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표지 ⓒ동아시아
지난 주 목요일 크리스마스 당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국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외화로서 <아바타>, <겨울왕국>에 이어 3번째라고 한다. 의외로 들리겠지만, <인터스텔라>는 북미 현지에서는 생각보다 흥행을 하지 못했고 전세계적으로도 기대 이하였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국은 중국에 이어 흥행 2위(북미 제외) 국가가 되었다.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그로 인해 파생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영화 <인터스텔라>의 흥행 요인을 파헤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테고, 그로 인해 파생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으로 제일 큰 수혜를 본 건 아마도, 물리학계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본 한국은 지금 물리학 열풍에 빠졌다. 블랙홀, 웜홀, 시간지연, 양자중력을 이야기하면서 현대물리학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리고 출판계, 그 중에서도 '과학' 분야가 이 영화에 수혜를 입었다. '인터스텔라'를 제목에 차용한 책도 몇 권 나왔다. 그 중에는 영화의 자문과 시나리오에 참여한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킵 손의 <인터스텔라의 과학>(까치글방)도 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책도 함께 준비한 모양이다.
<인터스텔라>의 인기에 기댄 책? 알맹이는 우주론 이야기
그리고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또 하나의 책이 있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동아시아). 물리학자이지만 드물게 글쓰기 강의도 하는 글쓰는 물리학자 이종필 교수의 책. 아무래도 영화를 보면서 설명이 필요했던 부분들에 대한 쉽고 재밌는 해석과 풀이, 주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역시 글 '잘' 쓰는 과학자 답게 책을 리드해 나간다. 막힘없이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 강의와 집필 이야기, 책을 쓰게 된 경위, 영화에 나오는 물리학 관련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영화 리뷰, 한국 과학의 현주소까지. 이 작은 책에 그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자세하게 넣을 수 있다니, 무엇보다 저자의 글쓰기 솜씨에 놀랄 따름이다.
책은 크게 나눠 우주, 중력, 상대성이론(특수, 일반), 블랙홀과 웜홀, 덧차원을 다룬다. 물론 모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다뤄지는 내용이고, 저자가 자세히 다루는 이 모든 내용들은 모두 영화의 부분적 설명을 위함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필자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 조금 이해가 가기 힘들 것 같지만 그 부분 또한 감안한 듯하다. 즉, 이 책은 영화의 인기를 업고 상당 부분 기획적으로 출간되었지만 알맹이 내용은 다분히 물리학 그 중에서도 우주론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저자의 말을 차용해서 말하자면, 이 책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의 모음집이다. 우연인지 고의인지 모르겠지만 <인터스텔라>에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들이 꾀나 많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인터스텔라>가 보고 싶어지고 아울러 물리학에도 관심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잘 읽히는 기이한 현상도 초래한다.
주인공 쿠퍼 일행이 탄 우주선 인듀어런스호가 토성 근처의 웜홀 입구로 가기 위해 화성 주변에서 화성의 중력을 이용하는 장면이 있다. 이를 '중력기동'이라고 부르는데, 우주선으로 하여금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방향전환을 하며 속도를 높이는 데의 중요한 방법이다.
영화를 보면 인듀어런스호가 계속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등가원리' 때문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인위적인 중력을 만들 수 있는데, 우주선을 회전시키면 가능하다고 한다. 우주선이 회전하면 우주선 바깥으로 관성력이 작용한다. 잘 조절하면 지구에서의 중력과 똑같은 크기를 갖게 되어 큰 불편함 없이 우주선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의 히트품인 '블랙홀과 웜홀'. 영화에는 블랙홀이 등장하는데, 그 주변에 원반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면에서 봤을 때는 원반층이 블랙홀의 적도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블랙홀 주변으로 다시 고리 모양의 층이 보인다. 이건 블랙홀의 '중력렌즈'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블랙홀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블랙홀에 빠진 주인공 쿠퍼가 과거의 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킵 손이 자신의 논문을 통해 주장한 이론을 영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웜홀의 입구를 광속에 가까이 빠른 속도로 운동 시킬 수 있다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쿠퍼가 자신보다 늙어버린 딸을 만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과율 위배라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래가 아닌) 과거 여행이 가능할지 아닐지 아무도 모른다.
과학 전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기회
항상 과학을 동경해왔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우면 관심이 가지 않고 자연스레 재미 없다고 느껴진다. 또한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 살아가는 데 필요성을 느끼기가 힘들다.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 인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런 우리나라 정서를 뒤엎고 1000만 돌파를 이룩했다는 건 다른 모든 요소를 제쳐두고 라도 기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저자도 에필로그를 통해 밝히고 있는 바다. 이 상황에서 그런 요인을 이용해 관련된 책을 내놓은 건 발 빠른 상업적 기획의 소산이라고 할 만 하지만, 한편 독자 입장에서 관객 입장에서 아니 꼽게 받아들이진 않을 것 같다.
특히 과학에 관심은 있지만 이해를 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은근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영화를 한 번 더 챙겨보며 궁극적으로 과학 전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 이종필 지음, 김명호 그림/동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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