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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가짜 베스트셀러'와 '안티 베스트셀러'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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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1> '가짜 베스트셀러' 보도와 <아까운 책 2013> 출간에 부쳐SBS의 시사 프로그램 <현장21>은 5월 7일 101회를 통해 출판계의 사재기 실태를 꼬집었다. 이른바 조작된 베스트셀러, 가짜 베스트셀러에 대한 주제였다. 이 보도가 일파만파로 퍼진 건, 사재기 의혹이 제기된 출판사의 이름과 책 이름이 낱낱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사실 예전부터 출판계의 사재기 의혹은 공공연히 제기되어 왔었고, 이번에 의혹을 받은 출판사는 지난해에 다른 책으로 사재기 의혹을 받은 바 있었다. 

출판계에서 사재기에 관한 건 도서정가제와는 달리 한 목소리이다. 근절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찬반양론을 따질 수 없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SBS <현장 21> 2013년 5월 7일자 방송 중 '가짜 베스트셀러' ⓒ SBS


사재기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책은 서점을 통해 매일, 매주, 매월, 매년마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매겨진다. 누군가는 책을 비상업적인 종합 예술 작품이라 하고, 누군가는 정교한 공산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에 순위를 매기는 행위는?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공산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공산품을 만들었으니, 공업적인 과정에서 오는 비용을 충당하기위해 어떻게든 많이 팔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베스트셀러 순위에 책을 올려놓아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니까. 수많은 출판사들이 광고를 하고, 사인회를 하고, 다른 방면의 콘텐츠와 합작하는 등의 마케팅을 실시한다. 그 방법이 다양하지 못하다.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출판계 전반의 위기가 찾아왔다. '빅 데이터' 시대의 도래로, 사람들은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더 이상 책에서 찾지 않는다. 방대한 양과 편리함을 자랑하는 인터넷에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 되어 있다. 출판사들은 승부수를 띄우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실용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자비를 들여서 자사의 책을 사들이고, 그것을 다시 파는 수순을 밟는다. 그런데 이것도 돈이 어지간히도 많이 든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렇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가 사재기를 들여다보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류'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수많은 출판사들이 허탈감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팔리지도 않는 '삼류'로 남을 것인가? 일말의 양심과 피와 같은 살을 주고 '일류'로 도약할 것인가? '베스트셀러' 관행이 남긴 씁쓸한 폐해이다. 

'베스트셀러'가 낳은 책의 씁쓸함

<아까운 책 2013> ⓒ 부키


<현장21> '가짜 베스트셀러'가 방영된 5월 7일, 공교롭게도 베스트셀러가 낳은 책이 발간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발간된 <아까운 책 2013>. 이 책에는 2012년 출판된 아까운 책, 즉 베스트셀러에 들지 못한 책이 100여권 소개되어 있다(2012년 교보문고 기준 종합 100위권 바깥의 책).

각계 명사들이 그 중에서도 가치가 있는 책들을 선별했고 재조명하고 있다.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서 3번째 시리즈이다. 책 선정의 기준이 어쨌든 베스트셀러 순위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낳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베스트셀러'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 적절하게 출간되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책을 기획한 부키 출판사 기획편집부는 서문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갖는 모순을 꼬집고 있다(그렇다고 부키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못 내느냐? 결코 아니다).

"어쩌면 모두가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고 하루 종일 주변을 맴도는 광고에 세례 받은 소비 생활을 하는 우리는, 그 덕택에 평화적으로 협력하고 일치하는지도 모릅니다. 아침마다 똑같이 냉장고를 열어 비슷비슷한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고, 몇 개 과점 통신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가 걸러 낸 뉴스를 읽으며 출근하고, 어쩌다 책 하나를 집어 들어도 너도 나도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선택하니 말이에요. 참 간단한 일치감, 평화적인 협력 아닌가요?"(본문 중에서)

'일류' 베스트셀러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러며 책에 실린 책들을 가리켜 '삼류'라 칭한다.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고, 획일적인 사회에 살아도 복제되지 않는 꿈을 꾸게 해주는 삼류. 

책의 1/3이상이 <프레시안>을 통해 이미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몇몇 책들은 출간될 때부터 눈여겨 봐왔기에 흥미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안 될 수 있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인문 책들이 눈에 띄었는데, <남자의 종말>(민음인), <철학자와 늑대>(추수밭),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들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속물 교양의 탄생>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 책 <아까운 책 2013>의 기획에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 박숙자는 우리가 아는 '고전 명작'이 그 역사·문화적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닌, 속물적 가치에 의해 소장품 혹은 애장품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한 번 명작이라 칭해지면 너도나도 명작만 찾는 모습은, 한 번 베스트셀러가 되면 너도나도 베스트셀러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겹쳐진다. 우리네 교양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블러디 머더>(을유문화사)는 어떤가. 이 책은 '추리·범죄 소설 역사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 실렸으니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다. 즉, 책이 가지는 콘텐츠 파워의 가치가 상업적 가치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업적으로의 가치는 콘텐츠 파워를 높여준다. 또한 우리나라 독자가 가지는 문화적 다양성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좁은지 알게 해주는 사례이다. 

잭 런던의 소설 <불을 지피다>(한겨레 출판사)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잠복>(모비딕)같은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이 두 소설가는 문학적 성취도 면에서나 대중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축에 속한다. 마쓰모토 세이초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국민 작가라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소설의 장르적 특성상 누구나 '명작'이라고 칭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세계문학전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인 것이다. 찾아서 읽지 않는 이상, 출간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아까운 책 2013>이 내용상 '안티 베스트셀러'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책 자체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상품이기에, 베스트셀러를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이에 대해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뒷맛이 씁쓸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진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책이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책을 소개해줌으로써 안목을 기르게 하고, 그 다양성의 가치를 높이는 데 그 의미를 두길 바란다.

안목을 길러야

베스트셀러는 분명 좋은 작품이다.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힘이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그럼에도 회의감이 드는 이유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짙기 때문이다. 

자본이 모든 걸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지만, 종합예술상품이라고 하는 책에까지 자본이 침투해야 하는 생각도 발로하고 있을 것이다(여기서 굳이 출판사의 내부 사정까지 꺼내지는 않겠다. 출판사도 엄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라는 식의 반론을 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큰, 그리고 이 기사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담론이다).

출판계 입장에서는 다 같이 도약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나 혼자만이라도 살자고 허튼 짓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모두 자멸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걸고, 출판계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하는 데에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해봄이 어떨까 한다. 얼토당토한 주장일지 모르나, 댐이 무너지는 건 작은 구멍에서 비롯되듯이,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외침으로 변할 것이라 믿는다.

독자의 입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실망하지 않고 나아가 책 자체에 대해 실망하지 않으려면, 안목을 길러야 한다. 남들이 다 보니까 나도 본다는 식의 독서법은 강력히 '비추천' 한다. 대시 많은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특히나 '다양한' 종류의 책을. 그리고 책을 고름에 있어 두려워하지 마시길. 만약에 책을 빌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납하면 되고, 책을 샀으면 고이 모셔두면 된다. 책은 철지난 옷이나 상한 음식과는 달라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변한다. 변한 나의 눈으로 다시 그 책을 본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마이뉴스" 2013.5.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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