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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뺏기>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거대한 범죄의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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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또 다른 이유 <땅뺏기>


<땅뺏기> ⓒ레디앙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에 속하는 나라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전 세계 동식물 5%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또한 전 세계 동식물 중에서 75% 이상이 이 섬에만 존재한다. 한마디로 '자원의 보고'이다. 이 나라는 2009년 큰 위기를 겪었고, 한 가운데에 대한민국 기업 '대우'가 있었다. 


2008년 11월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대우 그룹과 정체 경지 면적(250만 헥타르)의 절반이 넘는 130만 헥타르에 이르는 땅의 농지개발권을 99년 간 무상으로 빌려주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야당 세력은 "부정직한 거래가 있었으며 이는 새로운 식민주의의 형태이고 자국 땅을 팔아먹는 행위'라고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는데, 이 사건이 폭로 되고 이슈화 되어 정부에 대한 시위로 이어졌다. 급기야 대통령이 사임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바로 99년 간 무상으로 농지개발권을 빌려주는 협정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치적 위기는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협정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협정을 체결한 것일까? 자원은 많지만 자본이 없는 '약자'와 자본은 많지만 자원은 없는 '강자'의 일방적인 관계로 보아도 무방할까? 어찌 하여 21세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평등과 자유를 외친 인류의 역사는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책 <땅뺏기>(레디앙)을 읽고 있으면, 이런 나의 생각이 굉장히 아주 굉장히 순진하게 느껴진다. 내 자신이 한없이 무지하다고 여겨진다. 세상이 참으로 무섭다고 생각된다. 대우와 마다가스카르 정부와의 말도 안 되는 협정은 세계 곳곳에서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그러나 아주 전형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식민주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이 모든 비극적 이야기의 시작은 2007~8년의 식량 위기이다. 식량 위기는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인구 증가, 기후 변화, 바이오 연료 확대, 금융 위기에 의한 투기 자본의 침투 등. 그리고 식량 위기는 지구에 많은 변화를 이끌고 왔다. 그중에서 '땅뺏기'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땅뺏기 현상을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에티오피아의 토지를 대규모로 임대하는 현상은 전형적인 시장 작동 원리가 낳은 결과이다. 2007~8년 세계적인 규모의 식량 위기가 발발해서 쌀, 밀, 옥수수, 설탕 같은 기본 식량의 가격이 폭등한 뒤, 식량 수요는 절박한 요구가 되었다. 아라비아 만 국가들은 막대한 현금 자원을 보유하고도 식량이 고갈 되는 사태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통치자들은 더 빠른 해결책을 선택했다. 다른 나라에서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전 세계 땅뺏기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자본은 많고 자원은 국가의 극비 프로젝트 '땅뺏기'. 그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는 수많은 기업들. 그리고 이에 더해 자원은 많지만 자본이 없는 나라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 이 나라 정부는 땅을 무상 혹은 턱없이 싼 값에 임대 해주면서 그들이 뭔가 해줄 거라고 기대한다. 사회 기반 시설을 지어주고, 고용을 창출하고, 선진 문화와 기술을 보급하고... 그야말로 식민지론의 전형이 아닌가?


그렇지만 또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여전히 논쟁 중이라는 얘기다. 땅뺏기를 감행하는 측에서는 이것이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그리고 가장 최적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생'을 통해 농촌에도 여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땅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그 먹여 살려야 하는 인구에 자신들은 속하지 않는 것이냐고 항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먹여 살려야 하는 인구에는 도시인 밖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상생'이라는 개념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 둘은 단순히 서로 다른 발전 모델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모델이기도 하다. 첫 번째 모델은 지구를 단순하게 점점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산업 차원의 생산을 하는 장소라고 본다. 두 번째 모델은 들판의 생활 전통, 대지와 인간의 관계, 몇 백 년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문적 농사 기술 등을 옹호한다. 첫 번째 모델은 도시 세계와 급증하는 도시 인구를 먹여 살릴 필요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두 번째 모델은 농촌에 굳게 뿌리를 둔다. 첫 번째 모델을 신봉하는 이들이 보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근대화에 완강하게 반항하면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옹호하는 시대착오적인 야만인 종자들이다. 두 번째 집단의 시각에서 보면, 상대방은 대화가 무의미하며 그저 전력을 다해 저항해야 할 괴물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취재는 직접적인 땅뺏기에서 바이오 연료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사실 넘어갔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땅뺏기를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바이오 연료 때문이다. 이는 식량 위기, 그중에서도 식량 가격 폭등과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해서, 에탄올은 자동차를 굴러가게 할 수 있다. 에탄올은 옥수수에서 추출할 수 있는데, 그 결과로 옥수수를 재배하는 토지의 양이 늘어난다. 따라서 다른 작물의 가격이 폭등하고 식량을 수입하는 다른 나라들이 고통을 받는다. 결국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시위를 한다. 


땅을 뺏고 바이오 연료를 추출하는 사람들은 이를 부정한다. 식량 가격 인상은 유가 인상이나 유통 체계 같은 많은 요소들 때문이고, 자신들은 큰 메커니즘에 속한 작은 변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이자 전 UN 식량권 특별보고관 '장 지글러'의 말을 들어 보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그는 바이오 연료를 '대량 살상 무기'에 비유하곤 했다. 과연 연료가 우선일까, 식량이 우선일까? 


책은 기본적으로 땅뺏기 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일방적인 시선이 아닌 최대한의 자료적 중립을 지키려 한다. 양 측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주장과 상황을 두루 살피고 정확히 맞물리는 사항들을 나열해서 보여준다. 이 객관적인 사항들을 보고 개인적 판단은 각각 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땅을 빼앗는 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 땅을 빼앗는 표현이 맞다는 빼앗는 이들과 빼앗기는 이들의 주장에서 어느 쪽이 더 합당한지, 각각의 주장을 전 지구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아니면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더 들어가 식량이 우선인지 연료(환경)이 우선인지,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이 거대한 현상에 옳고 그름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등.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위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색조로 진행되는 땅뺏기는 본질적으로 소농들의 땅과 생계수단을 빼앗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쟁점, 문제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다. 토지를 무차별적으로 매각하는 이 범죄의 주범은 각국 정부다." (본문 중에서)


필자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이들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지만, 이 거대한 범죄를 획책하고 있는 이들은 각국 정부인 것이다. 옛날 식민지 시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동인도회사'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영국, 네덜란드 등 정부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의 주체도 다름 아닌 정부이다. 그 정부는 땅을 빼앗는 정부 말고도 자신의 땅을 내놓는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의 정부야말로 자국의 소농들을 굶주림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악의 화신이 아니겠는가? 일제 시대, 일본 제국보다 더한 악한이 바로 친일파 아니었던가? 이와 다를 바가 무엇이랴. 땅뺏기의 본질은 여기 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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