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사월의책
단군 이래 최고의 불황이라는 요즘의 출판계. 이 말이 나온지가 20년이라고 하지만,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는 더 이상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말로 책은 우리들한테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떤 책들이 나와야 할까? 어떤 책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책읽기에 관한 책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출간되는 모양새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 읽는 방법론을 설명하는 건 애초에 어불성설이니 주로 어떤 책을 읽으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인지 논하는 편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요량으로, 책서평 모음집도 많은 출간되고 있다. '인문학'이라고 포장된 책들 중에 상당수가 바로 책서평 모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떻게든 책을 읽게 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여담이지만 필자도 그에 한몫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 특이한 책읽기 책이 출간되었다. 일본 최고의 석학이라고 불린다는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사월의책)이다. 이 책이 왜 특이하냐면, 대상자가 책을 읽고 있거나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아구가 잘 맞지 않는 기획인 듯하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1962년에 최초 출간된, 자그마치 50년 이상된 책인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고 화끈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방법론이 존재한다고. 어찌 되었든 그의 논조는 작금의 책읽기 관련 출판 시장을 통째로 비판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오랫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왔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마구잡이 독서'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구잡이 독서의 병폐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말을 수긍하지 않는다. 마구잡이 독서는 내 인생의 일부이며, 인생의 일부인 만큼 기계 부품처럼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구잡이 독서의 병폐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필자는 책을 주로 짜투리 시간에 읽는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고, 그곳에서 읽는 책만 수백 권에 이른다. 오직 그 시간에만 읽었는데 말이다. 어딜 가든지 책 한 권을 들고가, 이동할 때나 기다릴 때나 책을 펴든다. 절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따로 시간을 내어 책을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는 현대인의 공통된 말들은 내게 이상하게 들린다.
또한 책을 읽을 때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임한다. 정자세로 앉아서 책상에 책을 두고 읽은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서 책을 읽을 때는 주로 누워서 읽거나 앉아서 다리를 꼬고 읽는다. 바른 자세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알게 모르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나에게 없다.
오묘하게도 이런 내용이 <독서만능>에 고스란히 나온다. 저자의 독서에 대한 생각이 필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상당한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동반되는 행위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독서자세에 대해 더 이상 일별할 필요는 없겠다.
저자는 이어서 주지했던 바와 같이 책읽기의 방법론을 논한다. 흔히 알고 있는 '정독', '속독'을 위시해 책을 읽지 않는 방법, 외국어 책을 읽는 방법, 신문잡지를 읽는 방법, 어려운 책을 읽는 방법 등이다. 여기서 저자는 정독에 관해서는 고전을, 속독에 관해서는 현대물을 예로 든다. 책을 읽지 않는 방법은 과연 어떤 방법일지 관심이 간다. 외국어 책, 신문잡지, 어려운 책을 읽는 방법은 사실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바다.
저자는 읽을 책을 고르는 것만큼 읽지 않을 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읽을 책과 읽지 않을 책을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렵고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도 오마이뉴스 책사랑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매주 수십 권의 책들 중에 1~2권의 책을 선택하는데, 행복한 고민일지는 몰라도 상당히 어렵다. 나름의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데에도 상당한 수련과 경험이 필요한 듯하다.
하지만 정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책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정말 없거나, 그 책을 읽기가 너무 싫을 때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럴 때 서평, 귀동냥, 다이제스트, 대화를 통하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방법들은 요즘에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 모든 방법들을 한 번에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며 저자는 '읽는 척'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필자도 이에 동의하는 바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기, 모르는 책을 잘 아는 척하기. 이것이 지적 스노비즘이라는 것이다. (중략) 문화 함양에 스노비즘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스노비즘도 성립하지 않을 터이니, 이는 적어도 '어차피 바보이즘'처럼 파괴적이지는 않다. (중략) '어차피 바보이즘'과 박람강기주의 사이에 책을 읽지 않는 궁리가 있고, 읽지 않고도 읽은 척하는 요령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나는 바보니까"라는 말만 하고 있으면 언제까지나 바보를 면치 못한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다 보면 정말로 읽어 볼 기회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 <독서만능>은 50년 전에 출간된 만큼(정확히는 20년 전에 개정증보된 판) 지금의 세태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의 출현을 얘기하고 저자가 말하는 작가나 작품들이 전부 50~100년 전이고 하니 말이다. 1992년 개정증보판을 통해 많은 것들을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지금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은 지금과 그때가 하등 다르지 않다. 사례가 다를 뿐 요지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저자가 말하길 "애초에 '독서술'이라는 것이 30년 남짓 만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50년 남짓 만에도 바뀔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출판사도 그것을 인지하고 지금 이 책을 선보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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