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이너리티 클래식>
<마이너리티 클래식> ⓒ 현암사
나름대로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고 있다. 각 시대별로 활동했던 주요 인물들을 나열할 수 있을 정도이다.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비발디, 바흐, 헨델. 18세기 고전파 시대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19세기 낭만파 시대의 슈베르트, 쇼팽, 슈만, 리스트, 베르디. 19~20세기 후기 낭만파의 바그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푸치니. 20세기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이들은 딱히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클래식에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클래식계의 거성들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또 의도치 않게 여기저기에 많이 사용되어 들리곤 한다.
이렇게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적 사조의 중심인물로 한 번 자리매김하면 그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의 흐름과 대세는 계속 바뀔지라도 그 가치는 퇴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몇몇의 메이저들이 만들어놓은 반석 위에서만 존재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자가 위에서 나열하며 거드름을 피웠던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즉, 드넓은 예술의 바다에서 그들만이 위대하고 그들만이 유일한 존재인양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메이저인 그들을 언급할 수 있어야 자신들이 메이저가 될 수 있는 듯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반드시 음과 양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메이저(유명한 사람)가 있으면 마이너(유명하지 않은 사람)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몇 백 년의 서양 클래식 역사에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20명에 불과하진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거장'들?
왼쪽) 요하임 라프, 오른쪽) 한스 로트. 구스타프 말러에게 영향을 끼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이들을 아시는가? ⓒ 현암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클래식>(현암사)은 클래식 역사에서 소수의 메이저에 가렸던 마이너들 49명을 불러내었다. 고백하건대, 나름대로 클래식을 안다고 자부했던 필자는 이 49명 중 단 한 명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건, 그가 어떤 시대에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음악을 했는지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걸 말한다.
아무리 낯선 거장을 불러냈다고 하지만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니, 한편으론 창피하고 한편으론 저자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그렇게 모를 것 같은 사람만 소개하고 있는지. 필자와 비슷한 클래식 지식을 갖고 계신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클래식 지식의 지도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현악 연주가를 각각 8명, 12명, 13명, 16명씩 소개하고 있다. 위에서 나열했듯이 클래식의 시대를 나눌 때, 대표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49명 중에 작곡가는 불과 8명뿐이다. 그에 반해 현악 연주가는 두 배인 16명에 달한다.
현악 연주가의 메이저조차 단 한 명도 알지 못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이 될 것 같다(물론 현대의 현악 연주가, 예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몇몇 알고 있다).
이는 저자의 배려로도 읽힌다. 클래식계에서 지휘자, 피아니스트, 현악 연주가는 상대적으로 작곡가에 비해 그 자체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즉 작곡가에 비해 지휘자가, 지휘자에 비해 피아니스트가, 피아니스트에 비해 현악 연주가가 덜 알려져 있고, 저자는 이를 알고 덜 알려져 있는 순서대로 더 많은 인물들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49명의 낯선 이들은 거즌 지금까지 불멸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운의 천재 한스 로트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로 요절했지만, 구스타프 말러가 인정한 작곡가였다. 쇼스타코비치의 우상이었던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처럼, 어떤 이들은 거장들이 존경하기도 했다. 스콧 조플린이나 윌리엄 그랜트 스틸처럼 마이너조차 못됐던 흑인의 삶을 노래했던 이들은 이미 거장이라 할 만하다.
'거장'들은 왜 잊혀졌을까
그런데 그들은 왜 사람들한테 잊혀졌을까. 제일 큰 이유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천재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살리에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당대 세간의 찬사를 받았던 궁정 소속 작곡가였다. 즉, 황제 직속 작곡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에 모차르트라는 클래식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존재했기에, 지금에 와서 살리에리의 이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였다. 그 혼자만을 놓고 보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음악가였지만 말이다. <삼국지> 주유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하늘은 이 주유를 낳으시고, 왜 또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
다음으로는 천재의 추락이 있겠다. 클래식 역사상 수많은 제2의 모차르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실력에 합당한 이름을 얻은 자는 거의 없다. 어떤 이는 실력이 빛을 보기 전에 요절했고, 어떤 이는 너무 빠른 성공에 취해 자신을 버렸다. 또 어떤 이는 천재적인 실력을 믿고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았고, 어떤 이는 실력을 꽃피울 수 있는 여건과 여력이 갖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여전히 재해석되지 못하고 있거나, 시대의 흐름을 강하게 타는 음악을 했기에 아직 재해석되지 않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음악은 음악 자체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후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게다.
이미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에, 무조건적인 재해석으로 더 많은 음악을 듣게 해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 책 같은 경우는 재해석이 아닌 재발견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취사선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각 꼭지마다 객관적인 연대기적인 삶-저자의 주관적인 해석-레코드의 순으로 하게 배치되어 있기에, 보시다시피 재해석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조차 최대한 객관적 자료를 기반으로 하였기에 재발견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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