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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


"사람들은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인간의 주된 특성이죠"


ⓒ 열린책들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에 나오는 말이다. 귀가 얇은 사람들한테만 통용되는 말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그럴싸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그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인물로 그려진다. 믿건 믿지 않건 각자의 자유지만, 듣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각인되어 온 거짓허구는 어느 순간 사실로 바뀌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곤 한다. 

이런 음모의 사슬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음모를 만들고 유포시키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한 공작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전 냉전시대 때에는 무력에 의한 공격 내지 방어뿐만 아니라 첩보도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뿐이었다. 미국 아니면 소련. 그랬기에 이 둘은 서로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고 온갖 암투와 공작이 난무했다. 작게 해석하면 '소문', 크게 해석하면 '음모'가 되는 거짓허구 유포에도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둘은 세상의 이목을 돌리기 위한 공작이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사실상 미국이 세상을 점령했었다. 자연스레 모든 이목이 미국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좋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대형 사건을 터뜨린다. 세상의 이목을 그 쪽으로 돌리게 하고, 그 사이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린다. 그런 음모론이 수도 없이 떠돌고 있지만, 대표적인 음모론으로 2001년 9.11 테러가 있을 수 있겠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버린 이 사건으로 당시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프라하의 묘지>의 주인공인 '시모네 시모니니'는 19세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유대인과 프리메이슨, 예수회는 한 통속이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등의 증오가 다분히 섞인 험담을 들어왔다. 그 험담이 씨가 되어 시모니니는 모든 걸 증오하게 되었고(심지어 그의 삶의 신조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그 중에서도 유대인을 향한 증오는 단연 앞섰다. 결국 이 증오는 그의 삶을 바꿨고 세계를 바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 살기 위해 공증인 밑에서 일하게 된 시모니니는 '위조'의 참맛을 알아갔고, 그 재능을 살려 정부 기관의 첩보를 담당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 정점에 이른 문서인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그의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가장 강력하게 심어져 있었고, 얼핏 말도 안 되는 음모인 듯하지만 유대인을 증오하는 사람들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심어주었다. 비록 소설, 잡지, 풍문 등의 여기저기에서 짜집기한 소설과 같은 문서이지만 말이다. 그는 이렇게 음모의 시대를 '잘' 살아갔고, 나름대로 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보람도 찾고.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의도는 시모니니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어떻게 음모가 만들어지고 진실 같은 거짓이 유포되는지 폭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사실 같은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있었다. 독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너무나 커진 것이다. 이미 거짓음모로 판명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에서처럼 유대인이 실제로 세계 전복을 꿈꾸고 계획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실을 인지한 에코는, 해서 소설에서 몇 가지 장치를 넣었다. 하나는 작품의 진행 형식에서 보인다. 세 명의 화자가 나와서 작품을 끌고 가는데,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작품에 너무 빠져서 마치 사실인 양 느끼지 않게끔 하고 있다. 작품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방식임에도 이 방식을 차용한 걸 보니, 저자가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둘은 작가의 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에코는 후기에서 친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내가 지어낸 인물은 단 하나,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 뿐이다."라고 언급했다. 즉 거짓과 음모로 가득 찬 삶을 보낸 주인공 시모니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짓과 음모를 향한 일침을 날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바로 그 점에 비추어 나는 그 시절에 벌써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본문 중에서)

"시모니니는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죄인이 되었음에도 그 유대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기억과 그 기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사건이 한 나라 전체를 얼마나 심하게 뒤흔들었지 새삼 깨달았다. 당시에 프랑스인들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시모니니는 음모(미스터리)에 관한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시모니니는 허구의 인물이기에, 이를 만든 에코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 음모라는 것이, 센세이션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아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뜻하는 것일 게다. 이미 익숙한 것. 19세기 당시 유럽에 공공연히 퍼져 있던 소문이나 추측들. 그리고 그것을 믿는, 믿으려는 일부 또는 다수의 사람들. 그렇게 음모는 만들어지고 퍼져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1921년 <런던 타임스>의 보도로 거짓 문서임이 드러났지만,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있었고 그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중요한 명분을 '프로토콜'이 제공하였던 것이다. 

음모론에 관한 각종 서적에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번역자의 후기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거짓으로 판명된 이 보고서를 마치 사실인양 포장하여 출판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거짓문서의 영향력, 아니 '거짓'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코는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와 닿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에코는 오랫동안 음모의 프로세스를 연구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비평을 계속해 왔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거대 언론 총수 출신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겨냥한 비평의 화살을 가장 많이 날렸다. 그 이유는 그의 커리어에 거대 언론 총수가 있고, 그것을 이용해 총리 자리를 꽤 차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을 거짓처럼 거짓을 사실처럼 날조해 널리 퍼지게 하는 데에는 미디어만한 게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디어법 날치기' 사건만 보더라도, 18대 국회에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제안해 일명 '날치기'로 통과시켜서 국내 유력 보수 성격의 신문사가 방송사를 운영해 종합편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어떤 한 계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그러면서도 전 국민이 가장 많이 보는 언론이 더욱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을 거짓처럼 거짓을 사실처럼 날조해도, 워낙 많이 유포되고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은 시모니니가 지하철 공사장 폭탄 테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로 대미를 장식한 게 아니란 말인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그의 죽음이나 음모의 종말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에코가 말한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함이 아닐까. 시모니니는 "오로지 증오만이 심장을 다시 뜨겁게 만든다"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지금 그는 없지만, 그의 증오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인다. 마치 몸과 영혼은 없어져도 DNA는 살아남아 다시 재생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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