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 ⓒ정은문고
역사를 알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나 욕구를 풀고 채우기 위해서, 역사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것들이 재밌고 신기해서, '역사는 돌고 돈다'는 명제 하에 역사를 통해 현재를 알고 다시 그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여 보다 좋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유는 다양할지라도 여하튼 역사를 공부하는 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방법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연도, 사건과 사고, 인물 등을 중심으로 자료, 구전, 추측 등의 방법으로 연구할 것이다. 여기서 제일 객관적인 방법은 바로 '자료'로 유추하는 방법이다. 당시 상황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 자료가 지닌 역사적 의미, 즉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알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면 금상첨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쉬산빈 선생의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정은문고)은 정녕 희귀하고 의미 있는 자료들을 모아 놓은 위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위대' 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을 테다. 그는 3천여 점의 역사적 자료를 모아왔다고 하는데, 그 자료들이 일체 청나라 말기에서 이후 100여년 동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꿰뚫는 자료들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 자료들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자료들이 대부분 '생활문서'라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보는 위대한 역사적 유물들은 아닐지라도, 사실 역사를 이루는 일반 서민들이 평생을 함께 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엄연한 유물들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 유물들도 역사적 사건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 가치를 더 높이게 한다.
이 책의 원제는 <증조백년: 證照百年>이라고 하는데, 뜻을 풀이해 보자면 증서와 문서로 보는 백년쯤이 되겠다. 일전에 이런 비슷한 류의 책을 접한 적이 있는데 <우표 역사를 부치다>(정은문고), <잡지 시대를 철하다>(돌베개), <세밀화를 통해 보는 채소의 역사>(다산북스), <대한국민 현대사>(푸른숲)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종의 '미시사'로, 어떤 한 종류의 자료를 통해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획이다. 역사를 웬만큼 연구한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진귀한 자료와 그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들은 재미와 함께 지적 욕구를 한껏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는 이런 류의 책이 보여주는 장점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예를 들어 보자.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특이한 것들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결혼에 대한 증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1944년 몽강연합자치정부에서 발행한 '아내매매증서'는 단연 압권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매혼은 반인권적이고 반여성적인 잔인한 제도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부터 전해지는 중국 예법에서 이는 합법적인 방식이었다고 한다. 여기의 아내매매증서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팔아 놓고 그 결혼의 주례까지 맡았다고 한다. 불과 70년 전에 실제로 행해진 비교양과 반인류의 짓거리이다.
위의 자료가 아내매매증서. ⓒ정은문고
그런데 이에 이어서 나오는 '기녀 신분증명서'도 이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편 중독자인 아버지가 기루에 딸을 팔아 넘기면서 발행한 증서라고 하는데, 이 또한 7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증서가 보여주는 기막힌 사연과 별도로, 역사적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기막힌 역사적 자료이다. 19세기 초중반부터 영국이 인도에서 들여와 중국에 대대적으로 판매를 하게 되어 그 차익을 엄청나게 챙긴 '아편'. 그 아편이 100여년이 넘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중국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생한 증거가 바로 이 증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 책에 무수히 많다.
책은 1부 '근대라는 시련과 실험', 2부 '붉은 별, 인민공화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에서 예를 든 자료들이 1부를 대표한다면 지금 예를 들 자료는 2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중국 전역은 중국공산당, 그중에서도 마오쩌둥의 혁명적 개혁 움직임 아래 놓인다. 그 시작이 1953년부터 시행된 1차 5개년 계획이고, 이어서 1958년부터 시행된 2차 5개년 계획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대약진운동'으로 불린다. 결국 2천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낸 이 운동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이는 1966년 시작해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10년을 지속한다.
책은 '문화대혁명'을 보여주는 수많은 자료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증서들에 비춰지는 '마오쩌둥들'이다. 무슨말인고 하면, 문화대혁명 당시 국가에서 발간하는 거의 모든 증서에는 어김없이 마오쩌둥 초상과 혁명 구호 그리고 최고 지시와 어록 등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가히 황제보다 더한 권력심화와 신격화, 우상화는 중국 전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책에서는 그 증거로 '베이징방송대학 졸업증서(1965년)', '철로운수학교 졸업증서'와 '제5초급중학 졸업증서'(1968년), '산더우중학교 졸업증서'(1969년) 등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산더우중학교 졸업증서'는 특이하게 한 장이 아닌 여러 장으로 구성된 형식이었다. 그 이유가 표지에는 마오쩌둥의 서명과 어록이 본문 첫 장에는 최고 지시가, 둘째 장부터 다섯째 장까지는 <마오쩌둥어록> 발췌문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겨서야 겨우 졸업증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사회 전반에 마오쩌둥의 영향력이 넓고 깊게 퍼져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 또한 일상의 자료임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게 해주는 귀한 유물이다.
역사를 이렇게 접하니,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재밌으며 신기하기까지 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에 전문적이지 못하고 그 가치가 덜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앞서 증명했듯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역사를 대함에도 다양성의 의미가 넓어지고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층이 넓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최선에는 이처럼 일반 서민의 일상을 넓고 깊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자료들이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발굴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갖을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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