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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IN 모던타임스> '마리 퀴리'가 발견한 원소, 사람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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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CSI IN 모던타임스>


<CSI IN 모던타임스> ⓒ 어크로스

추리소설은 즐겨 보지만, 셜로키언(셜록 홈즈의 팬 또는 연구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을 한 편이라도 접하는 것이 예의이기에 초기작 '주홍색 연구'를 보았다. 셜록 홈즈가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셜록 홈즈는 문학, 철학 지식이 전무하지만 독극물에 해박하고 금세기 중범죄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으며 바이올린을 수준급으로 켜는 괴짜로 그려진다. 때는 19세기 말. 아직 독극물에 대한 연구가 완벽하지 않았던 만큼, 그의 능력은 돋보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법의학자 왓슨이 있었다. 이들 콤비는 추리 탐정 소설의 상징이 된다.


이 시리즈가 미친 영향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지금도 셜록 홈즈의 이름을 내세운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또는 영향을 받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진다. 유명 미국드라마 <CSI> 시리즈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듯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CSI IN 모던타임스>(어크로스). <CSI> 시리즈가 항상 뒤에 'IN 지명'을 붙이는 것에서 착안한 듯하다. 책의 내용을 보자면 '모던타임스' 대신 '재즈시대' 혹은 '뉴욕'이라고 해야겠지만, 둘 다 부제로 빠져있다.


여기서 CSI란 소비자동향지수나 소비자태도지수가 아니라 과학수사대이다. 정확히는 범죄현장수사대이지만 알아듣기 쉽게 번역했다. 그렇다면 이 책 <CSI IN 모던타임스> 또한 과학수사가 모티브인 책인 듯하다. 원작의 제목을 보니 'The poisoner's handbook' 즉, '독살범의 핸드북'인데, 출판사 측에서 우리나라 독자의 입맛에 맞게 고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만 '모던타임스'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에 20세기를 관통하는 맥락이 자리 잡고 있다면 크게 무리는 아니겠지만.


책은 논픽션이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는 저자의 글 솜씨, 하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성이다. 혹자는 과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책의 두 주인공(실제인물) 병리학자 검시관 찰스 노리스와 그의 수석 화학독성학자 알렉산더 게틀러는 셜록 홈즈와 왓슨을 연상케 한다. 한 명은 나서기를 좋아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만, 한 명은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때는 20세기 초 재즈시대, 장소는 미국의 뉴욕. 1920~30년대 미국은 1차 세계 대전 특수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팍스 로마나' 시대 때 로마 시민들이 평화를 만끽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처럼, 재즈시대 미국 뉴욕은 경쾌한 재즈 선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흥청망청 생활하고 있었다. 곧 다가올 대재앙, 세계 대공황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시기에 어느 누가 남의 일에 간섭하겠는가. 사람이 다치던 죽건 아무도 관심이 없고, 수사조차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사인을 조사하는 검시관들은 부동산중개업자, 술집주인, 배관공, 조각가, 목수, 페인트공, 우유배달부 출신이었다. 여기엔 정치적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여느 사건들이 그렇게 처리되었다.


이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뉴욕시 최고 담당자는 새로 선출된 시장의 개혁에 맞물려 검시관 선출에서 정치적 입김을 배제시킨다. 그리고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들을 그 자리에 앉힌다. 그들은 병리학자 수석 검시관 찰스 노리스와 그의 헝가리 출신 수석 화학독성학자 알렉산더 게틀러였다. 그렇게 그들은 재즈시대 뉴욕의 각종 화학범죄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게 된다.


여기서 화학범죄라 하면 독극물에 의한 범죄를 말한다. 즉, '독살'이다. 추리소설에서 자주 인용되곤 하는 독살 수법이 당시에 실제로 횡행했던 것이다. 독살은 특히나 시대의 조류 변화에 밀접해서, 덩달아 그 수법이 발달하고 교묘해졌다. 그 시작은 '금주법' 시대의 개막이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주인공인 개츠비가 밀주업자라는 소문이 돈다. 그가 그렇게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재즈시대 뉴욕인데, 금주법이 시행되자 술을 찾는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밀주업자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살인자들은 이 상황을 악용했다.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위험한 술을 공급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묻어가려는 심산이었다.


독은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독이었다. 몸이 아파 찾는 약국에 독이 즐비했고, 약에 독이 들어가 있기도 하였다.(아마 현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동차가 출현하면서, 거리의 어디서든 독(배기가스)을 들이마시게 되었다. 독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으며, 결정적으로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유용하게 쓰이기까지 하였다. 사례 하나를 간단히 살펴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리 퀴리를 알 것이다. 그녀는 방사성 원소에 관련해서 노벨상을 탔는데, 그녀가 발견해낸 것 중에 하나가 '라듐'이었다. 라듐은 칼슘의 '제정신이 아니긴 해도 매우 가까운' 사촌으로, 인간의 몸은 라듐을 칼슘처럼 처리하였다. 하지만 칼슘이 뼈의 무기질을 강화시켜주는 반면에 라듐은 완전히 반대로 작용했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의 라듐은 기적의 치료제라며 많은 곳에서 치료되곤 하였다. 하지만 이 두 얼굴의 원소에게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치명적인 '독'도 가지고 있었다. 라듐을 이용해 상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여공들이 죽어가며 이 문제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죽어가는 여공들의 증상을 살핀 결과, 라듐 중독에 의한 것이었고 결국 회사는 인정하고 보상하기에 이른다.


재즈시대를 기점으로 20여 년 간을 연대기 형식으로 기술했다. 10개의 독극물을 소개하면서, 해당 독극물에 대한 풍부한 사례를 곁들인다. 독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가히 백과사전 급이다. 당시의 분위기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묘사로 글자를 따라가기에 바쁘지만, 챕터별로 깔끔히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어느 챕터를 보아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지적 흥분을 일으키게 해주는 책이다. 무더운 여름밤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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