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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그리메 그린다> 그림 그리려다 그림자만 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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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참 우뚝하고도 높도다. 

촉으로 통하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도다…

그대에게 묻노니

서쪽 촉 땅에 갔다가 언제 돌아오는가?…

험난함이 이와 같거늘…

몸을 기울이고 서쪽을 바라보며 긴 한숨만 짓게 되네. 


<그리메 그린다> ⓒ다빈치북스

<그리메 그린다> 248페이지에 있는 당나라 이백의 <촉도난>이다. 이 시에서는 서촉으로 가는 길을 인생길과 비유하고 있는데, 조선화가의 신산한 삶과 닿아있다. 그 길은 계속 이어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까지 이어진다. 


제목이 <그리메 그린다>이다. 그리메라 하면 무엇인가. 옛말로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실체가 없는 검은 분신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목에 두가지 의미가 잡힌다. 


하나는 '그리메'로 대변되는 삶의 껍데기, 다른 하나는 '그림'으로 대변되는 삶의 본 모습. '그리메(그림자)를 그린다'로 삶의 껍데기만을 그린다라는 의미가 있겠고, '그리메(그림에) 그린다'로 삶의 본 모습을 그린다라는 의미가 있겠다. 결코 쉽지 않은 제목 풀이에 도상학적 재미가 솔솔 풍긴다. 


여기에 부제가 있다. 그림 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셋 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거기에 조선 화가의 신산하고 우울한 삶과 그들이 그린 그림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어느덧 가을은 돌아올 것이다. 흔히들 가을을 탄다고 하는데, 그 말은 즉슨 감성적이 된다는 것이다. 감성은 우울과 이웃사촌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옛 생각을 하다보면 지금의 처량한 내 신세를 한탄하게 되기 일쑤이다. 조선화가들은 유명할지라도 대부분 중인 이하의 천한 신분에 갇혀 있었다. 귀족 출신의 화가들조차 역적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불우한 운명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갔다. 어찌 지금의 우리네 인생과 이리도 똑같은가. 


1부에서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이라는 조선 시대 3대화가를 소개하면서, 조선 회화사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그들의 그림과 삶을 조명했다.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 그의 후견인은 안평대군이다. 세종의 아들로 조선 초 최대의 서화 소장가였던 그는 세종시대 이후의 문예 부흥을 이끌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후, 안견의 위치도 흔들리고 라이벌이었던 최경에게 모든 걸 빼앗긴다. 


유명인사 김홍도. 그의 말년은 너무나 신산했다. 정조의 후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그의 인생도 역시 정조의 죽음으로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조선시대 최고·최대의 예술세계를 선보였던 그였지만 찾아오는 늦가을의 세찬 풍파를 감당하기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한국 현대 동양화의 뿌리이자 19세기말 난세의 조선화단을 풍성하게 살찌웠던 장승업.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술은 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세상에서의 유일한 친구였다. 당나라 백거이의 <술이나 마시며>를 읊조려 본다. 


먼지 자욱한 속세에 들어

힘들여 마음 쓸 일 어디 있으랴!

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운들

얻어야 한 가닥 쇠털뿐인걸

잠시, 분노의 불길을 끄고

웃음 뒤 감춘 칼갈이도 그치고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평온히 누워 도도히 취하세.


2부에서는 조선시대 천재 화가 3인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천재적 능력으로 삶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 갔다. 생소한 이름의 이정은 <홍길동전>의 허균과 막역지우였다. 이정은 다섯 살 때부터 붓을 놀렸고, 특히 부처를 옛 그림에 가깝게 그리는 천재였다. 하지만 30살의 짧은 인생을 살다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 그는 일필휘지의 대가였다. 술에 취해 붓을 한번 놀리면 놀랄 만한 대작이 나왔다. 하지만 편차가 심해 졸작도 더러 보인다. 당대에 그의 예술혼을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았던 만큼, 늘 불운을 껴안고 사는 운명적인 존재였다. 


애꾸눈 최북. 그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그림보다 미친 듯한 행실이 더욱 주목을 받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하였는데 이번을 계기로 그의 진정한 예술혼과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부에서는 가혹한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운 불운한 인생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그린다. 정도의 대가 윤두서. 여기에 김명국과 비교한 글이 있다. 


윤두서가 정도를 얻었다면 김명국은 변화를 얻었고, 윤두서가 왕도에 가깝다면 김명국은 백도에 가깝다. 윤두서가 더는 단련할 그 무엇이 없다면, 김명국은 아직도 추려낼 것이 남아 있다. 

(본문 중에서)


이경윤이라는 걸출한 화가 아버지를 둔 이징. 그는 서자였다. 서자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평생 불운한 삶을 살았다. 비록 인조의 총애를 받아 궁중화가로 물질적인 고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적으로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여기 두 역적의 자손이 있다. 김시와 심사정. 김시는 김안로라는 희대의 권력가의 아들로, 아버지가 사사되자 그림으로만 한 평생을 살아간다. 역시 잘 나가는 명문가였던 심사정의 집안은 몇 번의 사고, 불화로 몰락하고 만다. 이들은 평생을 고개 숙인채, 자신들이 잘 할 수 있었던 그림만을 그리며 그림자처럼 살다갔다. 


4부에서는 자기식대로 뚜렷한 삶의 족적을 남긴 이들의 외침을 그린다. 김정희의 제자, 허련. 김홍도의 제자, 김득신. 이들은 대가의 제자들이다. 스승의 크고 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허련은 운림산방을 지어 남종문인화의 뿌리를 내리게 하였고 김득신은 그만의 특출난 시각으로 풍속화를 그려내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일조하였다.


여기에서 김득신의 특출난 시각은 신윤복의 시각과 닿아 있는데, 신윤복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뛰어들듯 그림을 그려냈다면 김득신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한 장면처럼 그림을 그려내었다. 이런면에서 김득신의 풍속화는 김홍도를 뛰어넘으며, 혜원조차 순간을 다루는 미학에서 밀린다. 순찬 포착력에서 기민한 김득신식 스토리텔링 기법의 의미는 각별하다. 대표적 그림으로 김득신의 <파적도>, 신윤복의 <주사거배><미인도>가 있다.


난과 대나무를 잘 그렸던 임희지. 그는 '송석원시사'로 활약하며 풍류를 즐겼다. 저자가 씨 좋은 잡놈이라고 표현한 그는 피리도 잘 불고 재주와 호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예술의 진면목을 누구보다 잘 표출할 수 있었다 한다. 평생을 살며 진정한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정선. <인왕산제색도><금강전도>등 그는 말년까지 붓을 놓지 않고 명작을 그렸다. 


그림에 훌훌 세상을 버리고 세속을 벗어날 생각이 담겨 있으니, 이것은 그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생각이 붓끝의 정신으로 발휘되어서 늙어서도 그 정신이 쇠하지 않게 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정선의 그림과 삶에 대한 평으로 가장 정확해 보인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림을 그린 사람의 운필을 떠올리며 그 붓이 움직이는 바로 앞자리에 가서 눈앞에 펼쳐진 작화 광경을 지켜보듯 여러 그림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 화가들과 어느 정도는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림 뒤 그리메(그림자)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고, 술을 치고 있었다. 어느덧 '예술소풍'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 짧은 인생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온다. 위대한 화가들의 삶에서 가을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그들 삶에 찾아온 가을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우리들은 과연 평생 어떤 세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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