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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한 시대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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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내리막 세상이다. 아니, 내리막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사실 지금이 내리막 세상인지 잘 모르겠다. 첫 번째 내리막 세상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 IMF 때는 학생이었으니까 피부로 와 닿는 게 크지 않았다. 단지 부모님의 푸념이 전보다 많아졌고 사고 싶은 걸 전보다 덜 살 수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두 번째 내리막 세상 시대인 금융 위기 때인 지금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다.  뭘 알겠는가?


내리막이 아니라 원래 이런 세상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지금이 내리막 세상이라고 정확히 느낄 만한 사람은, 아마도 IMF 전에 세상에 나와 경제 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어크로스, 이하 <노마드>)는 '내리막 세상'이라는 제목부터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반면 '노마드'에서 느낌이 온다. 지금은 고정된 

일자리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이지 않은가.


<노마드>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과 함께, 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일은 새로운 공동체와 함께한다. 행복한 일의 정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스스로 주인이 되는 그런 공동체. 여기서 행복한 일의 기준은 여러 가지다. 노동이 아닌 활동, 놀이, 잉여짓, 취미를 일삼지만 스스로 그 활동을 자신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 전통적인 고용 행위나 경제 생산 활동에서 벗어난 사회적 서비스와 봉사활동, 각종 문화 예술 활동 모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모두가 주인이 되어 하는 일.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국내 명문 대학교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역시 명문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10년을 일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그녀에게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느슨해 졌을 때 그녀에게 느닷없이 어떤 욕망이 생겼다고. 일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사회 초년생이 일 앞에 '왜'를 붙이기란 쉽지 않다. 그건 오랜 세월 충실히 일을 해온 가장도 쉽지 않다. 그들의 일 앞에 붙는 건 '왜'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왜' 일을 하는 것이냐고.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밥벌이를 위해서든 꿈을 위한 발판이든 자기 실현을 위해서든 결국 행복이 목표가 아닌가.)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상당 시간을 일에 할애하고 결국은 일에 의해 규정되는데, 그렇다면 일하는 것 자체는 행복하느냐'고. 그러면 대답한다. '일이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 데요. 실직자가 얼마나 많은 시대예요?' 


저자는 아마도 이런 류의 생각 흐름을 이미 경험했고 익히 알고 있으며 시뮬레이션까지 다 해봄직하다. 그래서 책의 초반 부에 지금 시대는 경제적으로 '내리막' 세상이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자리는 누구도 보장 받지 못한다고 못 박아 버린다. 그러며 일에 대한 원론부터 파고들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성립된 '일=직업'이라는 등식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일이 곧 나라는 동일시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언제 일에 배신당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일은 그저 돈벌이라고 자조하며 살아간다면 행복할 리 없다... 일하는 나와 살아가는 나, 돈 버는 나와 돈 쓰는 나를 나누어 살아가면서 온전히 행복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마음껏 일을 좋아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말하는 '일', 그리고 '행복'


저자는 우리가 발 붙여 사는 현실의 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먹고 살만 한가?' '두 가지 다 충족된다면 행복한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말이다. 자신의 경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주장을 공고히 한다.


이어서 나오는 건 '놀이'이다. 현대 사회에서 놀이와 일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놀이는 단지 일을 잘하기 위한 여가 활동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이들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역시 다양한 사례와 인문학적 교양과 이론까지 곁들이며 놀이와 일의 합일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일에 대한 고찰. 저자는 결코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일의 현실을 부정할 뿐이다. 삶의 정체성처럼 되어 버린 일, 하지만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 일을 즐길 수도 즐기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 연습이 허용되지 않는 일의 세계지만 연습이 반드시 필요한 일 등. 작금의 일의 세계엔 부조리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향한 곳은 '행복'과 '일'의 합이다. 앞서 저자가 말했던 행복한 일의 정의에 더해,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곳이었으면 좋겠으며 회사의 소유권이 모두에게 동일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회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는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인 '롤링다이스'. 저자는 책 전체에서 '롤링다이스'를 자주 언급하며 자랑한다. 


익히 들어본 회사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일에 대한 의욕이 바닥에 떨어져서 어떠한 이유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일종의 협동조합과 비슷한 형태로, 모두가 공동 경영 공동 책임 공동 주인인 회사라고 했다. 먼 달나라에 있을 것만 같은 회사.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일의 전통적인 정의는 위협 받고 있으며 오래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현재 고용시장 밖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일 당장 롤링다이스 같은 기업에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고,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먹고살 만한 수익 구조를 당장에 구축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저 오랜 시간을 두고 느리게나마 꾸준히 행복한 일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자 시도해볼 뿐이다. 하나씩 둘씩 사람을 모아 무리를 만들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므로... (중략) 우리는 이 사회가 쏟아붓는 리스크를 아슬아슬하게 관리하며, 조금씩 빈틈을 만들어 다른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

(본문 중에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8점
제현주 지음/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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