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포노
재즈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흑인들의 음악, 하위 계층에서 탄생한 음악, 상류층만 즐기는 고급 음악, 슬픔과 애환, 트럼펫, 피아노, 루이 암스트롱, 찰리 파커, 빌리 홀리데이 등. 재즈는 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결코 평범하지도 평면적이지도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실제로도 재즈의 특징은 매우 복잡하다.
재즈는 여러 음악 분야 중에서도 '예술'적 측면이 강해보인다. 이는 곧 상대적으로 대중친화적이지 않으며 마니아적이고 전통적이며 자본에 종속되지도 않았다는 뜻일 게다. 흑인 하위 계층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진 재즈는 왜 이렇게 소수 마니아를 위한 음악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어떻게 평범한 음악이 비범한 음악으로 변한 것인가?
에릭 홉스봄의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포노)는 재즈 역사를 바꾼 아티스트들을 다루면서 아울러 평범한 하층민들의 음악이 어떻게 고급스러운 교양인들의 음악으로 변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무엇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20세기의 위대한 역사학자로 이름이 드높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두루두루 폭넓게 연구한 학자이며 2년 전인 2012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역사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행해왔는데, 그런 그가 '재즈'에도 깊은 조예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 본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재즈 비평가로 활동하며 관련된 저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재즈 동네>, <비범한 사람들> 등이다. 이 책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본래 <재즈 동네>를 번역할 계획을 세웠던 옮긴이가 재출간 허락을 받지 못해 <비범한 사람들>의 4장인 '재즈' 만을 따로 떼어내 옮겨낸 것이다. 그 누구보다 예리했던 저자가 본 '재즈'는 어떨까.
우선 이 책의 1장은 재즈 아티스트에 대한 책에 대한 서평이고 2장은 재즈의 역사와 의미를 고찰한 책에 대한 서평 혹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의 서문을 보강한 글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먼저 1장을 보자면, 4명의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가 나온다. 차례로 옲어보자면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이다. 나열 순서는 활동한 연도순인 듯 보이고 유명세순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중에 아는 이름은 '빌리 홀리데이' 뿐이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시드니 베셰는 루이 암스트롱과 자웅을 겨뤘던 유일한 즉흥연주자이며, 듀크 엘링턴은 재즈를 넘어 20세기 문화의 위대한 인물이고, 카운트 베이시는 재즈 신화에 큰 기여를 했으며, 빌리 홀리데이는 재즈 보컬을 완성한 최초의 여성 가수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건 어떤 연유일까? 홈스봅은 이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진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차례대로 언급해보자. 자기 자신이 아니면 충성을 다하지 않는 기이한 인물, 아들에게 냉정했으며 여성들에게는 무자비했고 다른 음악인들의 작품을 사용하는 데 부도덕했던 인물, 그 자신이 일급은 아니지만 밴드를 일급으로 만들 수 있던 인물, 어린 시절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였고 수차례 구속수감되었던 인물. 이 사람들은 재즈 역사를 바꾼 사람들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인 재즈는 비범하며 위대하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이런 재즈의 다양한 면면을 이야기한다. 재즈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진출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재즈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고찰하며 재즈의 마지막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1960년대 이후의 재즈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제일 흥미롭게 다가오는 글은 마지막 글인 '1960년대 이후의 재즈'이다. 책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고 현재의 재즈와 가장 밀접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가장 재미있다.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 책은 쉽지 않고 재밌지도 않다. 굉장히 어려운 편이며 재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읽고 싶어지지 않은 책이다. 백 번 양보해 에릭 홉스봄이라는 이름을 통해 역사의 프레임으로 살펴보아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책인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 챕터가 제일 쉽고 재밌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재즈는 소수자만을 위한 음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큰롤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에서 태동했음에도 로큰롤이 대중적 음악으로 발전한 것과 다르게 말이다. 재즈는 락이 가진 것 이상을 포함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락은 재즈가 가진 특징과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락은 재즈의 새로운 잠재적 감상자들 대부분을 빼앗아 갔다. 왜냐하면 록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재즈에서 느꼈던 매력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단순화되고 아마도 보다 거칠어진 형태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듬, 즉각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목소리와 '사운드', 진정한 즉흥성과 역동성, 인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본문 중에서)
여기서 재즈의 진정한 위기가 시작된다. 그럼에도 재즈는 락을 따라가지 않고 전통을 고수하려 한다.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려는 복고운동까지 펼쳐지기도 한다. 1970년대를 거치며 락이 점차 힘을 잃고 재즈가 다시 부상하려 할 때와 맞물려 옛 유명 아티스트들의 명성에 힘입어 재즈는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이는 결코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신정통주의는 재즈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을지는 몰라도, 재즈 자체의 확산에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즉, 기존의 마니아 층을 다시금 결속시켰을지는 몰라도, 새로운 층의 유입을 바랄 수는 없었다. 에릭 홉스봄은 재즈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재즈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에릭 홉스봄이라는 것 말고는 큰 특징이 없어 보인다. 마케팅이나 홍보 포인트도 그것이 거의 전부인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전에 어떤 책인지 전혀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막상 읽었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소설로 치면 발단과 전개가 빠지고 다짜고짜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책의 한 부분을 떼어내었기 때문인 듯하다.
아마도 옮긴이가 강력하게 원했을 듯한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도 수없이 언급했던 소수자만을 위한 음악인 재즈. 그리고 그 재즈에 대한 결코 친절하지 않고 쉽지 않으며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한 이 책. 정말로 재즈를 (그리고 에릭 홉스봄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불가능한 기획인 것이다. 그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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