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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이들을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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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

어렸을 적 소설가를 꿈꿨다. 그 일환으로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려 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소설가로서의 실존적 고민이 없었고 소설로 출항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했다. 나는 단지 문학을 좋아하는 문학 소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후에 소설은 나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작용하였고, 나는 소설을 우러러보면서 평가하고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라고 생각만 할 뿐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도 그렇다고 준비를 하지도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신 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서 소설을 대하고, 한편 서평을 쓰면서 소설을 대한다. 그러다 보니 소설가의 원고를 받아 들고 감히 교정·교열을 하며, 소설가들의 소설을 읽고 감히 가감 없이 평한다. 또 그들과 전화로, 이메일로, 대면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생각을 접하고 생활을 엿보고 그들의 소설을 책으로 만들어 팔아 널리 알린다. 

그렇다면 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을까? 


흔히 소설가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펼쳐지는 광경이 있다. 몇 날 며칠이고 골방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한 글자 한 문장 한 챕터를 기어코 써 내려가는 모습, 괴팍하고 진지하며 유머러스하고 위협적인 모습, 그리고 지지리도 가난한 현실과 예술적인 자유를 충분히 즐기고 싶은 이상의 충돌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등. 사실 이 모습은 수많은 소설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들에게서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에서 출판되는 <파리 리뷰>에 실린 세계적 소설가들의 인터뷰 중에서 12명의 인터뷰를 선정해 소개한 <작가란 무엇인가>(다른)를 보면 비록 단면일 테지만 소설가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소설가들이 천재적인 예술적 감각을 통해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면 이는 매우 큰 착각이다. 최소한 이 책에 나오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소설가들의 경우에, 그들의 인터뷰에서 '천재'라는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고(自顧)한다.


소설가들이 자고 하는 건 대부분 소설을 통해서 혹은 소설을 향해서 일 것이다. 그들은 소설로 자신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까지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소설을 끊임없이 고친다. 움베르토 에코는 딱 들어맞는 어조를 찾아내기 위해서 같은 페이지를 수십 번 다시 쓰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고를 쓰는 기간만큼 수정을 한다고 한다. 폴 오스터는 한 단락을 완성하는 데 3일이 걸리기도 하며, 레이먼드 카버는 한 작품 당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그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쪽을 완성하기 위해 서른아홉 번을 고쳐 썼다고 한다. 그들이 천재라면 결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소설가에 대한 부정확한 생각은, 그들은 주로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새벽녘에 작업을 할 거라는 추측이다. 또는 예술의 신이 내려주신 '필(feel)'을 받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거라는 생각이다. 이는 거의 틀린 추측이자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보면, 소설가들의 대부분이 일반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워크 타임을 정해 놓고 글쓰기라는 '노동'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 소설가들에게 소설은 노동에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창조적 행동의 정점에 서 있는 작가 중에서도 최고의 작가들을 인터뷰 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궁금증을 풀어줌과 동시에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뽑히는 윌리엄 포크너의 한 마디로 대신해본다. 


"모든 예술가의 목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삶이라는 움직임을 잡아서 다시 고정시켜, 수백 년 후에 이방인이 그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서 불멸인 어떤 것을 뒤에 남겨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쯤에서 이 책 <작가란 무엇인가>의 제목을 집고 가보자. 왜 <작가란 누구인가>가 아니고 <작가란 무엇인가>인가? 그건 아마도 '작가'라는 이가 가지는 '주체'적 성격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객체가 존재하고, 주체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작가라면, 작가의 본질을 구성하는 이가 객체일지라도 그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를 대할 때는 단순히 '누구'라고 말하며 한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명명(名命)하고 구성하며 수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인생의 대가들이 말하는 소설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스스로 소설가가 되어 이 질문에 답해 본다. 매우 진부할 수도, 그리고 골머리를 썩게 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궁극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질문에 골머리 썩을 필요가 뭐 있냐며 단숨에 답을 해준다.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알고 있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살아 있게 할 수 있고, 만일 당신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유이고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반면 필자는 이 질문의 궁극적인 면에 접근할 만한 능력이 없으므로 실망할지 모를 답변을 하겠다. 필자의 경우, 쓰기보다 읽기를 훨씬 좋아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도 않고 막상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쓰기를 통해 정리하고 기록을 남겨 거꾸로 읽기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게 되는 쓰기는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인터뷰한 소설가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 M. 포스터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고 공감하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답변이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쓴 비결을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공교롭게도 나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고, 그런 나의 생각을 정립하게 해준 책이 바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여러분도 이 책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인생의 작가를 만나 그의 생각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는 틈새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항상 말합니다. 원자와 원자 사이, 그리고 전자와 전자 사이에는 많은 공간이 있어요. 우리가 우주의 질료 사이사이에 있는 공간을 없애고 축소 시킨다면 전체 우주를 공만 하게 압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틈새로 가득 차 있어요. 오늘 아침 당신이 초인종을 울리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고,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죠. 당신을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저는 제가 현재 쓰고 있는 새 작품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장실에서도 기차에서도 일을 할 수 있어요. 수영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생산해냅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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