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9명의 청년들이 일본항공의 국내선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망명한 '요도호 사건', 31명 중 12명이 다른 19명에게 살해당한 '연합적군 숙청 사건', 5명의 청년들이 3만 5천 명과 대치하면서 경찰 두 명과 민간인 한 명을 죽인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3명이 무차별 총기 난사로 26명을 죽이고 80명에게 부상을 입힌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이 일련의 사건들은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연이어 일어났고, 그 주체는 일본 '적군파'의 20대 젊은이들이었다. 희대의 사건들을 대하고 나서 이를 사회병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걸 즐기는(?) 지금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희대의 미치광이 살인마들이 벌인 사건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숙청'이라 이름 붙였듯이, (정치) 권력 다툼으로 치부해 버릴까. 어떻게 하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이 되어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관점
사회병리현상이란 개인·집단·지역사회·전체사회·문화 등에 있어서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하는데, 현상만 볼 때에는 범죄·비행·자살·부랑·매음·실업·빈곤·슬럼·도산·미신 등, 여러 가지 사회악이나 사회적 곤란을 뜻한다. 즉, 위에 언급된 사건들은 개인 또는 집단에 있어서의 비정상적인 상태로, 범죄와 비행, 부랑 등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사이코패스' 라든지, '어린 시절에 아픔이 있었다', '과도한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비극은 한낱 미치광이의 미친 짓으로 끝나버리고 말곤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이다. 그 안에는 자신의 의지가 들어 있지 않다. 자기의지가 없이, 압력 또는 타자에 의한 사건이라는 말이 되겠다.
ⓒ 교양인
<적군파>(교양인)의 저자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는 이 맹점을 파고들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자기의지가 반영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위의 사건을 저지른 이들과 다름없는 젊은이로 1960년대를 보냈고 신념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존경했고 학생들의 활동 내용 또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녀는 갖가지 극단적인 사건을 포함한 사회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급진 좌파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적군파 연구에 뛰어들기 전 그녀의 연구는 사상적 전향 문제에 쏠려 있었는데, 그 문제를 접하는 관점이 적군파 연구에도 이어진다. 정치적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의 가해자인 '오카모토 고조'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분석한 바 있는 대로 "전향을 시키는 데 탄압이 있었을지언정 오로지 탄압 때문에 전향했다고 볼 수 없다"는 해석, 즉 자기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관점이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건 가해자들의 '평범함'에 주목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본문 중에서)
사건1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일본의 거의 모든 대학을 산하에 둔 학생연합 조직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 있었다. 50년대 후반까지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았는데, 이후 중대한 노선 전환이 생기면서 가입 문제를 놓고 분열한다. 이후 분트(공산주의자동맹)는 1960년대 안보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고, 와중에 1968년 관서 분트 안에서 '적군'이라는 군대 결성이 꾀해졌다. 1년 후 조직 내 당파 투쟁을 계기로 적군파는 분트와 결별해 독자적 길을 걷게 된다. 그들의 투쟁방침은 폭력제일주의였다.
1971년 적군파는 같은 계열의 '혁명좌파'와 결합한다. '연합적군'의 탄생이다. 이들 세력은 통합의 첫 단계로 공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로 한다. 훈련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혁명좌파 지도자이자 여자인 나가타가 적군파의 여자 멤버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자이기 전에 먼저 혁명가여야 한다며, 스스로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적군파 수장이자 연합적군의 수장인 모리 쓰네오는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 온다.
'공산주의화'라는 이론으로, 더욱 훌륭하게 공산주의화한 혁명 전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부르주아적인 행위를 자기비판하자는 것이었다. 각 멤버의 약점을 집단적으로 검증하고 개개인이 지적받은 약점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론적으로 판단했을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브레이크도, 기준도, 출구도 없었다. 집단적 검증이 과도한 공격으로 쏠리지 않도록 제동을 걸 수단이 없었고, 검증과 자기비판의 기준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모리 쓰네오의 명령으로 완전한 공산주의화를 획득할 때까지 아무도 산에서 내려갈 수 없었다.
결국 한 사람의 공산주의화를 위한 폭력에 전원이 참가한다. 죽지 않고 버틸 도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모리는 그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죽은 멤버를 두고 모리는 또 한 번 획기적인 이론을 내세운다. 이른바 '패배사' 모두들 그 멤버를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지만, 결국은 그가 도움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힘없이 패배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론이었다. 모두들 이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 멤버를 죽인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때려죽이는, 모리에 의해 '합법적'으로 변모한 폭력이 계속된 것이다. 최초 31명 중 12명이 죽임을 당한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의 전말이다.
사건 2
해를 넘겨 1972년 2월 두 지도자 모리와 나가타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운다. 이후 잔류 부대는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새 지도자인 '사카구치 히로시'는 이 '숙청'을 혁명적인 활동에 의해 극복해야 할 불행으로 해석한 것이다. 남은 19명 중에 몇몇은 체포, 몇몇은 도망가고 5명이 아사마 산장에 이른다. 경찰은 가까스로 그들의 거처를 확인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는다. 이에 다섯 멤버는 항전을 거듭해 두 명의 경찰과 한 명의 일반인이 희생당한다. 결국 열흘 후 이들은 체포되고 마는데, 이 대치 상황의 마지막 광경은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9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숙청 사건 비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을까?
"숙청은 그 나름의 방법과 논리를 지닌 완전한 내부 문제였다. (중략) 연합적군에서 도망친 사람들마저 경찰에 출두하지 않았다. (중략) 숙청 사실은 체포와 함께 막을 연 적과의 직접 대결에 직면하여 내부에 묻어 두어야 할 극비 사항이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하지만 몇몇 멤버가 분리 감금을 원했고 숙청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만다. 일본 전국은 다시 한번 경악에 휩싸이고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급기야 담당 판사는 이따금 문제 있는 언동을 하곤 한 적군파 리더 중 한 명인 나가타를 두고 '마귀 할멈'이니 '마녀'니 하며 개인적인 분노를 놀랍도록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두고 언론은 단순 권력 쟁투의 결과라 말하고, 이후 수많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도출한다.
결론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과격한 학생 운동을 했을 뿐 모두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고, 이 사건 또한 유래를 찾기 힘든 이례적 사건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확고한 자기의지를 갖고 임했지만, 결과가 참혹했던 것이다. 참혹한 결과에 가려 사건 당사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올바른 선택을 진지하게 행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여기서 멈추었어야 할 명확한 지점은 아무데도 없다. 여기서 뛰어내리지 말았어야 할 눈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현명한 줄 알았던 판단이 사실은 완전한 우연에 따른 결과였고 선견지명 따위는 없었음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해 주었다. 판을 바꿔버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건 내지 상황을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보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해석에 입각해 비정상적인 사건 내지 상황을 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까닭이다.
책은 자료에 의한 연구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인가, 저자의 사건을 보는 우호적인 시각이 담겨져 있어서인가,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내용답지 않게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반대로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담담한 서술을 이어간다. 집필 중에 있어서 그만큼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는 뜻일까.
저자는 적군파 연구에 있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이미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한 비정상적인 사건', '내부 권력 투쟁' 등으로 결론내진 사건들을 얼토당토않은 이론으로 괜히 들추는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저자도 사회병리현상으로 규정지어진 '비정상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지를 갖고 연구에 임했고 적군파 연구에 관한한 최고의 책을 내보냈다. 적군파의 젊은이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얼마나 감화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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