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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도 모르는 일본의 진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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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지구상 어느 나라를 보아도 '신화'와 '전설'은 존재한다. 이를 두고 나라가 성립된 초기에 주로 왕권 강화를 위해, 엄청난 업적이나 인간으로서는 절대 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일을 역사로 편입하려 한다. 한국, 중국도 물론 수많은 역사서가 있고 그 속에는 신화도 두루두루 존재한다. 그 자체로 역사적 산물이기에 쉬이 거짓말로 치부해버리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 신화를 완전한 역사로 편입시키지는 않는다.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어느새 줄 위에서 사라졌다. 신화를 완전한 역사로 편입하려는 계책을 세우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세워왔다. 오로지 일본에만 존재하는 존재인 '천황'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에서 말하는 일본 역사에 의하면 천황은 신화와 역사의 시대를 오롯이 지낸 존재이다. 그런 천황이 있기에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일본의 역사와 신화의 구분을 해체시켜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본의 건국신화, 삼한 정벌 전승 신화 등은 '허구'인 신화에서 '사실'인 역사가 되어버렸다.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표지 ⓒ 책세상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라는 부제를 단 책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책세상)에서는 '신화'와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일본이 어떻게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구성된 역사를 재생산해왔는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고 좋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일본의 역사관을 연구하고 더 철저하게 일본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연구의 총론으로, 일본 역사 나아가 천황과 극우 세력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역사로 편입된 일본 신화의 실체

'신국일본'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신들의 나라라는 뜻이겠다. 그래서 일본 각지에는 신을 모시는 신사가 많다. 하지만 이건 잘 모를 것이다. 그 신사들 대부분이 메이지 시대(1867~1912)의 산물인 것을. 그렇다면 메이지 시대, 즉 메이지 천황의 집권기에 신사들이 생겨난 것일까?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확연한 오늘날에도 일본의 경우 신화와 역사의 경계는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중략) 신화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중략) 일본인들이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 일본 신화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신화 본연의 제의이다. 반면에 2000년 5월 일본의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내뱉은 '신국일본'이라는 말에서는 태고의 신화가 아니라 신화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 그중에서도 근대에 창조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려는 갈망이 엿보인다.(들어가는 말)

일본 신화를 본연 그대로 즐기고 있는 일본. 하지만 극우 세력들은 신화를 이용해 그 무슨 짓인가를 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신국일본은 즉, 신의 존재인 천황의 나라라는 뜻일 테고, 신화와 역사의 시대를 관통한 유일한 존재인 천황의 존재 자체로 일본에서 신화와 역사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신화들 중에서 일본의 터무니없는 우월의식(특히 한국에 대한)이 반영된 신화를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일본인들조차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믿는 '천황'의 존재가 있고,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천황제를 이용해 일본 제국주의, 일본 극우주의들은 그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일본은 제대로 알려면 일본사관를 알아야 되고, 일본사를 알려면 일본 신화를 알아야 하고, 그 중심에 있는 '조작된' 천황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일본의 건국신화, 삼한 정벌 전승 신화 등의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일본의 건국신화 중에는 천황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누나이고 신라에서 건너온 스사노오노미코토가 남동생이므로 일본과 조선은 조상이 같다는 설이 있다. 이어서 삼한 정벌 전승 신화는 일본의 진구 황후의 삼한 정벌 전승을 통해 삼한을 일본의 조공국으로 삼았고 가야를 일본의 식민 기관인 '임나일본부'로 삼았다는 설이다. 

21세기 현재에도 일본처럼 신화를 통해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나라는 없다. 현재 역사 왜곡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새역모 교과서가 바로 '신화의 역사화'라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곧 '신화의 역사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신화의 주된 목적은 천황을 신격화시키는 데 있다. 신민을 교화시켜 획일화된 교육 아래, 일본의 우월감을 보여줌과 동시에 끊임없는 제국주의적 움직임을 보이려 하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움직임의 근본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일 과거사 문제 해법의 근원

(중략)세계의 모든 민족이 각각의 고유한 역사를 갖고 있듯이 일본에 고유한 역사가 있습니다. (중략)서구 제국의 힘이 동아시아를 삼키려고 한, 저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자국의 전통을 살려 서구 문명과의 조화를 모색하고 근대 국가 건설과 그 독립의 유지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외국과의 긴장과 마찰을 동반하는 엄격한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중략)일본인을 대대손손까지 계속해서 사죄하도록 운명 지어진 죄인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중략)우리가 만든 교과서는 세계사적 시야 속에서 일본국과 일본인의 자화상을 품격과 균형을 가지고 그렸습니다.(후략) - 헤이세이 9년(1997) 1월 30일 설립총회(본문 중에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자학 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한일을 넘어 전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취의서이다.

과거에 국가적인 대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 너무 자학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그런 과거사에서 탈피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들의 표면적 목표는 역사 기술의 수정이었으나 진짜 목표는 일본인의 역사 인식, 전쟁 인식을 침략 전쟁 긍정과 가해 사실 부정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내셔널리즘 운동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응하고 있는 단순한 역사 왜곡만의 문제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일본인 모두에게 지지를 받는 합법적 제국주의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과 일맥상통한 것인데, 단순 역사 기술에서의 논쟁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응 모습을 보고 저자는 거기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 해법의 근원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일본 극우 세력이 꾸미고 있는 움직임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 

또 하나의 근원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에 있다. 일본과 일본 극우 세력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충분히 일본의 양식 있는 일본인과 연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 해법의 근원 중 둘은 바로 이것이다. 일본과 일본 극우 세력을 동일시 하지 말 것. 

한국과 일본의 간극

이 책이 말하려 하는 건 간단하다. 한일 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단편적인 시각을 깨뜨리고 편견을 바로잡아 진정한 교류를 해야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그 목적으로 이 방대한 양의 책이 쓰였다. 

저자는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건전한 애국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한국인에게는 일본에 관한 한 '이성적인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흔히들 말하는 '윈-윈'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엄청난 양의 자료와 명확한 자료에 의한 논리적인 글로, 일본의 '새역모'에 맞선 저자와 저자의 저서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앞에서 의심을 품었던 한일 간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보인다. 

일본은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과거사를 직시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한국은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의연하게 과거사를 털어내고 한일의 미래를 향해 일보 앞으로 전진하기 바란다.(본문 중에서)


"오마이뉴스" 2013.2.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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