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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 공간> 노인을 무능하다 여기는 순간, 사회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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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회적 기준의 '노인' 들이 모이는 <퇴적 공간>


<퇴적 공간> ⓒ민음인

얼마 전 종로 3가에 있는 기타를 사기 위해 '낙원 상가'에 갔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인지라, 왠지 모를 '후레쉬'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신선한 느낌은 곳곳에서 상처를 입고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오게 되어서 느끼는 한 개인으로서의 얄팍한 시각적·시간적 관념은, 인류적 시간 관념 하의 '노(老)'의 향연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만 것이다. 그곳에서 젊은이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노인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다. 


오늘날 노인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말한다. 이는 단지 나이의 기준으로만 선정되지는 않는다. 사회적 기준, 즉 가정이라는 집단에서의 추방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추방이 대체적으로 65세 즈음에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유교적 사회 질서가 무너진 지금에는 노인이 가정에서 나이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니거니와 평생 적을 둔 곳에서 은퇴를 해서 사회적으로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기초노령연금법 제3조의 연금 지급대상자 규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조 1항에 근거한 것이다.


퇴적 공간, 사회적 기준의 노인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이들이 모여드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보자면, 탑골공원과 자유공원 정도일 것이다. <퇴적 공간>(민음인)에서는 이를 제목처럼 '퇴적 공간'이라 칭한다. 이는 "도시의 인위성에 밀려나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의 상류로부터 떠밀려 내려 하류에 쌓은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모습"(저자의 말)을 지칭한다. 사회적 기준의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얼마 전 교수를 은퇴하고 사회적 기준의 '노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인의 실체를 들여다보고자 그 노인들의 삶에 깊이 천착해본다. 그 방법론으로 직접 노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는 보들레르나 조지 오웰이 직접 현실에 뛰어들어 이해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그들과 다르게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 퇴임을 한 후 나는 한동안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일대를 탐사했다. '탐사'라고 하는 까닭은 나의 발걸음이 내 안에  고인 어떤 질문을 해석하고자 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직함을 반납하는 동시에 나는 '노인'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 들이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문 중에서)


먼저 저자는 평생을 예술에 천착해 온 학자답게 화려한 인문학적 지식을 뽐내며 글을 시작한다. 이는 대부분의 챕터에서 통용된다. 노인 얘기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그러나 굉장히 지적 자극을 돋우는 지식들로 화려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노인 문제로 귀결된다. 이후 그 지식들을 발판 삼아 관찰하고 연구하고 사유한 현실의 문제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지적 자극으로 한껏 고무된 머리는 차갑게 식어서 챕터가 끝날 때는 때로는 슬픔, 때로는 분노, 때로는 허탈함 등을 느끼곤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누구나 반드시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 전파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이 들고 전체적으로 능력이 쇠퇴한다면 그 또한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자칫 절대적 경험주의에 빠져 일명 '꼰대' 노릇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저자도 직접 노인이 되고서야 느낀 처절한 깨달음이지 않은가? 그래서 인지 이 부분은 책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책을 다 읽은 후 놓았을 때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메시지는 노인에 관한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정부는 노인을 무능한 대상으로 규정하여 그들에 대한 복지를 한없이 늘려만 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지원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무모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이에 지원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설파한다. 노인을 개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가정이나 공동체에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종묘시민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3가 역, 허리우드 클래식 등은 가정으로부터의 1차적 추방과 도시의 속도가 주는 소멸이라는 이름의 제2의 추방이 교차하면서 형성된 도피성 공간일지 모른다. 그곳은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 가는 모래성처럼 모여드는 퇴적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나날을 보내는 노인들은 어쩌면 이제는 서울 시민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이 지닌 자연의 감각을 원형처럼 간직하고 있는 원질(原質)과 같은 대상이 아닐까. 우리가 현대의 갖가지 정신질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일 다시 자연의 감각을 지니기를 원하는 시기가 도래한다면, 이 퇴적 공간은 우리가 영원히 보존해야 할 자산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공간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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