦 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의 치열하고 힘든 데뷔까지의 삶을 보고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다. 차라리 탐사보도를 해 그야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추악한 모습을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정쩡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제일 거슬리는 건 윤문을 심하게 한듯한, 도무지 저자 본인의 글이라고 믿기 힘든 문체이다. 특히 장을 새롭게 들어갈 때마다 계속되는 감성적이고 매끈한 묘사들. 이 묘사들이야말로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 제일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저자가 최소한의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여 읽는 내내 불쾌하진 않았다. 멤버들, 매니저들, 회사, 대중, 언론을 차별하지 않고 두루두루 까면서(?) 걸그룹 띄어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저자의 기막힌 기획과 실행력,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잔잔한 연민에게 소소한 박수를 보내며 더 이상은 이런 종류의 콘텐츠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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