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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더 이상 시민들을 필요로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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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표지 ⓒ 후마니타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후마니타스)는 '이제 시민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정부는 더 이상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으로 서문을 장식한다. 그 단적인 예로,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위기에 직면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그 후에 한 말이 가관이다.
애국가를 부르고 애국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엇보다 쇼핑을 하라고 조언했다는 것은 시민들을 단지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손에 쥔 존재로 간주할 뿐이라는 것이다. '시민'에서 '고객'으로의 전락이다.  

여기서 전제 하나를 집고 가야 하겠다. 왜 시민에서 고객이 되는 게 '전락'인가? 그것은 다분히 '정치'에서의 그것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이다. 제목인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한국말로 옮겨보자면, '민주주의의 축소'쯤 되겠다. 부제인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즉, 책의 저자(들)은 (미국) 민주주의에서의 시민의 영향력 축소가 곧 민주주의의 축소이고, 이는 곧 민주주의가 나빠졌다고 해석한다. 이 점을 주지하고 책을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는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다 나온 것 같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각각 나빠진 민주주의를 대입하면 되는 것이다. 한번 천천히 살펴보자.

나빠진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를 축소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들은 본래의 대중민주주의에서는 정부 혹은 정치 엘리트들(이하 '정부')이 어떻게든 대중(시민)의 관심을 받고자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하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손을 내밀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없음을 우려하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이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시민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비로소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다.

언제부터 민주주의가 축소하기 시작했는가. 저자들은 19세기 말 이래 대중 정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조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던 것이 2000년 대통령 선거 직후의 일련의 과정과 2001년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이 한 발언을 계기로, 시민의 역할이 퇴조했다는 것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25명의 플로리다 선거인단이 선거 결과를 결정짓게 되었다. 

이때 엘 고어와 조 리버먼은 대중에게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채, 정치자금 기부자들에게 전화를 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대중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에 이미 이들은 두 대통령 후보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고 부시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고, 즉 쇼핑을 하며 경제나 부양하고 방해되지 않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저자들은 이를 명백한 시민의 역할 퇴조의 전환점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축소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이는 책의 부제인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은 순전히 '미국' 민주주의의 축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기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축소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생각해보면 억측이라면 억측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수 있는 추측 한 가지를 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당은 현재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흔히들 말하기를 한 쪽은 보수, 한 쪽은 진보. 보수당은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진보당은 서민을 대표한다고 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거의 항상 보수당이 집권을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서 집권을 하게 되는 정당정치에서, 왜 국민 대다수 서민층을 대변한다는 진보당이 아닌 보수당이 집권을 할까? 이는 본 책에서 말하는 바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민주주의의 축소는 어떻게, 왜 실현되었는가?(무엇은 생략하기로 한다) 저자들은 여기에 공력을 투여해 많은 예를 들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비교적 길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개요를 옮겨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21세기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서조차 유권자[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 유권자 기준]의 절반 정도만이 간신히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원인 가운데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들이 유권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았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날 경쟁하는 엘리트들은 유권자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정책을 경쟁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장으로 옮겨 버리는 장치들인 소송이나 행정절차, 민영화나 바우처, 관료적 조정을 이용해 상대를 이기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한때 자기편이 되어 달라며 도움을 요청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게 되었다. 어제의 주연배우들이 오늘은 관중이 되었으며, 시민이 아니라 구경꾼과 소비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 개요 안에는 어떻게(소송이나 행정절차, 민영화나 바우처, 관료적 조정)와 왜(정치 엘리트들이 유권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자, 저자들이 말하는 어떻게와 왜를 말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경우를 먼저 설명해 본다. 필자의 추측이라는 점을 알고 읽어주시길.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수의 국민들은 '정치 혐오증'을 갖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정치 참여, 즉 투표율의 저조로 나타나곤 했다. 이는 곧 보수당의 집권 영구화를 실현하는 것이고, 이를 안 보수당은 '혐오 정치'를 실시 한다. 정치계의 어떠한 일들도 언론을 통해 비춰지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그들은 '일부러'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럴까? 이를 간단히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혐오 정치->국민(서민)들의 '정치 혐오증'->투표율 저하(투표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서민)->보수당 집권 유력

그들은 더 이상 시민들이 필요하지 않다. 불필요를 넘어서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될 때 비로소 그들은 계속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축소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민주주의 축소는 위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나 싶다. 그러면 저자들이 말하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주의 축소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자.

아무리 개인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다지만,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중에의 지지에 들어가는 시간과 공력을 줄이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까? 저자들은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일단 애초에 투표율을 낮추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을 쓴다. 이렇게 상대방의 투표율을 낮추고, 선거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들을 선정해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 대중에의 지지를 받기위해 쓰는 시간과 돈 공력보다, 소수의 유권자(선거에 관심이 많은)를 위해 훨씬 더 많이 쓴다. 

유권자 등록제도 한몫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했고, 이는 곧 대중의 지지 아닌 전문가의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들은 고도의 기술로 맞춤형 선거 캠페인으로 선거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타킷팅한다. 방법은 또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춘 것이다. 

외양으로만 본다면 환영받을 만한 일이지만, 저자들은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뭉쳐야 산다"가 아닌 "흩어져야 한다"는 구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대중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힘을 목아 한 목소리를 내야 비로소 정책을 개선하고나 정치적 이슈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이제는 개개인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오히려 (정치에서의) 개개인의 힘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대중(시민)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선거에 관심이 많은 사람만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고, 시민이 선거 또는 정치에 관심이 없게끔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다. 시민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고, 정치인들에게 시민은 점점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고객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과도한 개인 민주주의는 자칫 정치의 존재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정치는 기본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나라는 국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정치는 국민(시민, 대중)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머지않아 미국 정치에서 가장 절박하고도 우려스러운 문제는 "알게 뭐야?"가 될 수도 있다고. 아무리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원한다고 해도, 모든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어지면 리그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다. 이는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이 시대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정치인들, 시민들 모두가 생각해야할 문제로 가득 찬 책이다.


"오마이뉴스" 2013.3.1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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