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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입니다, 그 밖의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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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19대 국회의 민생 무시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 취득세 감면 연장 법안은 결국 2월 임시 국회의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영유아보육법, 고등교육법 개정안, 특수교육법 개정안, 청년고용특별법 등 서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민생 법안이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한 가지만이라도 통과가 되어 제대로 시행이 된다면 많은 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법안들이 절대 통과시킬 수 없는 악독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왜 그러는 걸까.

그들은 즉, 여와 야는 서로만을 탓하며 위 법안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정치가의 본질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에만 있는 것처럼,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활동'은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18대 대통령 대선에서는 유독 '민생'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민생이 중요해졌고 어려워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생이란 무엇인가? 민생은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말한다. 민생정치, 인생법안, 민생경제 등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착 그 본 모습은 찾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표지 ⓒ 역사비평사

마냥 안타깝게만 여기고 있을 시간은 없다. 배워야 한다. 민생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정치를 행했는지. 현재에서 찾을 수 없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이에 적합한 책이 있다.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역사비평사)이다. 부제인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조선의 개혁이라는 주제 하에서 '대동법'을 공통분모로 조선 중기의 험한 시대를 살아간 4인의 경세가들을 그려냈다. 그들은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이다.

율곡 이이를 다시 봐야하는 이유

저자는 이들을 경세가라고 표현한다. 경세가는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사람'을 뜻하는데, 정치학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유형 중 정략가와는 반대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족과 국가의 진정한 이익을 도모한다. 정략가는 민족과 국가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나니, 아무래도 경세가보다는 정략가에 가깝지 않은지... 세상을 다스리려는 이들 4인의 '생각'을 읽고, '실천'의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들 4인은 공통점이 많다. 언급한 대동법 시행을 비롯한 민생에 기반을 둔 개혁, 성리학 이념의 대국적인 실천을 위해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개인적인 실천을 위해 청백리로 살았다. 이들 4인은 모두 조선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율곡 이이를 제외하고서는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저자는 이이를 두고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라 표현하며, '올바른 제도의 목적을 안민에 둔 경세가로서 개혁의 좌표(구체적으로는 대동법이라 할 수 있겠다)'를 설정했다고 말한다. 그를 두고 조선 후기 정치 주류인 서인의 시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임진왜란 당시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병조 판서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9번의 과거에 장원 급제한 천재 정도로만 폄하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두고 그를 기려야 할 이유가 못 된다며 그의 포지션을 정치가 내지 경세가로 두고 있다. 

그렇다면 그를 기릴 수 있는 치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가장 큰 의의와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민생 개혁의 기반은 한 가지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방법론의 재발견이라 칭할 수 있겠다. 이이의 스승이었지만 다른 길을 걸었던 이황이 제시한 '올바른 사람에 의한 올바른 정치'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모순과 폐단의 변통을 주장하며 기존의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 정치 세력을 일소하고 그 자리에 올바른 사람을 앉혔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모순과 폐단을 보고 이이는 생각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정치를 하느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며 그 올바른 방법으로 경장론을 제시한다. 이이 생존 당시 국가와 백성 모두가 쇠진하고 힘이 든 상태이기에 시대에 맞게끔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덕을 쌓으면 자연스레 국가가 잘 다스려질 거라고 생각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희석되고, 현실 정치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선 이의 모습이 보인다. 결국 이이의 노력은 당대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후세에 이어받아 조선을 이끌어 나가는 대표적인 원칙으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율곡 이이를 기려야 하는 이유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작금의 정치는 어떠한지? 이이가 설파한 방법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 않은지? 정치가 이전에 지식인이기도 했던 이이가 현실 정치에 당당히 발을 디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지식인의 이론과 정치인의 현실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묻고 싶다. 너무 현실에 치우쳐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뜻이다. 

