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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이방인 한국학 대가, 한국사를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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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 왕조의 기원>역사, 그 중에서도 한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저작물을 내왔던 너머북스 출판사에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이 출판사는 작년,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를 한 <광해군>이라는 책을 필두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광해군>은 출간 당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개봉과 맞물려 많은 화제를 낳았었다. 기존의 재평가된 광해군에 대해 호기로운 시각을 보내는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책은 상당히 몰매를 맞았었다. 

출판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올해 초에는 과거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각인된 바 있는, 일본인 한국사 대가 미야지마 히로시의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사 통설로 인식되어 있는 내재적 발전론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비판하였다. 그러며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가 아닌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라고 주장한다. 즉, 기존의 한국사 통설의 기준은 서구에서 고스란히 베껴온 것이니, 새롭게 정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설을 뒤집다

<조선 왕조의 기원> 표지 ⓒ 너머북스

<조선왕조의 기원>(너머북스)는 출판사가 추구하는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의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부제는 '고려-조선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탐구한 역작'이라고 붙였는데, 부제만으로도 저자가 기존의 한국사 통설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한국사 통설에서는 고려-조선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탐구하지 않았다는 걸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 존 B. 던컨은 어떤 시각으로 고려-조선 교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실증적 탐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고려-조선 교체에 대한 비판까지 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통설인 '신흥사대부에 의해 완전히 새 시대를 연 왕조 교체이자 사회 혁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설을 따라가 보자. 

먼저 저자 존 B. 던컨은 미국인이며 한국학의 대가라는 점을 밝혀둔다. 또한 이 책은 2000년에 출간되었지만, 13년 만에 번역이 되어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사에 대한 담론, 즉 새로운 시각에 대한 포용이 부족했다는 점과 이제야 비로소 그 사슬이 조금은 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동반한다. 

책의 뒤표지를 보면, 눈에 확 띄는 문구가 있다.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 신흥 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도전한다."

이 한 마디가 이 책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 신흥 사대부 조선 건국론이란 무엇인가?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단순한 반란에 의한 건국론에 반하여 주장되고 통설로 굳어진 이론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그 뿌리를 단순한 반란으로 규정지었던 것이다. 이에 현재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은, 타락한 고려 중앙문벌귀족 즉, 권문세가를 지방의 개혁적인 신흥 사대부가 등장해 토벌하였다는 것이다. 반란이 아닌 혁명을 이룩한 것이기에, 고려-조선 교체를 엄연한 새 시대 창조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그리고 지금 학계의 정설로 여겨지는 역사적 사실은, 고려 말기에 중앙의 권문세족('몽골과의 친선 관계를 통해 새로 등장한 가문으로, 권력을 앞세워 고려 말기 사회 모순을 격화시켰다'라고 알려져 있다)에 반발해 지방의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공민왕은 개혁을 실시해 대외적으로 반원, 대내적으로 반권문세가 정책을 실시하였다. 비록 그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자연스레 신진 사대부가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후 권문세가 출신의 최영, 신흥 사대부의 대표격인 이성계 등이 힘을 더해 권문세력을 축출한다.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신흥 사대부들은 최영을 몰아내고, 완전한 새 시대 즉 조선을 열었다는 것이다. 

신흥 사대부와 성리학에 대해

이에 저자는 먼저 '신흥 사대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 후기 지배층과 조선 전기의 지배층이 단절되었는지 알기 위해 고려 때부터 조선전기까지 약 5천명에 이르는 관료들을 분석했고, 나름의 답을 얻어냈다. 조선이 창업되면서 제거된 고려말 주요 가문은 3개에 불과했고, 오히려 대부분의 주요 가문이 조선 초기에도 그대로 주요 가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양반'이나 '사대부'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 사대부' 세력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 고려 때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단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찾아보면 양반이나 사대부는 고려・조선 시대의 지배신분층을 뜻한다. 이미 존재했던 그리고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계층에 반발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심리로 '신흥'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즉 조선-고려 교체기에 지배층의 교체는 없었고, '신흥 사대부'라는 뜻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성리학'이 조선 창업의 이념이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완전한 새 시대를 여는 데에 차용된 이념이라는 것이, 어째서 그 전에도 계속 발전해왔냐는 것이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성리학은 송나라에서 발흥된 무렵인 고려 초・중기에 이미 수용이 되었고, 계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고려-조선 교체기의 사상의 복잡성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맞는 새로운 사상'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려를 지배했던 사상인 '불교'가 아닌 당시 급속도로 그 세를 불리고 있던 '성리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며 저자는 고려-조선의 교체에 있어서, 지배세력의 완전한 교체에 의한 새 시대와 새 질서 확립은 어불성설 격이라고 말한다. 고려-조선의 지배세력은 그 구성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식민사학이 '조선은 궁중반란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이 민족은 내재적 발전 없이 정체되었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에 동조하는 듯이 보인다. 이에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학의 주장과 맞선 민족주의적 당위성이 짙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식민사학이 주장하고 있는 바도 이치에 맞지 않다. 비록 내재적 발전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역사 담론의 장을 여는 새로운 이론?

저자는 '내재적 발전론'과 '정체론'으로 양분되어 있는 한국사에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특히 지금 한국사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며, 한국이 내재적으로 발전해 지금의 자본주의가 등장했다는 논리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외부에서 자본주의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조선후기 때부터 자본주의 사상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이다. 내재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결과 사실상 한국의 근대화는 이때 이룩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에 '발전'도 '정체'도 아닌, '지속'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애매한 이 말 속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는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칫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저자의 주장이, 그 자체로 정체되어 있던 역사 담론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하고 싶다. 그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센세이션한 주장이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우리나라 역사 속 발전에서의 정체도 무섭지만, 정히 두려운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생각이 닫혀 하나의 정설에만 매몰되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담론의 장에 오셔서 생산적인 토론을 만끽해보심이 어떠할지.


"오마이뉴스" 2013.4.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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