500년 전 민생법안 '대동법'

지식인인 동시에 정치인으로, 이론과 현실을 조화롭게 추구한 성리학의 대가이자 대동법을 적극 지지한 인물로 저자가 소개한 4인 중 한명인 포저 조익을 들 수 있다. 저자는 그는 성리학의 대가로서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동법 시행에 앞장선 민생 경세가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풍부한 성리학 지식, 즉 조선 시대 지식의 중추를 꾀고 있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의 너무나도 가난한 민중의 생활을 보고 현실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 4인이 활동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부 침략과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의 내부 다툼 등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었다. 그 험난한 시기에 무엇보다 민생을 걱정한 이들이기에, 지금 우리에게 특별히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익은 특히 대동법을 반대하는 세력과도 유순한 관계를 유지하며 오히려 그들을 잘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원익을 헌신적 관리의 아이콘으로, 조익을 조화로운 학자의 아이콘으로 풀고 나가며 김육에 이르러 그를 좋은 정치가의 전형으로 포지셔닝시킨다. 실질적으로 민생을 생각한 4인의 경세가 중 김육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그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민생법안인 '대동법'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이이부터 시작해 100여년이 걸린 대동법 시행의 대장정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대동법은 지방특산물 대신 쌀로 세금을 거둬들이게 하는 법으로, 농민의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지만 국가에게 부담이 가는 우려도 제기되곤 하였다. 오늘날의 복지에 대한 논란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국가가 없이는 국민이 있을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국민이 없으면 국가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 땅위의 400~500년 전 왕국에서도 국민에 대한 복지를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자랑스러워진다. 여하튼 이를 위해서는 조화로운 운영이 필요해 보이는데, 김육은 대동법 자체가 조화롭게 백성을 구제하면서도 국가 재정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극심한 흉년이 지속되던 당시를 생각하면 쌀을 조세로 납부하게 한 대동법 시행은 충분히 그 실효성이 있어 보였다. 

결국은 후에 여러 가지 기존의 폐단을 일소하지 못하고 폐지되고 마는 대동법이었지만, 민생을 생각하며 꾸준히 매진한 이들의 모습은 믿음직하다. 김육은 얼핏 막무가내로 반대파의 의견을 묵살하며 민생을 위한 개혁 밖에 보지 못한, 개혁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상식한 급진적 인물로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대동법을 반대하는 반대파와는 반대되는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민생이 우선이었다. 민생을 위한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자신의 사상과 이념의 잣대를 버리고 뽑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생각해야하는 정치인의 진정한 모습이란 이런 게 아닌지.

오직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이다

민생법안을 두고 서로의 탓을 하는 작금의 사태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조선의 4인 경세가들은 민생을 자신의 '옆'에 끼고 맞서 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적은 자신의 적이 아닌 민생의 적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랴? 그들의 적은 그들 자신의 적일 것이다. 민생법안을 '앞'에 두고 '서로' 싸우니, 과연 민생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이들이라도 권력쟁투를 안했겠느냐마는, 밀려나면 죽거나 귀양을 가는 피 말리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생을 생각하며 투쟁한 4인의 경세가들이 새삼 다시 그려진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만큼 말로만 민생을 위한 정치, 민생을 위한 법안, 민생을 위한 정책을 울부짖는 게 아닌 실천하고 행동하고 보여주는 그런 정부가 되길 바란다. 그 어느때보다도 흑과 백을 나누는 정치적 이념과 사상을 배제하고, 민생을 위한 직무에 적합한 인물을 뽑고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실행해야 할 때이다.

오리 이원익에 대한 말을 아꼈는데, 그의 이 한마디로 대신해보고자 한다.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일부이다. 

"오직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입니다. 조정은 이 점을 절실하고 급박한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 밖의 일들은 모두 부수적인 일일 뿐입니다."

중국 오경(五經) 중 하나인 <서경> 하서(夏書) 오자지가(五子之歌) 편을 펴들고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녕(本固邦寧)'-
'오직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녕(편안)하다.'



"오마이뉴스" 2013.3.6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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